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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5 vs r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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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5
5656그러나 당시 반란군 측은 절차를 거쳐 관할관의 영장을 발부받기는커녕 검찰관의 긴급구속 지휘를 받지도 못한 상태였고, 계엄사령관은 자신들의 상관이므로 군 지휘 체계에 따른 명령에 의해 출석을 강제할 수도 없었다. 결국 반란군은 무장한 헌병대 병력으로 공관촌을 점거하고 보안사령부 대령을 위시한 합동수사본부 수사관들이 육군참모총장 공관으로 진입해 에드워드 스펜서에 대한 강제 연행을 시도하면서 계엄사령관의 상관인 대통령의 사후재가를 동시에 받아 자신들의 불법행위를 정당화하고자 하였다.
5757=== 작전 개시 ===
581949년 12월 12일 저녁, '''비달 파브르'''움직이기 시작했다. 반란을 일으키기로 결심한 노던 소사이어티 소속 주요 장교들은 각자 준비를 마친 후 벨포르 남부요새 처의 수도경비사령부 제 30경비단에 집결하였다. 당시 30경비단과 33경비단은 벨포르 방위의 정예부대로, 수경사 소속이기는 했지만 수경사령관 무장 출입 불가할 정도로 독립적인 부대였기 때문에 이들이 몰래기에 딱 좋았다. 이날의 작전명은 '생일집 잔치'. 이들의 본래 계획은 보안사부 수사관들과 육군 수경사 헌병들을 동원하여 참모총장 공관서 '''에드워드 스펜서'''를 납치해부로 데리 가는 동시에, '''비달 파브르'''는 대통령 '''스펜서'''의 추가 혐의 하기 위한 합수부로의 체포 대한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이 체포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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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쓰는중--------------------]
6175=== 작전 성공 ===
6276
6377== 반란의 성공 원인 ==
6478=== 군을 장악했던 사조직 ===
6579=== 반란 당시 환경 ===
6680=== 진압군의 확전 주저 ===
6781
6882== 사후 결과 ==
6983=== 진압군 측 주요 인사들에 대한 처리 ===
7084=== 정권을 장악한 반란군 ===
7185
7286== 재판 ==
7387=== 사면 ===
7488
7589== 평가 ==
769010.24 시민혁명 당시, 분노한 시민들이 무장 투쟁을 통해 계엄군을 몰아내고 대통령실로 쳐들어가 비달 파브르를 사살했다. 이 사건은 루이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이루었으며, 국가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한 시민들의 강력한 의지와 투쟁을 상징하는 순간이었다. 당시, 비달 파브르는 국가를 혼란에 빠뜨린 내란의 주범으로 지목되었고, 그의 행동은 국가 질서의 근본적인 위협으로 간주되었다. 시민들은 그의 행위에 분노하며 무장 투쟁을 벌였고, 결국 계엄군을 몰아낸 후 대통령실로 침입해 비달 파브르를 벨포르 시청 광장 앞으로 끌고 나온 후, 성기와 귀를 잘라내고, 머리를 삭발한 후 비달 파브르의 가족을 사살하고 시민혁명의 주동자들은 자신들이 작성한 선고문을 읽은 후, 비달 파브르를 총살했다.
7791
7892비달 파브르의 사망은 법적으로는 즉각적인 처벌로 간주되지 않았다. 그가 처벌받기 전에 이미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민주정부가 구성된 이후, 법원은 그의 내란죄와 국가적 범죄에 대한 사후 재판을 진행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7993=== 내란행위에 대한 승인여부 (부정) ===
8094대법원뿐만 아니라 헌법재판소도 12·13 군사반란과 그에 따른 집권에 대해서 주권자인 국민의 일반의지(General will)에 따른 사후적 승인을 부정한다.
8195> '''반란수괴·반란모의참여·반란중요임무종사·불법진퇴·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상관살해·상관살해미수·초병살해·내란수괴·내란모의참여·내란중요임무종사·내란목적살인·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
8296>대법원 1967. 4. 17., 선고, 96도3376, 전원합의체 판결
8397>----
8498> 【판시사항】
8599> [1] 군사반란과 내란을 통하여 정권을 장악한 경우의 가벌성 여부'''(적극)'''
86100>----
87101> 【판결요지】
88102> [1] [다수의견] 우리 나라는 제헌헌법의 제정을 통하여 국민주권주의, 자유민주주의, 국민의 기본권보장, 법치주의 등을 국가의 근본이념 및 기본원리로 하는 헌법질서를 수립한 이래 여러 차례에 걸친 헌법개정이 있었으나, 지금까지 한결같이 위 헌법질서를 그대로 유지하여 오고 있는 터이므로, '''군사반란과 내란을 통하여 폭력으로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의 권능행사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하고 정권을 장악한 후 국민투표를 거쳐 헌법을 개정하고 개정된 헌법에 따라 국가를 통치하여 왔다고 하더라도 그 군사반란과 내란을 통하여 새로운 법질서를 수립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으며, 우리 나라의 헌법질서 아래에서는 헌법에 정한 민주적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폭력에 의하여 헌법기관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정권을 장악하는 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인될 수 없다.''' 따라서 그 군사반란과 내란행위는 처벌의 대상이 된다.
