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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국 시대 === 13세기 말부터 빌베른의 속왕국 체제가 흔들리고 대규모 화산 분화와 흑사병으로 사회 질서가 무너지는 가운데, 서부의 유력 귀족 알드리크 1세가 세력을 키웠다. 1372년 벨포르에서 열린 추대회의에서 귀족·성직자·도시 대표들이 그를 ‘루이나 왕’으로 추대하면서 루이나는 하나의 왕국으로 통합되었다. 왕국 통합 이후 지역 간 왕래가 늘고 행정이 하나로 묶이면서 공통어가 널리 쓰이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벨포르권의 말이 공통어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고, 훗날 현대 표준어의 바탕이 되었다. 왕국 시대에는 국왕이나 왕위 후보의 루이나어 구사 능력이 정치 문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게오르크 1세 때인 1716년, 국왕이 루이나어에 서툴러 각의를 직접 주재하지 못하자 각료 가운데 한 사람이 회의를 이끄는 방식이 굳어졌다. 이 관행이 훗날 루이나 총리직의 기원이 되었다. 1882년 에드먼드 3세가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대륙의 하르슈타트 공가 출신인 왕비 아델하이트는 대륙의 항구도시 벨덴에서 선박 목수로 일하던 가스파르 뮈롱을 왕위에 앉히려 하였다. 뮈롱은 루이나어를 거의 하지 못했고, 의회는 “루이나어도 하지 못하는 인물을 대륙 출신 왕비가 데려와 앉히는 것은 사실상 외국의 섭정”이라며 이를 거부하였다. 뮈롱의 언어 문제는 왕당파의 약점이 되어 선전에도 이용되었다. 이 대립은 [[루이나 계승전쟁]]으로 번졌고, 의회파가 승리하면서 1885년 왕정이 폐지되었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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