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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4 | 274 | 12.6 사태는 루이나 사회 전체를 충격에 빠뜨렸다.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자가 자기 진영 안에서 제거되었다는 사실은, 군사정권이 내부에서부터 붕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만천하에 드러낸 것이었다. 파브르의 죽음은 국가비상위원회 내부에 거대한 권력 공백을 만들어 냈고, 이 공백을 둘러싼 뒤이은 혼란은 루이나의 정치 지형을 다시 한 번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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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5 | 275 | ==== [[벨포르의 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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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6 | | 하워스의 암살과 갤러거의 처형을 거치면서 군사정권은 사실상 구심점을 잃었다. 국가비상위원회에 남은 장성들 사이에서는 앞으로의 방향을 놓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으나, 하워스처럼 전체를 장악할 수 있는 인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강경파는 기존 노선의 유지를 주장했고, 온건파는 군사정권의 실패를 인정하고 민간에 권력을 이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느 쪽도 즉각적인 우위를 점하지 못한 채 교착 상태가 이어졌고, 이 권력 공백의 틈새를 시민 사회가 놓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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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6 | 파브르의 암살과 갤러거의 처형을 거치면서 군사정권은 사실상 구심점을 잃었다. 국가비상위원회에 남은 장성들 사이에서는 앞으로의 방향을 놓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으나, 파브르처럼 전체를 장악할 수 있는 인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강경파는 기존 노선의 유지를 주장했고, 온건파는 군사정권의 실패를 인정하고 민간에 권력을 이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느 쪽도 즉각적인 우위를 점하지 못한 채 교착 상태가 이어졌고, 이 권력 공백의 틈새를 시민 사회가 놓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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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8 | 278 | 1979년 봄, 벨포르를 중심으로 계엄 해제와 정치범 석방, 정당 활동의 재개를 요구하는 평화적 시위와 집회가 잇따랐다. 독재자가 사라진 이상 군사정권이 존속할 명분도 사라졌다는 인식이 빠르게 퍼져 나갔다. 대학 캠퍼스에서는 토론회와 강연이 열렸고, 노동현장에서는 자주적 조합 활동이 다시 꿈틀거렸으며, 언론인들은 검열의 경계를 시험하며 보도의 폭을 넓혀 갔다. 거리에서는 오랫동안 억눌려 있던 정치적 에너지가 한꺼번에 분출하는 듯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시민들은 마침내 민주주의가 돌아올 것이라 믿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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