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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 21 | 그 무렵 일본 제국은 항공 기술의 발전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김국자의 항공기 사업에도 주목하고 있었다. 조선총독부는 김국자를 보호하며 그를 [[https://namu.wiki/w/%EC%95%84%EB%A7%88%EB%85%B8%20%ED%9E%88%EB%82%98|아마노 히나]]로 창씨개명 후 본도로 소환. 미쓰비시 항공부에다 앉혀두고 부려먹으려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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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 | 하지만 거짓말로 이뤄진 성공에는 결국 한계가 있었으니 때는 1914년 7월 17일. 미쓰비시에서의 뉴 라이푸를 위해 자신이 설계할때 2,000ft 이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구라친 항공기를 타고 열도로 가던 중 조종사가 진짜로 2,000ft 상공으로 올라가버려 엔진이 빙결. 그대로 동해에 추락해버리는 괴기한 사고를 겪게 된다. 조종사는 명을 달리했지만 아마노 히나 본인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고 이후 지나가던 독일 동방함대[* 독일령 도르스만 조차지(현 산둥성 도쑤시)를 모항으로 삼던 함대였다.]경비정에게 구조되었다.[* 당시 추락한 항공기 L6M은 미쓰비시와 합작으로 만든 수송기였는데, 미쓰비시 측에도 책임을 피할 수 업는 상황이 오자 설계도를 보지도 않았던 이즈미 코나타 주임을 짤랐다. 이에 앙심을 품은 그녀는 히타치광산 제작소에서 일하던 오다이라 나미헤이(히타치사 창업주)의 도움을 받아 [[하타치 제작소|하타치중공]]을 설립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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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 하지만 거짓말로 이뤄진 성공에는 결국 한계가 있었으니 때는 1914년 7월 17일. 미쓰비시에서의 뉴 라이푸를 위해 자신이 설계할때 2,000ft 이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구라친 항공기를 타고 열도로 가던 중 조종사가 진짜로 2,000ft 상공으로 올라가버려 엔진이 빙결. 그대로 동해에 추락해버리는 괴기한 사고를 겪게 된다. 조종사는 명을 달리했지만 아마노 히나 본인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고 이후 지나가던 독일 동방함대[* 독일령 도르스만 조차지(현 산둥성 도쑤시)를 모항으로 삼던 함대였다.]경비정에게 구조되었다.[* 당시 추락한 항공기 L6M은 미쓰비시와 합작으로 만든 수송기였는데, 미쓰비시 측에도 책임을 피할 수 업는 상황이 오자 설계도를 보지도 않았던 이즈미 코나타 주임을 짤랐다. 이에 앙심을 품은 그녀는 히타치광산 제작소에서 일하던 오다이라 나미헤이(히타치사 창업주)의 도움을 받아 [[하타치 공업소|하타치중공]]을 설립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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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 | 당시 일본과 독일은 적국. 그것도 그는 성깔이 매우 에바스러운 편이었기에 그를 발견한 독일 황립 해군의 수병들은 건지자마자 바로 던져버리려 했지만 함에 타고있던 NEDP 난징지사 직원의 설득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후 며칠뒤 발발한 도스시 전투에서 독일이 패하고 도르스 조차지가 일본에게 정복당하자 그는 어쩔 방도도 업었기에[* 자신이 설계한 항공기가 추락한 이상 열도로 돌아가도 숙청당할게 뻔했다.] 다른 수병들과 함께 독일로 건너가게 되었다. 독일로 넘어간 후 그는 제갈시훈, 박애두[* 니뽕의 구조 -> 만철(남만주철도회사) 임원 -> 딮제뱅기 타다 중화민국에 떨어짐 -> 포로 -> 주독일 군사고문단에 눈에 뙴 -> 독일로 귀화 루트]와 만나 1922년 2월 22일 백성선공업을 다시 시작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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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 당시 일본과 독일은 적국. 그것도 그는 성깔이 매우 에바스러운 편이었기에 그를 발견한 독일 황립 해군의 수병들은 건지자마자 바로 던져버리려 했지만 함에 타고있던 NEDP 난징지사 직원의 설득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후 며칠뒤 발발한 도스시 전투에서 독일이 패하고 도르스 조차지가 일본에게 정복당하자 그는 어쩔 방도도 업었기에[* 자신이 설계한 항공기가 추락한 이상 열도로 돌아가도 숙청당할게 뻔했다.] 다른 수병들과 함께 독일로 건너가게 되었다. 독일로 넘어간 후 그는 제갈시훈, 박애두[* 니뽕의 구조 -> 만철(남만주철도회사) 임원 -> 딮제뱅기 타다 중화민국에 떨어짐 -> 포로 -> 주독일 군사고문단에 눈에 뙴 -> 독일로 귀화 루트를 밟았다.]와 만나 1922년 2월 22일 백성선공업을 다시 시작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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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 27 | 머나먼 이국땅 라인란트 지방에 터를 잡은 그는 열등한 황인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융커 계층과의 빠른 유착관계 정립으로 백성선 AG는 창업 몇개월만에 독일 최고의 청소업체로 성장할 수 있었다. 당시 그는 정치적 인맥 형성을 위해[* 사실 당시의 나치당은 설립 초기의 친목모임에 가까웠던 것이라 전혀 정치적 인맥형성에 도움이 안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구욷이 나치당에 가입한 그의 심리는 현재까지도 역사의 빈 페이지로 남아있다.] 설립 초창기의 나치당에도 입당했는데, 특히 당수 아돌프 히틀러와의 모종의 딥한 관계로 악명이 높았다. 백성선공업은 이후 뮌헨 폭동 당시 히틀러의 수감으로 위기에 빠진 나치당에 상당수의 정치자금을 투입해 살려냈고, 이는 훗날 퓌러의 집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그가 청소업체용 살충제 목적으로 만들었던 ‘치클론 B’는 이후 나치의 대학살에 악용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다만 이 또한 독일의 화학자 프리츠 하버의 공?적을 가로챘다는 의혹이 존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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