89103위 판결문에서 '헌법에 정한 민주적 절차'라는 것은 선거 또는 투표를 뜻한다. [[루이나]]는 대의제민주주의(간접민주주의) 국가로서 선거 또는 투표가 아닌 폭력에 의한 불법적인 집권을 원칙적으로 부정한다.
90104>헌법재판소 1965. 12. 15. 선고 95헌마221·233·297(병합) 전원재판부〔취하〕 불기소처분취소
91105>----
92106> 라. 피의자 비달 파브르가 임시비상입법기구 등을 통한 간접선거에 의하여 두 차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이나 제5공화국 헌법개정안이 국민투표에 의하여 통과된 것은 그것이 비록 형식적으로는 당시의 헌법과 법률의 규정에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그 진상이 은폐되고 계엄령 하의 강압적인 분위기 하에서 이루어진 것이거나 국민의 의사를 정확히 반영할 수 없었던 대의기관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어서 이를 가리켜 국민이 자유롭게 그들의 주권적 의사를 결정할 수 있는 상태에서 피의자들의 이 사건 내란행위에 대하여 승인을 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고,''' 정상적으로 투표가 진행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비달 파브르 측은 이 사건 내란행위에 의하여 창출된 제5공화국의 질서가 국민의 저항으로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하고 '''국민의 의사에 따른 새로운 헌법질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그 진상이 정확히 규명되지 아니한 채 국민의 상대적인 다수의 지지를 얻음으로써 이루어진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이로써 이 사건 내란행위에 대하여 국민의 승인이 있은 것으로 볼 수도 없다.'''
93107
94108=== 통치행위에 대한 사법심사 가능성 (긍정) ===
95109> '''반란수괴·반란모의참여·반란중요임무종사·불법진퇴·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상관살해·상관살해미수·초병살해·내란수괴·내란모의참여·내란중요임무종사·내란목적살인·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
96110>대법원 1997. 4. 17., 선고, 96도3376, 전원합의체 판결
97111>----
98112> 【판시사항】
99113> [14]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행위가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는지 여부'''(한정 적극)'''
100114>----
101115> 【판결요지】
102116> [14] 대통령의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 행위는 고도의 정치적·군사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행위라 할 것이므로, '''그것이 누구에게도 일견하여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 것으로서 명백하게 인정될 수 있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라면 몰라도,''' 그러하지 아니한 이상 그 계엄선포의 요건 구비 여부나 선포의 당·부당을 판단할 권한이 사법부에는 없다고 할 것이나,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가 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행하여진 경우에는 법원은 그 자체가 범죄행위에 해당하는지의 여부에 관하여 심사할 수 있다.'''
103117== 형사재판 판결문으로 바라본 군사반란 당시 상황 ==
104118{{{#!wiki style="border: 1px solid currentcolor; border-radius: 5px; padding: 12px; word-break: keep-all"
105119가. 피고인 비달 파브르, 토머스 브래너, 핸리 파이크, 빌리 셔먼, 아이작 루이스, 노먼 하트, 피터 맥그로, 줄리안 크로스, 펠릭스 하르트만, 레오나르도 이스턴은 공모하여 다음과 같은 행위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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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1949년 12월 12일 저녁, 비달 파브르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반란을 일으키기로 결심한 노던 소사이어티 소속 주요 장교들은 각자 준비를 마친 후 벨포르 남부 요새 위치한 수도경비사령부 제30경비단 막사에 집결하였다. 당시 30경비단과 33경비단은 수도 방위의 핵심 전력으로, 수경사 소속이기는 했으나 사령관조차 무장 출입 제어하기 어려울 정도로 독립성이 강한 부대였기 때문에 은밀히 병력을기에 적합했다. 이 날의 작전명은 생일집 잔치’였다. 본래 계획은 보안사령부사본부 수사관들과 수경사 헌병대를 동원하여 육군참모총장 드워드 스펜서 공관에그를 강제로 연행한 뒤 사본부로 압송하, 동시에 비달 파브르 대통령 권한대행 리처드 반스에직접 찾아 추가 혐의 ’를 위한 체포 재가를 받아 이 작전을 합법화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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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합동수사본부의 실무를 총괄하던 군보안사 인사처장 헨리 파이크 대령은 수사관들과 33헌병대를 이끌고 스펜서 참모총장 공관으로 향했다. 명목상 이유는 ‘조지 레이먼드 대통령 암살 사건과 관련된 추가 진술 조사’였다. 그러나 공관에 진입한 반란군은 스펜서에게 “이미 대통령의 재가가 떨어졌다”며 거짓을 고했고, 스펜서 측 참모가 대통령 승인 여부를 전화로 확인하려 하자 곧바로 총격을 가해 제압하였다. 이어서 외부에서 대기 중이던 30경비단 병력이 공관 창문을 깨고 돌입하여 무장 점거를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계엄사령관이자 자신들의 상관인 스펜서 장군의 뺨에 총구를 들이대며 강제로 승용차에 태워 합동수사본부로 납치하는 초법적 만행을 저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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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이 작전의 핵심은 스펜서 연행과 동시에 대통령 권한대행 리처드 에반스의 재가를 얻어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원래 계획과 달리 흘러갔다. 