𝙇𝘼𝙓 𝙒𝙄𝙆𝙄
최근 변경
최근 토론
임의 문서
도구
최근 변경
루이나/역사
(편집 요청)
[알림]
문서를 편집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편집 요청으로 이동되었습니다.
편집 권한이 부족합니다. 로그인된 사용자(이)여야 합니다. 해당 문서의
ACL 탭
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닫기
RAW 편집
미리보기
=== 왕권의 정착과 종교 개혁 === 알드리크 1세 이후 형성된 루이나 왕국은 중세 말 내내 왕권과 지방 귀족 세력의 균형을 조정하며 점진적으로 통합을 이루어 갔다. 초기 왕권은 아직 전국을 일률적으로 지배할 만큼 강하지 않았고, 각지의 귀족과 도시, 성직 세력은 여전히 독자적인 이해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해 연안의 상업 도시들이 성장하고, 왕실이 조세와 군사 동원을 일정한 틀 안에 묶기 시작하면서 루이나는 더 이상 지방 연합체에 머물지 않게 되었다. 특히 벨포르와 서부 항구 도시들은 왕권이 지방 사회에 뿌리내리는 핵심 거점이 되었고, 루이나의 정치 질서는 해양과 교역을 중심으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다만 이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1459년 [[코르윈 1세]]의 급사를 계기로 알드리크 왕조의 두 분가가 왕위를 다투는 [[두 문장 전쟁]]이 일어나 34년간 이어졌고, 1493년 [[헬반 언덕 전투]]에서 양 분가의 남계가 사실상 절멸하면서 [[발레리안 왕조]]가 왕위를 이었다. 서부 고지의 발레리안 백작가는 두 분가의 계승권을 혼인으로 통합하는 한편, 5세기 [[암브로스 발레리안]]의 후손임을 내세워 정통성을 보강했다. 15세기 말에서 16세기에 이르는 동안 루이나는 대륙의 종교적 갈등과 상업 질서의 변화, 그리고 항해 기술의 발전이 겹치는 거대한 전환의 한가운데에 놓였다. 왕실과 귀족, 도시 상인들은 모두 바다 너머에서 새로운 부와 권력이 열리고 있음을 감지하고 있었고, 그 관심은 곧 서방 항로와 남방 무역로를 향했다. 이 시기의 루이나는 이미 내해와 북대서양을 잇는 위치 덕분에 중개 무역의 이익을 누리고 있었으나, 기존 질서에 안주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았다. [[플로렌시아]]와 [[빌베른]], [[이베리아]] 계열 해상 세력들이 바다를 무대로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루이나 역시 보다 적극적으로 해양 세계에 뛰어들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 이 전환의 직접적 계기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종교였다. 1531년 [[레온하르트 2세]]가 혼인 무효 문제를 둘러싸고 로마 교회와 결별하면서 [[루이나 교회]]가 성립했고, 몰수한 수도원 재산은 왕립 조선소와 상비 함대 창설에 투입되었다. 대륙의 종교 질서에서 이탈한 대가로 루이나는 이베리아 계열 세력과 항구적인 적대 관계에 놓였으나, 동시에 그 적대를 감당할 함대를 얻었다. 다른 하나는 상실이었다. 1558년 [[마르그리트 1세]] 치세 말에 루이나는 대륙에 남아 있던 마지막 거점 [[카르네 항]]을 플로렌시아에 빼앗겼다. 이로써 루이나는 대륙 영토를 완전히 잃었고, 더 이상 대륙 국가로서의 선택지를 갖지 못하게 되었다. 이후의 팽창이 오직 바다를 향한 것은 이 상실의 결과이기도 했다.
요약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당신은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 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
비로그인 상태로 편집합니다. 로그인하지 않은 상태로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편집 역사에 본인이 사용하는 IP(127.0.0.1) 주소 전체가 영구히 기록됩니다.
저장
닫기
Liberty
|
the s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