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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3061958년 특무처는 극우 조직 [[공화국의 방패]]를 결성하고 자금·훈련·표적을 제공했다. 방패는 1959년부터 1968년까지 여섯 건의 위장 테러를 집행했으며, 모두 극좌 조직의 범행으로 위장되었다. 1966년 3월 벨포르 지하철 아르덴역 폭발로 19명이 사망한 사건이 그 정점이었다. 사건은 실재하던 소규모 극좌 조직 혁명적 노동자동맹의 소행으로 처리되어 조직원 23명이 검거되고 11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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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308계획의 목표는 달성되었다. 1966년 조사에서 국내 공산주의 세력을 최대 안보 위협으로 꼽은 응답은 78%였고, 1960년 반체제활동규제법 개정으로 좌파 단체의 등록·해산 요건이 강화되었으며, 1968년 선거에서 좌파 정당의 의석은 절반 이하로 줄었다. 그러나 계획은 두 가지를 남겼다. 하나는 국가가 훈련시킨 무장 극우 조직이었고, 다른 하나는 하지 않은 일로 처벌받은 좌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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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309=== 검은 10년 ===
311==== 개관 ====
312'''검은 10년'''(Black Decade)은 1970년부터 1980년까지 루이나에서 정치적 폭력이 일상화된 시기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극좌 무장조직의 요인 납치와 암살, 극우 조직의 무차별 폭탄 테러, 조직범죄 집단의 항쟁이 동시에 진행되었고, 이 셋이 서로 구분되지 않는 상태로 뒤엉켰다. 명칭은 이 시기 사망자 대부분이 총탄에 의한 것이었다는 데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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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2381같은 해 설치된 정보기관 조사위원회는 군정기 국가정보국과 광역수사국의 국내 사찰을 조사하고 의회 정보위원회의 감독과 정보감찰관 제도의 도입을 권고했다. 다만 조사 대상은 정보공동체 등재 기관으로 한정되었으므로, 제방 계획을 실행한 특무처와 그 후신 조직은 조사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제방 계획의 존재가 부분적으로나마 공적으로 확인된 것은 1996년 민사소송과 1998년 재심을 통해서였으며, 지하철 사건으로 유죄가 확정되었던 11명은 1998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실행 주체는 재심 판결문에서도 특정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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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4383검은 10년에 대한 평가는 지금도 갈린다. 국가가 좌파를 억누르기 위해 만든 폭력이 국가로 되돌아온 과정이라는 해석이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나, 제방 계획의 규모가 실제 무장투쟁을 설명할 만큼 컸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확실한 것은 이 시기가 루이나 사회에 남긴 두 가지 유산이다. 하나는 정치 제도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고, 다른 하나는 훈련된 인원이 합법 구매한 총기를 개조해 공권력과 도심에서 교전하는 시위 형태가 이후 루이나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는 점이다.
310{{{#!wiki style="border: 1px solid gray; border-radius: 5px; background-color: #F2F2F2,#000; padding: 12px"
311상세 내용은 [[검은 10년]]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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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314=== 헌정 회복과 제4·5공화국 ===
3873151980년 헌정이 회복되고 리처드 앨런 베인브리지가 제25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제4공화국이 출범했다. 베인브리지는 1979년 민주연합을 창당해 헌정 회복 국면의 주도권을 잡은 인물로, 군정 잔재 청산과 치안 재건을 내걸었다. 1981년 5월 4일 광역수사국법이 제정되어 [[MIA|광역수사국]]이 현재 체제로 출범했고, 군정기에 파괴된 수사·정보 체계가 재정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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