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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2 vs r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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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3>“Qoxqe administratj’a patrj’i exstinxtte’ estte’witur, magxxjistratte’us potestte’i administrativwe’es qe’emn jamn exserqerre’bant pergxxje’es.[*中2. “본국 행정부가 소멸하였기에, 행정 권력의 주체를 빌베른이(그녀에) 이행하여 계속 집행한다.”]” -RETARDDE’US DEPOLITJIQUEMME’(레타르두 데폴리치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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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니에미이파를 포함한 일부 귀족을 제외하고, 시민과 캄피톨랴파를 제외한 보수파 귀족들은 로마라는 정당성이 국가 통치의 중심이라 여겼기에 니에미이 파를 밀어내고 489년 실권자인 당대 총독 프로디토리우가 명목상 로마의 유일하게 남은 총군단장, (암살당하지 않은)원로일동, 호민관의 허가를 받아 황제에 즉위하고 이를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동로마 황제에 통보한다. 이를 기준으로 빌베른은 동로마 및 본토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로마시를 명목수도로, 캄피톨랴를 도읍으로 하는 빌베른 제1제국 시기가 시작된다[*0. 물론 독립선언이라 보기엔 어렵고, 당시 빌베른 내부의 정체성은 과거 로마제국의 연장선상이였기에 황제 선포를 통하여 서로마의 행정 권한을 분할-이전한것으로 이해하는것이 옳다.]. 이때동안 빌베른은 루이나등 야만인 정벌, [[기독교 금지]], 랜드해협 내 도로 연장, 사산왕조 페르시아 및 인도등 동방 무역로 확보등 랜드해협내 패권 확보, 상업 경제 활성화와 내치 안정에 공을 들인다.
35 니에미이파를 포함한 일부 귀족을 제외하고, 시민과 캄피톨랴파를 제외한 보수파 귀족들은 로마라는 정당성이 국가 통치의 중심이라 여겼기에 니에미이 파를 밀어내고 489년 실권자인 당대 총독 프로디토리우가 명목상 로마의 유일하게 남은 총군단장, (암살당하지 않은)원로일동, 호민관의 허가를 받아 황제에 즉위하고 이를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동로마 황제에 통보한다. 이를 기준으로 빌베른은 동로마 및 본토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로마시를 명목수도로, 캄피톨랴를 도읍으로 하는 빌베른 제1제국 시기가 시작된다[*1. 물론 독립선언이라 보기엔 어렵고, 당시 빌베른 내부의 정체성은 과거 로마제국의 연장선상이였기에 황제 선포를 통하여 서로마의 행정 권한을 분할-이전한것으로 이해하는것이 옳다.]. 이때동안 빌베른은 루이나등 야만인 정벌, [[기독교 금지]], 랜드해협 내 도로 연장, 사산왕조 페르시아 및 인도등 동방 무역로 확보등 랜드해협내 패권 확보, 상업 경제 활성화와 내치 안정에 공을 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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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7 6세기까지 지중해 점령으로 바쁘던 동로마가 [[제정 사랜드]]등 각종 이교도 강대국이 넘쳐나고 물리적 거리또한 멀던 랜드해협에 관심을 두는것은 무리였고 그 후로는 사산왕조 페르시아와의 경쟁이 중요해졌기에 빌베른과의 통합은 과거 로마제국의 숙주였다는 점 만으로 제국의 국교를 인정하지않는 타국을 다스리는것과 같았기에, 또한 점렴이후에도 몇백년전 정치체제를 기준으로 하는 현지 보수귀족층의 반발에 의해 사실상의 자치정부를 운영하는, 사실상 동로마 황제를 도장 찍는 기계로 보는, 이들입장에선 상당히 ㅈ같은 놈들이였기에 빌베른은 큰 갈등을 겪지않고 제3자의 국가로써 지중해 무역에 참가할수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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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39 제 1 제국기, 8~9세기를 기점으로 빌베른의 주 무역상대는 구매력이 ㅈ창난 서유럽이 아닌 칼리프 선출로 대세이던 아랍세계와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동로마를 위시로 한 동방세계로 전환되게된다. 빌베른은 이때 각종 국가에 상인과 상선 보호를 명목으로 무역소를 설치하거나 위장군함을 정박시키고, 항구 이용권을 사거나 점거하여 엠포류르(Emporjumnxxrre’)는 국외 무역항으로 사용하였다. 특히 동로마의 지배력이 약화되던 시칠리아, 남부 이탈리아 항구 도시의 보호를 발판삼아 통치권역으로 편입시키는등 근대까지 이어지는 해군국가의 초석을 놓게된다. 