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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혁정변과 개항 == 1861년 무사 출신 무관과 신진 문신, 상공업자 세력이 연합해 왕궁을 포위하고 보수 문신들을 축출했다. 이를 북산 개혁정변이라 부른다. 정변을 이끈 나카츠카 겐로(中塚 玄郎)는 당시 서른두 살의 사육당 출신 무관으로, 전국시대의 무사 전통을 이상화하면서도 서양의 군사·산업 체제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변 세력은 쇄국을 고수하던 국왕을 퇴위시키고 하세가와 가문의 방계에서 열네 살의 왕자를 새 국왕으로 세웠다. 이로써 463년 동안 이어진 하세가와 왕조의 친정 체제는 끝났고, 왕가는 존속하되 실권은 스스로를 '개혁 정부(維新政府)'라 칭한 정변 세력에게 넘어갔다. 개혁 정부는 개방 자체에는 찬성했으나 그 속도와 조건을 두고 내부 논쟁을 거듭했다. 이 틈을 파고든 것이 [[빌베른]]이었다. 1865년 빌베른은 증기 군함과 철갑함으로 이루어진 함대를 호라쿠 만에 보내 개항과 통상을 요구하며, 거부하면 포격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이른바 포함외교였다. 해군력이 없던 개혁 정부는 전쟁을 치를 수 없다고 판단했고, 같은 해 《호라쿠 조약》을 맺었다. 조약은 항구 세 곳의 개항과 빌베른 국민에 대한 영사재판권, 협정 관세를 담은 불평등 조약이었다. 이듬해까지 루이나와 플로렌시아도 비슷한 조약을 맺었다. 개항의 충격은 개혁 정부 안에서도 컸다. 정변 세력 일부는 조약 체결을 굴복으로 받아들여 정부를 떠났고, 1866년에는 개항장의 빌베른 상관이 습격당해 상인 네 명이 숨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빌베른이 배상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자 개혁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는 한편, 습격 사건을 구실로 보수파 문신의 근거지였던 지방 서원을 대거 폐쇄했다. 외세의 압력이 국내 개혁을 앞당기는 도구로 쓰인 이 방식은 유신 기간 내내 되풀이되었다. 보수 세력은 조약을 '국가의 치욕'이라 비난했지만, 개혁 정부는 이를 근대화를 밀어붙이는 명분으로 삼았다. 불평등 조약의 개정은 이후 30여 년 동안 북산 외교의 가장 큰 과제가 된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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