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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산/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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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세의 정체 ===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북산 왕국은 외형상 안정을 유지했으나, 체제는 점차 경직되었다. 무신정변 이후 복귀한 문신들은 이전보다 보수적으로 변해 군비 확충과 실용적 개혁을 경계했고, 성리학적 의례와 명분 논쟁이 정치의 중심을 차지했다. 무사 계급은 직업 군인이라기보다 녹봉을 받는 세습 신분으로 변해 갔고, 군사 기술은 산성과 지형에 의존한 방어 전략에 머물렀다. 그 사이 경제와 문화는 나름의 성장을 이어 갔다. 동해안의 호라쿠를 비롯한 항구 도시에서 상인층이 성장했고, 청평과의 조공 무역에 딸린 사무역이 이들의 주된 수입원이 되었다. 신린에는 상설 극장과 서점이 들어섰고, 전국시대의 무용담을 소재로 한 연극과 목판 소설이 도시 서민층에 널리 읽혔다. 무사의 충성과 죽음을 미화한 이 대중문화는 정작 무사가 정치에서 밀려나 있던 시대에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현실의 무사보다 이상화된 무사를 그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인구 증가로 토지가 부족해지자 소작과 부채에 시달리는 농민이 늘었다. 문신 관료의 녹봉과 궁정 의례에 드는 비용은 늘어나는데 세수는 정체되었고, 조정은 부족분을 새로운 잡세로 메웠다. 18세기에는 농민 봉기와 하급 무사의 소요가 잇따랐으며, 봉기의 지도자 가운데에는 녹봉만으로 생계를 잇지 못하게 된 하급 무사가 적지 않았다. 18세기 후반 청평이 무능한 군주가 잇따르는 이른바 '암군의 시대'로 들어서자, 북산은 조공 사절의 규모와 횟수를 줄이기 시작했다. 청평의 약화는 북산이 종속 질서에서 벗어날 기회였지만, 경직된 왕조는 이를 개혁의 동력으로 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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