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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 전쟁과 독립 ==== 1940년대에 접어들며 루이나는 고랜드의 자국령 편입을 본격적으로 시도했다. 1944년, 루이나 상원의원 존 슬리델이 마베라에 1억 5천만 달러에 고랜드를 매각할 것을 제의했다. 루이나는 앞서 콘스탄티노폴과의 협상을 통해 1939년 콜마르 시를 양도받은 전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긍정적인 답변을 기대했다. 그러나 마베라는 단칼에 거절했다. 마베라에게 고랜드는 프랑스의 알제리나 영국의 북아일랜드처럼 단순한 해외 식민지가 아닌 본토의 연장선이었다. 수백 년 동안 자국민을 이주시키고 현지 사회를 육성해온 마베라에게 고랜드의 매각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매입 시도가 좌절되자 루이나는 전략을 바꾸어 고랜드 독립 게릴라들을 물밑에서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루이나의 지원을 받으면서 점차 루이나와의 자발적 합방을 원하기에 이르렀다. 1948년부터 1958년까지 벌어진 10년 전쟁 끝에 [[산후안 조약]](Trattato di San Giovanni)이 체결되어 자치령 지위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식민당국의 처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결국 1959년 독립 영웅 아부 마르티 알-고란디의 지도 아래 고랜드 독립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는 전쟁 과정에서 전사했지만 현재까지 독립의 상징으로 추앙받는다. 같은 해, 루이나는 메인호 폭파사건을 빌미로 마베라에 선전포고하며 루이나-마베라 전쟁을 일으켰다. 이미 고랜드 독립당이 영토 절반 이상을 수복한 상황에서 마베라 식민지군은 더 이상 버티지 못했고, 1960년 고랜드는 독립을 쟁취했다. 루이나는 제국주의적 야심이 없다는 것을 국제사회에 어필하기 위해 고랜드를 자국령으로 편입하지 않고 독립국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 콘스탄티노폴은 식민지로 삼은 루이나의 이중적 행태는 비판을 받았으며, 일부 루이나 역사가들은 고랜드 독립을 루이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실수 중 하나로 평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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