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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당 정치와 군부 === 20세기 초 북산에서는 하원을 기반으로 한 정당들이 성장했다. 1910년대에는 하원 다수당의 당수가 총리가 되는 관행이 자리 잡았고, 1920년에는 남성 보통선거가 도입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중립을 지킨 북산은 교전국들에 군수품과 선박을 팔아 전례 없는 호황을 누렸고, 이 시기에 조선과 제철 같은 중공업이 처음 뿌리를 내렸다. 그러나 전후 불황이 닥치자 정당 정치의 기반은 빠르게 약해졌다. 농촌에서는 쌀값 폭락과 소작 쟁의가 이어졌고, 도시에서는 정당과 재벌의 유착을 둘러싼 추문이 잇따랐다. 사육당 출신 장교들 사이에서는 부패한 정당 정치가 나라를 약하게 만든다는 인식이 퍼졌고, 유신 초기부터 군부에 이어져 온 청평 해결론이 다시 공공연히 거론되기 시작했다. 18세기 이후 쇠락을 거듭한 청평은 1920년대에 들어 황실의 권위가 무너지고 각지의 군벌과 반란 세력이 난립하는 상태였다. 북산의 군부와 민족주의자들은 이를 옛 종주국에 대한 역사적 복수와 자원·시장 확보를 한꺼번에 이룰 기회로 보았다. 개전 결정은 정당 내각과 군부의 힘겨루기 속에서 이루어졌다. 1928년 청평 국경에서 북산인 상인들이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나자, 군부와 우익 단체는 이를 청평 정부의 무능과 적의의 증거로 선전했다. 당시 내각은 외교적 해결을 모색했으나, 육군이 국경에 병력을 증강하며 기정사실을 만들어 가자 여론의 압박을 견디지 못했다. 1929년 2월 내각은 개전을 승인했고, 총리는 전쟁이 끝난 직후 사임했다. 군부가 정부의 방침을 앞질러 행동하고 정부가 이를 뒤늦게 추인하는 이 방식은 이후 북산 정치에서 반복되는 유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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