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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3 | 20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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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4 | 204 | 이로써 반란군은 합법적 명분까지 확보할 수 있었고, 대통령과 국방장관의 결재 서명을 통해 반란은 겉보기에 합법성을 띠게 되었으며, 결국 "성공"에 이르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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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5 | 205 | === 진압군의 확전 주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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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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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7 | 213 | == 사후 결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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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8 | 214 | === 진압군 측 주요 인사들에 대한 처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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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9 | 215 | === 정권을 장악한 반란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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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0 | 2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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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1 | 217 | == 재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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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2 | 218 | === 사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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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6 | 12·13 군사반란 당시 진압군이 본격적인 무력 충돌로 사태를 확전하지 못한 데에는 복합적이고 구조적인 이유들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정치적 부담, 군 내부의 균열, 외부 위협, 그리고 시간에 대한 오판이 겹쳐 작용한 결과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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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8 | 첫째, 가장 큰 이유는 정치적 부담이었다. 당시 루이나는 리처드 에반스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합법 정부 체제가 유지되고 있었으나, 대통령 자신이 이미 노던 소사이어티 측에 사실상 연금 상태로 묶여 있었다. 진압군 지도부는 대통령이 자유롭게 명령을 내릴 수 없는 상황에서 무력 진압을 강행할 경우, 훗날 자신들이 “반란을 진압한 합법 세력”이 아니라 오히려 “정부 승인 없이 군 내부에서 또 다른 반란을 일으킨 집단”으로 규정될 수 있다는 정치적 두려움에 시달렸다. 특히 국방장관까지 파브르 측에 의해 생포된 뒤에는, 명령 체계상으로 자신들의 정당성을 뒷받침할 문서적·제도적 근거조차 부재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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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0 | 둘째, 군 내부의 균열은 치명적이었다. 루이나군의 수도권 전력 상당수가 이미 노던 소사이어티 인맥에 의해 장악되어 있었으며, 이는 곧 진압군이 전개할 수 있는 병력의 절대적 열세로 이어졌다. 표면적으로는 편제상 수만 명의 병력이 있었지만, 그 중 상당수는 여단장·연대장 등 지휘관들이 소사이어티와 내통하고 있었기에 사실상 신뢰할 수 없는 전력이었다. 진압군이 만약 무리하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면, 전선에서 반란군과 교전하기는커녕 내부 배신으로 전열이 무너질 위험이 컸다. 실제로 장태완 예하 부대가 전차 공격을 준비하던 순간조차, 일부 기갑 부대에서 이미 “사령관을 사살하라”는 무전이 내려오고 있었다는 점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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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2 | 셋째, 외부 위협도 무시할 수 없었다. 동부 국경에서는 콘스탄티노폴과의 긴장이 상존하고 있었는데, 반란군 진압을 위해 수도권의 주력 병력을 모두 투입한다면 국경 방어에 공백이 생길 수 있었다. 진압군 수뇌부는 혹여 이 틈을 타 콘스탄티노폴이 월경을 시도한다면 국가 전체가 돌이킬 수 없는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따라서 “내부 반란을 신속히 진압해야 한다”는 당위와 동시에 “국경 방위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모순된 명제가 병존하면서, 적극적인 전면 충돌에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 빚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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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7 | 219 | == 사후 결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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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8 | 220 | === 진압군 측 주요 인사들에 대한 처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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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9 | 221 | === 정권을 장악한 반란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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