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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역사/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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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베른 유학과 보편 논쟁 === 12세기 이후 루이나의 젊은 성직자들은 빌베른의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빌베른에서 수학하고 돌아온 이들은 대륙의 스콜라 철학과 함께 보편 논쟁을 들여왔고, 실재론자 [[아드리아누스 사르비우스]]와 유명론자 [[페르구스 오드런]]의 대립은 루이나 땅에서 벌어진 첫 학문 논쟁이 되었다. 이 논쟁은 학문이 국가와 교회의 감시를 받는다는 사실도 드러냈다. 1302년 빌베른 대주교는 오드런의 명제 19개를 단죄했고, 그의 저작은 수백 년 동안 수도원 서고에 묻혔다. 단죄는 빌베른의 교회 권력이 루이나의 학문을 통제한다는 상징이 되었고, 훗날 왕국 성립 이후 루이나 자체의 학문 기관을 세워야 한다는 요구의 근거로 자주 인용되었다. 14세기에는 신비가 [[에일리스 니 카흐린]]이 루이나어로 『빛나는 어둠의 노래』를 썼다. 학문적 논증이 아닌 신비 체험의 기록이었지만, 루이나어로 쓰인 최초의 사변적 문헌이라는 점에서 루이나어 문어 형성의 출발점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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