이때 당시 메비테리(現공서당)는 랜드해협의 관문으로써 빌베른이 안정적으로 통치하는 랜드 내해의 군사-무역거점으로 크게 융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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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1 9세기 후반 동로마 중흥기 당시 동로마 황제는 서방 교황권, 무슬림등의 여러 세력과 분쟁중이였고 빌베른이라는 또 다른 이교도 세력과 경제적으로 경쟁중이였다. 심지어 서방 교황은 프랑크왕 샤를마뉴에 황제 직위까지 수여를 하여 동로마의 신경을 긁고있었다. 이때 빌베른은 메비테리시 내 기독교 선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황령 로마시와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제 4차 본토 연락단을 파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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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교황에게 황제 칭호 사용에 대한 불만을 전하러 가던 연락단은 당연히 쫒겨났고, 이때 교황령에 입장한 본토 연락단은 본국 귀환도중 사망한다. 동쪽의 콘스탄티노폴리스로 향하는 연락단은 빌베른 정부에 황제 칭호 상호 인정이란 뜻밖의 소식을 전하게 된다. 서방 교황의 황제 칭호 수여에 불만이 있었으며 상호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할수 있는 기회라 생각한 양 로마는, 콘스탄티노폴리스만 방문하는 제 5차 본토 연락단이 파견된 후 [[두오로메-사예세라이 협정]](Dueo-Romme’-Cajeseraj’i)을 체결[*0. 사예세라이 협정은 크게 무역-종교부분과 행정부분으로 나뉜다. 행정부분에선 양측 행정부 통치권 인정, 양측의 로마 계승 정당성과 황제권위를 인정하며 황제의 즉위는 양측의 통보와 답신이 공식화, 이를 위배하는 서방의 황제와 교황령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것이다. 어찌보면, 로마 황제의 정당성이 종교에서 다시 시민 여론으로 돌아간것이다. 무역-종교부분은 빌베른 관할내 동로마 정부의 공식적 선교활동 금지, 빌베른 파간(Paganne’)의 동로마 선교 금지, 양측 종교법 적용 예외 적용 대상을 서로의 국민으로하는 국내법조항의 신설과 유지, 지중해 항구 공동관리등이 존재한다.]한다. 로마 본토라 볼수있는 그리스쪽 행정부에서 빌베른의 정당성을 인정받았기에 의미가 크다고 볼수있다. 물론 빌베른은 기독교가 아닌만큼 레반트 항구만 보호하고 국경 보호는 ㅈ도 관심 없었다.
43 교황에게 황제 칭호 사용에 대한 불만을 전하러 가던 연락단은 당연히 쫒겨났고, 이때 교황령에 입장한 본토 연락단은 본국 귀환도중 사망한다. 동쪽의 콘스탄티노폴리스로 향하는 연락단은 빌베른 정부에 황제 칭호 상호 인정이란 뜻밖의 소식을 전하게 된다. 서방 교황의 황제 칭호 수여에 불만이 있었으며 상호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할수 있는 기회라 생각한 양 로마는, 콘스탄티노폴리스만 방문하는 제 5차 본토 연락단이 파견된 후 [[두오로메-사예세라이 협정]](Dueo-Romme’-Cajeseraj’i)을 체결[*2. 사예세라이 협정은 크게 무역-종교부분과 행정부분으로 나뉜다. 행정부분에선 양측 행정부 통치권 인정, 양측의 로마 계승 정당성과 황제권위를 인정하며 황제의 즉위는 양측의 통보와 답신이 공식화, 이를 위배하는 서방의 황제와 교황령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것이다. 어찌보면, 로마 황제의 정당성이 종교에서 다시 시민 여론으로 돌아간것이다. 무역-종교부분은 빌베른 관할내 동로마 정부의 공식적 선교활동 금지, 빌베른 파간(Paganne’)의 동로마 선교 금지, 양측 종교법 적용 예외 적용 대상을 서로의 국민으로하는 국내법조항의 신설과 유지, 지중해 항구 공동관리등이 존재한다.]한다. 로마 본토라 볼수있는 그리스쪽 행정부에서 빌베른의 정당성을 인정받았기에 의미가 크다고 볼수있다. 물론 빌베른은 기독교가 아닌만큼 레반트 항구만 보호하고 국경 보호는 ㅈ도 관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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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45 동로마가 셀주크 제국에 레반트를 털리고 서방교황한테 서랜친 11세기, 서신만 보내고 성지 탈환과 국경 방어는 ㅈ도 안도와주는 빌베른으로는 버틸수없던 동로마를 지원하는것에, 십자군 원정이 시작된다.
4646 십자군은 빌베른에 동로마 황제의 요청인것을 이유로 빌베른의 적극적 지원과 항구 개방을 요청했지만, 빌베른은 사예세라이 협정이 종교와 무관함을 강조하며 두 로마는 세속적인 관계이기에 특혜를 줄수 없음을 선언하고, 셀주크와 십자군 양측을 상대로 무역을 이어간다. 이는 13세기 4차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격하는 ㅂㅅ같은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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