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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1 | 231 | 마지막으로, 반란군은 진압군 측 인사 몇 명을 공식적으로 처형하거나 공개 군사재판에 세움으로써 군 내부에 본보기를 남겼다. 이때 내린 형량은 대부분 과도할 정도로 가혹했으며, 이는 반란군 세력이 “정상적 명령 체계를 거부하는 자는 끝까지 처단된다”는 메시지를 심어 군 전체를 위축시키려는 목적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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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3 | 233 | === 정권을 장악한 반란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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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4 | 12·13 군사반란이 일단락된 직후, 루이나의 권력 중심은 완전히 반란군, 즉 비달 파브르를 중심으로 한 노던 소사이어티 계열의 손에 들어갔다. 이들은 단순히 군 내부의 지휘권만이 아니라, 국가 최고 통치 권한까지 단계적으로 흡수하며 정권을 장악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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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6 | 반란의 직접적 성과는 곧바로 군 지휘권 장악으로 이어졌다. 참모총장 에드워드 스펜서의 체포로 인해 정규 지휘계통은 사실상 마비되었고, 육본·국방부·특전사·수경사령부 등 주요 부대가 반란군의 통제하에 놓였다. 반란군은 이를 기점으로 각 부대에 자신들의 심복 인사들을 임시 지휘관으로 임명하고, 기존의 정규 지휘관들은 구금·전역·격하 조치를 통해 권한을 박탈하였다. 이 과정에서 최소한의 형식적 절차조차 무시되었으며, 군 내부에 남아 있던 진압 성향 인사들은 더 이상 반발할 힘을 가지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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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8 | 당시 루이나 대통령은 리처드 에반스 권한대행 체제였으나, 그는 반란 초반부터 경호실 병력에 의해 사실상 감금 상태에 있었다. 반란군은 이를 이용하여 대통령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봉쇄하고, 자신들의 요구 사항에 동의하도록 강요하였다. 특히 스펜서 체포 재가 문제와 관련해 대통령의 “재가” 서명을 받아내는 데 성공함으로써, 반란군의 행동이 최소한의 ‘합법성’을 갖춘 것처럼 위장할 수 있었다. 이로써 반란군은 군사작전뿐 아니라 정치적 정당성까지 확보하는 데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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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0 | 국방부 장관은 반란군에 의해 신병이 확보된 뒤, 사실상 꼭두각시로 전락하였다. 그는 이후 반란군의 지시에 따라 진압군의 병력 동원을 억제하거나 “상황을 자제하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진압 의지를 보이던 장성들을 고립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내각 내 다른 인사들 역시 반란군의 압력 하에 침묵하거나 협조할 수밖에 없었고, 루이나의 문민 정부는 단 하룻밤 사이에 실질적 기능을 상실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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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2 | 반란 성공 직후, 비달 파브르와 토머스 브래너 등 반란 주도 세력은 신속하게 정치권과 관료 조직에 손을 뻗쳤다. 의회 다수파를 형성하고 있던 보수 성향 의원들은 처음에는 반발했으나, 군의 실질적 권력이 반란군에게 넘어갔다는 현실을 인지한 후 곧 ‘질서 회복’을 명분으로 협조하기 시작하였다. 주요 관료들 역시 강제 전출·사임 압력을 받아, 반란군이 추천한 인물들로 교체되었다. 이 과정에서 행정권과 입법권마저 사실상 군부의 장악 아래 놓이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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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4 | 반란군은 정권 장악의 정당성을 공고히 하기 위해 반대 세력의 철저한 제거에 나섰다. 반란 직후 ‘스펜서 계열’로 분류된 장성 및 관료들은 군사법정에서 “내란 선동 혐의”나 “군의 정치적 중립 훼손” 같은 죄목으로 기소되어 구속·전역 처분을 받았다. 이들 중 일부는 장기간 복역하였으며, 일부는 해외로 망명하였다. 반란에 동조하지 않았던 언론인, 교수, 시민사회 인사들 역시 보안사와 경찰의 감시와 검열 속에서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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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6 | 반란군은 자신들의 통치를 단순한 ‘쿠데타 성공’에 그치지 않고, 체제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우선 군 내부에서 노던 소사이어티 출신 인사들의 요직 임명을 통해 인사권을 장악하였으며, 동시에 반란군을 “국가 비상사태에 대응한 구국세력”으로 미화하는 공식 발표를 내놓았다. 이후 국가비상회의를 설치하여 행정·입법 기능을 대체하게 하였고, 반란 수괴 비달 파브르는 실질적 권력자로 부상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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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8 | 정권 장악의 마지막 단계는 국제사회의 묵인으로 완성되었다. 미국과 주변국들은 루이나의 정치적 불안정을 우려하며, 초기에는 반란을 비판했으나 곧 “질서 회복”과 “공산 세력 확산 방지”를 명분으로 사실상 새로운 군사 정권을 승인하였다. 이로써 반란군은 국제적 고립을 피하고, 대외 원조와 군사 지원을 계속 확보하면서 권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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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5 | 249 | == 재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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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6 | 250 | === 사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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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7 | 25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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