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r11 vs r12
......
2424[목차]
2525[clearfix]
2626== 개요 ==
2712.23 민주화운동, 12.23 롱비치 민주화운동, 롱비치 민주화운동 또는 롱비치 민주항쟁은 1953년 12월 23일부터 1954년 1월 1일까지 롱비치 시 및 인근 지역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이다. 군부 등에 의한 불법적 헌정질서 파괴범죄와 부당한 공권력에 대해 주권자인 시민군들이 저항권을 행사했다. 이 사건으로 민간인에 대한 학살이 벌어지며 다수의 희생자와 피해자가 발생했다.
2712.23 민주화운동, 12.23 롱비치 민주화운동, 롱비치 민주화운동 또는 롱비치 민주항쟁은 1953년 12월 23일부터 1954년 1월 1일까지 콜마르 주 롱비치 시 및 인근 지역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이다. 군부 등에 의한 불법적 헌정질서 파괴범죄와 부당한 공권력에 대해 주권자인 시민군들이 저항권을 행사했다.
2828
29넓게 보면 1951년 10.10 군사반란 직후부터, 좁혀 보면 1953년 12월 23일부터 1954년 1월 1일까지 비달 파브르를 중심으로 한 군부 세력이 내란과 폭동을 저지르고 이에 저항한 무고한 롱비치 시민들을 학살한, 롱비치 시민들과 국민들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사건이다.
29이 사건으로 민간인에 대한 학살이 벌어지며 다수의 희생자와 피해자가 발생했다. 넓게 보면 1951년 10.10 군사반란 직후부터, 좁혀 보면 1953년 12월 23일부터 1954년 1월 1일까지 비달 파브르를 중심으로 한 군부 세력이 내란과 폭동을 저지르고 이에 저항한 무고한 롱비치 시민들을 학살한, 롱비치 시민들과 국민들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사건이다. 이러한 학살 사건을 10.10 내란의 연장선으로 보는 측면에서 '12.23 내란'이라고도 하며, 이는 시민들의 민주화 운동을 뜻하는 용어는 아니다.
30
31처음에는 군부에 의해 롱비치 폭동, 당시 매스컴에서는 롱비치 사태 또는 롱비치 소요사태 등의 이름으로 불렸으나, 점차 시대가 변하면서 롱비치 민중항쟁, 롱비치 민주항쟁, 롱비치 학살 등으로 부르거나, 일어난 날짜를 줄여서 12·23으로 부르기도 한다. 루이나 초·중·고 교과서에서는 12.23 민주화운동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당시 계엄군 측의 진압 작전명은 백조작전으로 알려져 있으나, 공식적으로 이러한 작전명은 없었다고 한다. 공식 작전명은 충성작전, 상무충성작전이다.
32
33루이나 헌정 역사상 최고 수준의 저항권을 행사한 사건으로, 일각에서는 비달 파브르의 주장을 답습하여 무장 폭동이라고 주장하지만 루이나 대법원에서는 여러 차례 그러한 주장에 근거가 없음을 확인했고, 정당한 저항권 행사로 해석한다. 1961년 대법원 판결에서 "개별 헌법 조항에 대한 단순한 위반이 아닌 민주적 기본질서라는 전체적 질서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있거나 이를 파괴하려는 시도가 있어야 하고, 이미 유효한 구제수단이 남아 있지 않아야 하며, 그 경우에도 민주적 기본질서의 유지·회복을 목표로 해야만 정당성을 지닌다"고 판시하였는데, 롱비치의 사례가 이에 정확히 부합한다고 보았다. 시민군의 무장과 항쟁을 가리켜 위법적이라고 주장하는 무장폭동설은 대법원에 의해 근거 없는 주장임이 확인된 것이다.
3034== 상세 ==
3135
3236== 원인 및 책임 소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