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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 | 197 |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산 유신'''은 북산을 더 이상 낡은 봉건 왕국이 아니라, 동방에서 서구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근대적 국가로 탈바꿈시켰다. 왕정은 상징으로 남았고, 의회와 내각이 국가 운영의 중심이 되었으며, 근대적 군대와 산업, 교육 체제가 국가를 지탱했다. 북산은 이 유신을 통해 비로소 국제 무대에 다시 등장할 수 있었고, 이는 훗날 청평과의 전쟁과 루이나와의 접촉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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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 | 198 | === 제 1차 청평침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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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 | | 1929년, 북산 왕국은 수십 년간의 근대화와 ‘북산 유신’을 통해 근본적으로 변모해 있었다. 왕정은 상징적 권위만 남고, 의회와 내각이 국가 운영을 장악하였으며, 군대는 서구 열강의 군사 교리를 받아들여 정예화되었다. 철도와 전신망은 전선을 빠르게 연결했고, 근대식 공장에서는 탄약과 무기가 대량 생산되었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북산은 더 이상 피폐한 농업국가가 아니라, '''부국강병'''을 실현한 동방의 신흥 강국으로 거듭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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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 | | 오랜 세월 북산에게 치욕과 굴레를 안겨주었던 청평은 이제 쇠락한 제국에 불과했다. 왕조의 권위는 부패한 관료제에 갉아먹히고 있었으며, 낡은 무기와 제도는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했다. 북산 의회는 청평의 문호를 개방시키고 새로운 질서를 구축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원정을 승인했다. 이 결의는 단순한 영토 확장이라기보다, '''“북산의 운명을 되찾는 성전”'''으로 선전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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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8 | 218 | 자세한 전쟁의 경과와 점령 과정은 [[청평 침공]] 문서를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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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9 | 219 | === 현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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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0 | 220 | === 청북전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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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 | === 제1차 청평 침공 (1929년)과 식민지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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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 | 1929년, 북산 왕국은 ‘북산 유신’을 통해 근대화를 완성한 뒤, 오랜 세월 자신들을 억눌러온 청평에 대한 역사적 복수와 동방 질서 재편을 목표로 대규모 침공을 단행하였다. 이 전쟁은 단순한 국경 분쟁이 아니라, 북산이 수세의 역사를 끊고 공세의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북산 제국의 출발점”으로 불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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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8 | 222 | 자세한 전쟁의 경과와 점령 과정은 [[청평 침공]] 문서를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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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9 | 223 | === 현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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