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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6공화국 ==== 1.10 민주화 선언 이후 약 1년에 걸친 개헌 과정과 정치 협상을 거쳐, 1989년 새로운 헌법이 국민투표로 확정되었다. 이 헌법은 대통령 직선제와 엄격한 임기 제한, 의회의 독립성 보장, 사법부의 자율성 강화, 기본권의 명시적 보호, 그리고 군의 정치 개입을 금지하는 조항을 핵심으로 담고 있었다. 제2차 헌정위기와 4.13의 교훈은 헌법 곳곳에 반영되었다. 대통령의 연임 제한은 어떠한 개헌 절차로도 변경할 수 없는 영구 조항으로 명시되었고, 계엄 선포의 조건과 절차는 극도로 엄격하게 규정되었다. 이에 따라 실시된 첫 자유 선거를 통해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제6공화국이 출범했다. 제6공화국의 출범은 루이나 현대사에서 하나의 분수령으로 기억된다. 선사 시대 이래 켈트 부족 사회의 분열과 로마의 정복, 빌베른의 지배와 중세적 통합, 근세의 해양 팽창과 근대의 제국 쇠퇴, 세계대전의 시련과 냉전의 압력을 거치며 이 땅에서 쌓여 온 정치적 경험이 마침내 시민의 손으로 민주공화국을 다시 세우는 데까지 이른 것이다. 그러나 이번의 민주주의는 벨포르의 봄 때처럼 순진한 낙관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었다. 10.10과 12.6, 제2차 헌정위기와 4.13을 모두 겪은 루이나인들은 민주주의가 한 번 세워졌다고 해서 영원히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제6공화국의 헌법이 유달리 엄격한 권력 제한 조항을 담고 있는 것도, 과거 청산과 진상 규명이 새 공화국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군사정권과 제5공화국 시기의 인권 침해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 추궁, 4.13 유혈 진압의 희생자에 대한 명예 회복과 배상, 경제 민주화와 사회적 불평등의 해소를 둘러싼 갈등은 제6공화국이 출범한 뒤에도 오랫동안 이어졌다. 과거 청산의 과정은 때로 고통스러웠고, 사회의 균열을 다시 드러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제6공화국 이후 루이나의 민주주의는 비록 시험과 위기를 겪으면서도 점차 뿌리를 내려 갔다. 정권 교체가 선거를 통해 이루어지는 관행이 자리 잡았고, 시민 사회는 다양한 목소리를 내며 정치에 참여하는 경험을 축적했다. 언론과 사법부의 독립성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화되었다. 루이나는 제국의 흥망과 전쟁, 독재와 민주화의 여정을 거쳐, 이전 시대의 어떤 시점보다도 시민 개인의 권리와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로 다시 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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