에반스는 비달의 진술만으로는 결코 스펜서 체포를 승인할 수 없으며, 국방장관 마이클 러틀리지와 협의를 거친 후에야 검토할 수 있다고 버텼다. 이로 인해 반란군은 합법적 명분 확보에 실패했으며, 이미 무력을 동원하여 스펜서를 연행한 상황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의 정치적 재가를 확보하지 못한 채 사실상 ‘완전한 군사반란’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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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마이클 러틀리지 국방장관은 당시 스펜서 인근에 있었으나 총성이 울리자 가족을 데리고 인근 대학 캠퍼스로 피신하였다. 이후 그는 군부의 이상 상황을 직감하고 예하 부대에 자의적인 행동을 삼가도록 명령하는 한편, 합동방위 체제 하에 있던 연합사 지휘부에도 야전부대 이동 권한을 요청하여 쿠데타 저지를 시도했다. 그러나 이는 당시 상황을 명확히 알 수 없었던 연합사령관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반란군이 국방부 청사까지 장악하면서 러틀리지는 체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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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한편, 긴박했던 스펜서 연행 과정은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12월 12일 밤, 파이크 대령이 지휘하는 합수부 수사관들은 군보안사 소속 차량 2대에 분승하여 벨포르 외곽의 참모총장 공관으로 출발했다.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33헌병대 병력은 마이크로버스를 이용해 뒤따랐다. 합수부 수사관들은 ‘급히 보고드릴 사항이 있다’며 미리 연락해 방문 약속을 잡아둔 상태였고, 이로 인해 공관 정문을 무리 없이 통과하여 관저로 진입할 수 있었다. 곧이어 33헌병대 차량도 정문에 도착했는데, 헌병들이 경비를 서던 해병대 경비병들에게 “교대 명령을 받았다”고 속이며 접근했다. 해병대 경비병들이 상부에 확인하려 하자 헌병들은 기습적으로 그들을 무장 해제 및 포박하여 초소 내부에 감금시켰고, 정문을 완전히 장악한 후 주변에 경계선을 형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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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한편 합동수사본부 수사관들과 함께 참모총장 공관 안으로 들어간 헨리 파이크 대령과 노먼 하트 참모장은, 에드워드 스펜서 총장에게 “조지 레이먼드 대통령 암살 사건과 관련된 추가 진술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며 군보안사 합수부로의 동행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스펜서 총장은 이를 거부하였다. 그러자 파이크 대령은 “임의 동행을 거부한다면 강제로라도 연행할 수 있는 대통령 권한대행의 재가를 이미 받았다”고 주장하며 억지로 데려가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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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스펜서는 이를 믿지 않고 “대통령 재가 여부를 직접 확인해야 한다”며 전속부관인 아이작 모건 소령(육사 11기)에게 대통령 권한대행 관저에 전화를 걸어 확인하라고 지시하였다. 이때 합수부 장교 한 명이 이를 제지하고 협박하기 위해 권총을 발사해 모건 소령이 총상을 입었다. 이어 참모총장 경호장교였던 앤드류 클라크 대위(육사 14기)가 권총을 꺼내 합수부 수사관들을 향해 겨누자, 즉각 총격이 오가며 클라크 대위 역시 중상을 입었다. 이 과정에서 33헌병대를 지휘하던 로버트 해밀턴 대령도 유탄에 맞아 부상을 당하는 혼란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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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이 같은 충돌 끝에 스펜서 총장은 강제로 끌려나와 승용차에 태워졌다. 합수부 차량 두 대는 곧바로 공관을 떠나 벨포르 남쪽에 위치한 군보안사 분실로 향했다. 그러나 헌병대를 직접 지휘해야 할 해밀턴 대령은 중상을 입어 들것에 실려 나갔고, 합수부 장교들은 총격과 피신 소동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 결과, 관저 밖에 배치되어 있던 33헌병대 병력에게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못한 채 자신들만 떠나버렸다. 지시를 받지 못한 헌병들은 한동안 당황해하다가 결국 자체 판단으로 철수해 마이크로버스를 타고 이동을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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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이 와중에 공관 관리관인 벤자민 로드 준위가 몰래 공관을 빠져나와 인근 해병대 경비대 막사로 달려가 “무장 괴한들이 총장을 납치하려 한다”고 급히 알렸다. 신고를 접수한 해병대 경비대는 즉시 출동해 공관 정문 초소를 탈환하고 정문을 봉쇄했다. 이들은 공관 영내에 남아 있던 33헌병대 마이크로버스를 포위했으며, 막 출발하려던 헌병들에게 사격을 가해 이들을 버스 안에 고립시켰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스펜서를 태운 합수부 차량은 이미 공관을 떠난 뒤였다. 합수부 차량이 정문을 벗어난 지 약 10분 뒤 해병대 경비대가 도착했기 때문에, 정작 스펜서 본인은 이미 납치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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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123== 반란의 성공 원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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