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북라이카(비교)

r53 vs r54
......
226226라이카 제국의 경제 구조는 중공업이 핵심이다. 각 내각은 다른 정당, 다른 경제 개발의 방향성을 내세워 왔고 그 세부 내용 역시 천차만별이지만, 공통된 경제 정책은 중공업을 중시했다는 것이다.
227227===역사적 배경===
228228북라이카의 중공업 중시 경향은 국가의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써 기능했다. 초토화된 기존의 경제 방식은 달라진 국제 정세를 읽지 못했다.
229이에 1968년부터 비중이 커지기 시작한 의회와 내각은 "밀을 만들면 지금 배부르고,
229이에 1968년부터 비중이 커지기 시작한 의회와 내각은 "밀을 만들면 지금 배부르고, 철을 만들면 내일 배부르다." 라는 표어 아래 경제 개발 계획을 시작한다.
230
231오토 휘슬링이 이끄는 내각은 초반에 뛰어난 경제 발전을 이룩하였다. 1971년 라인룬트와 비테발트 주의 제철소는 라이카 제국의 자랑거리였으며, 정부는 전근대적인 군주정에서 벗어나 현대 시대를 열고 있다고 홍보했다.
232그러나 1975년, 국제 에너지 위기와 무리한 공업화 정책으로 인하여 북라이카 경제는 흔들린다. 에너지 의존도가 큰 북라이카는 석유 수출입에 타격을 입었고, 농업 인구 부족이 식량 부족을 불러왔다. 대기업과 정부 간에 생겨난 정경유착도 일찍이 한계를 보였다.
233더욱이 단기적인 경제 성장에 취해버린 휘슬링 내각은 부패, 비리를 일삼았으며 이는 정부 조직의 경직으로 이어졌다. 정부의 경직은 경제 구조의 병폐를 개선하지 못하게 하였다.
234
2351980년대, 내각이 두 번 바뀌었으나 큰 변화는 없었다. 무능한 내각, 불합리한 노동시간과 부의 분배는 북라이카 경제를 한층 둔화시켰다. 과도한 국방 예산(GDP 대비 3%)은 제국군의 부패와 무능을 낳는 역효과마저 불러왔다.
2361984년 클라이슈타인 내각은 개혁을 시도한다. 경제 전문가와 자문단을 다수 등용한 그는 기존의 표어부터 바꿨다. "지금 당신을 위한 공업." 이라고 선언하며, 국민은 국가가 아닌 자신의 밝은 미래를 위해 일해야 한다는 새로운 시각으로 경제 문제를 다루었다.
237
238과도한 노동자 부담을 줄여야 오히려 경제가 활성화된다고 본 그는 노동조합을 공식적으로 허용했고, 등한시되던 R&D, 기초과학에 투자했다. 클라이슈타인이 반대파에게 암살되며 개혁이 주춤하는 일도 벌어졌으나, 후임자들과 국민의 부단한 노력을 통해 제국의 경제는 다시 생기가 돈다.
239
2401990년대가 되자 라이카 제국은 버블경제 시대를 맞는다. 대기업과 부유층은 기껏 육성해둔 R&D와 기초과학을 외면했고 부동산, 미술품에 투자했다.
241제국의 밤거리는 휘황찬란했으나 속 빈 강정이라는 비판은 무시와 야유를 받았다. 그렇게 북라이카 경제는 기울어가고 있었다.
242
243
230244
231245
232246===금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