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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평 침공 === 1929년 4월 북산은 청평을 침공했다. 이를 청평 침공 또는 제1차 청북전쟁이라 부른다. 총사령관 나카무라 겐로쿠(中村 玄六) 장군이 지휘한 약 25만 명의 북산군은 포병과 기관총, 신설된 기갑부대와 항공정찰대를 동원했고, 철도와 전신망으로 전선과 후방을 연결했다. 청평군은 병력 규모에서는 북산을 크게 웃돌았고 일부 부대는 외국제 소총과 야포도 갖추고 있었으나, 황실군과 지방군, 군벌의 사병으로 나뉘어 통일된 지휘를 받지 못했다. 보급과 탄약 생산도 전쟁을 치를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국경 요새는 개전 며칠 만에 무너졌고, 북산군은 철도를 따라 남하하며 주요 도시를 차례로 점령했다. 1929년 7월 수도 띠에우리엔이 포위되었고, 8월 2일 청평 황실이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북산 언론은 이를 '과거의 굴욕을 씻고 동방의 주도자가 된 날'이라 선전했고, 8월 2일은 이후 20년간 국가 기념일로 지켜졌다. 이 전쟁을 흔히 '북산 제국'의 출발점으로 보는데, 공식 국호는 여전히 북산국이었고 '제국'은 이 시기 선전과 후대 역사 서술에서 쓰인 표현이다. 정복은 청평 본토에서 끝나지 않았다. 1929년 11월 북산 함대가 청평의 마지막 책봉국 남꽝 왕국의 수도 티삼응우지 앞바다에 나타났고, 북산은 남꽝과 티삼응우지 조약을 맺었다. 조약은 남꽝이 완전한 자주독립국임을 확인하고 청평에 대한 일체의 전례를 폐지했는데, 북산 정부는 이를 '청평의 사슬에서 남방을 해방한 조약'이라 선전했다. 1876년 북산 스스로 청평에 대한 조공을 끊은 일을 남꽝에 되풀이해 준 셈이라는 논리였다. 그러나 같은 조약의 부속 의정서는 북산 고문의 국정 참여와 외교 사무의 북산 경유, 북산군의 주둔을 규정했고, 국호도 '동사랜드 왕국'으로 바뀌었다. 동사랜드는 이름만 독립국인 북산의 보호국이 되었다. {{{#!wiki style="border: 1px solid gray; border-radius: 5px; background-color: #F2F2F2,#000; padding: 12px" 상세 내용은 [[청평 침공]]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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