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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2 | 162 | 그러나 24일 오전부터 상황은 반란군에 불리한 방향으로 전환되기 시작하였다. 전날 탈출한 육군참모총장 '''오카베 나오유키(岡部尚之)'''는 루이나 고문단과 긴밀히 협의하여 임시 군령지휘본부를 육군교육사령부에 설치하고, 루이나 측의 예비 연락망을 통해 해외 주둔 루이나 군사고문단 및 주북산 루이나 대사관과의 접촉을 재개하였다. 이를 통해 확보된 정보와 통신망을 바탕으로, 루이나는 24일 오전 08시경부터 비공식적 진압군 편성을 본격화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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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4 | | 루이나 측은 공식적인 개입을 선언하지 않은 상태에서 북산 정부의 요청을 가장한 ‘내부 질서 회복 지원’ 작전을 개시하였고, 벨포르-콜마르 연합사령부 예하에 배치된 헌병연락대, 통신감청부대, 수색정찰 중대를 24일 12시경부터 북산 내 거점으로 침투시켰다. 동시에 루이나 고문단 외부 조직을 통해, 친루파 장교 및 생존한 지휘관들과의 연결이 체계적으로 재구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수도 외곽의 일부 예비연대가 오카베 참모총장의 명령을 승인하였으며, 루이나 헌병대가 이들 부대에 비공식 무장 장비를 제공한 사실도 사후 보고서에서 확인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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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4 | 루이나 측은 공식적인 개입을 선언하지 않은 상태에서 북산 정부의 요청을 가장한 ‘내부 질서 회복 지원’ 작전을 개시하였고, 연합사령부 예하에 배치된 헌병연락대, 통신감청부대, 수색정찰 중대를 24일 12시경부터 북산 내 거점으로 침투시켰다. 동시에 루이나 고문단 외부 조직을 통해, 친루파 장교 및 생존한 지휘관들과의 연결이 체계적으로 재구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수도 외곽의 일부 예비연대가 오카베 참모총장의 명령을 승인하였으며, 루이나 헌병대가 이들 부대에 비공식 무장 장비를 제공한 사실도 사후 보고서에서 확인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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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6 | 166 | 오후 14시경, 반란군은 국왕 측에 공식 문서를 전달하기 위한 사절단을 구성하였으나, 국왕경비대 측은 “왕궁 출입은 현 정세 안정 전까지 전면 금지”라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이에 따라 반란군은 국왕의 재가 확보에 실패하였고, 쿠데타의 정치적 정당성 확보에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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