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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전과 탈레반의 형성 ==== 군벌 내전의 참혹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수도 아바나조차 여러 파벌의 포격 대상이 되었고, 무고한 민간인들이 날마다 죽어갔다. 각 군벌은 자신의 점령지에서 자의적인 약탈과 폭력을 일삼았다. 법도 없고 질서도 없는 땅에서 고랜드 민중은 철저한 절망에 빠졌다. 바로 이 절망의 틈을 파고든 것이 탈레반이었다. 탈레반의 뿌리는 성베르트 정권 시절 탄압받던 마드라사 학생들과 이슬람 부족 저항 세력의 2세대에 있었다. 전쟁고아로 자라 마드라사에서 성장한 젊은 신학생들, 이른바 탈리브(Talib, 학생)들이 핵심이었다. 이들은 기성 군벌 세력의 부패와 잔혹함에 환멸을 느낀 민심을 빠르게 흡수했다. 탈레반의 초기 지도자 물라 우마르 알-칸다하리는 카리스마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군벌들이 판치는 혼란 속에서 "우리는 총을 빼앗기 위해 왔다. 알라의 법이 이 땅에 서면 인간의 법은 필요 없다"고 선포하며 남부 칸다하르 지역에서 질서를 세우기 시작했다. 탈레반은 군벌들이 세운 검문소를 철거하고, 도로 강도를 처단하며, 부족 간 분쟁을 샤리아 법정으로 중재했다. 이 모습은 혼란에 지친 민심에 강렬하게 어필했다. 루이나의 NIA는 초기 탈레반 세력에 대해 양가적 입장을 취했다. 성베르트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탈레반이 유용한 도구였지만, 그들의 이슬람 근본주의 이데올로기는 루이나의 자유주의적 가치와 정면으로 배치되었다. "지금 당장의 적은 공산주의"라는 논리가 우세했고 간접 지원은 계속되었다. 이 결정은 훗날 루이나가 뼈저리게 후회하게 되는 역사적 실책이 된다. 1996년, 탈레반은 수도 아바나를 함락하고 고랜드 이슬람 토후국의 수립을 선포했다. 집권 직후 탈레반은 여성의 교육과 사회 활동을 전면 금지하고, 음악과 텔레비전을 불법으로 규정했으며, 이슬람 율법에 따른 공개 형벌을 집행했다. 루이나를 비롯한 국제사회는 탈레반 정권을 승인하지 않았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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