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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8 | 98 | 루이나 측도 이 갈등을 인식하고 있었으나, 일정 수준 이하의 분열은 오히려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루이나 군사고문단은 친루 장성들과 밀접한 협력 체계를 유지하며 반루 성향 장교들의 승진을 차단하고, 고립시키는 방식으로 내부 균형을 조절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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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 | 99 | === 군부의 불안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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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 | 북산 군부 내부의 이념 분열은 이미 수년 전부터 누적되어 있었으나, 1.23 사건이 실제로 발발하게 된 직접적 계기는 청년 장교들 사이에서 퍼진 '숙청'에 대한 공포였다. 루이나 고문단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군정원 상층부는 반루 성향의 장교들을 승진에서 배제하고 중요 보직에서 배척하는 방식을 꾸준히 이어왔으며, 이에 대한 불만은 점차 축적되고 있었다. 그러나 1965년 12월 중순, 이 긴장감은 돌이킬 수 없는 공포로 전환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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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2 | 반루 성향으로 알려졌던 도부야마 아키오(飛山昭雄) 소위는 제4통신단 정보과에 근무하던 장교였다. 그는 12월 14일 저녁, 외출 허가를 받은 뒤 복귀하지 않았고, 닷새 후인 12월 19일, 수도 외곽 우스하 강 하류 둔치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시신은 구강과 비강에 토사가 가득 찬 상태로 질식한 채 발견되었고, 손목에는 결박의 흔적이 남아 있었으며, 후두부에는 강한 둔기에 의한 함몰창이 있었다. 군경 당국은 이를 즉시 '''“야간 강도살인 사건”'''으로 발표하였으나, 현장은 민간인 통행이 통제되는 군 통제구역이었고, 목격자도 없었다는 점에서 발표의 신빙성은 심각하게 의심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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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4 | 그 사건 이후, 반루 성향 장교들 사이에서는 자신들이 루이나와 군정원 상층부에 의해 체계적으로 숙청될 위기에 놓여 있다는 정보와 의혹이 급속히 퍼지기 시작했다. 특히 도부야마 소위는 생전 몇 차례 상관의 명령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으며, 루이나 고문단의 전술 교리 이식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동료들에게 공공연히 피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가 사망한 직후, 제4통신단은 ‘조직 재편’을 이유로 갑작스레 해산되었고, 소속 병력은 타 부대로 전출 조치되었다. 이와 함께, 수도 방위사령부 예하 부대 중 여러 명의 중간급 장교가 이유 없이 대기 발령을 받거나, 병과 외 전출을 지시받는 일이 연달아 발생하면서 불안은 전면화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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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6 | 같은 시기, 반루 성향 장교들이 자신들의 가족 통신이 감청당하고 있다는 정황, 그리고 자택 주변에 낯선 인물의 장기 체류가 확인되었다는 증언이 공유되었다. 특히 사육당 출신의 통신 장교 미야기 겐타로(宮城健太郎) 중위는 자신의 관사 근처에서 3일 연속 정체불명의 차량이 정차해 있던 사실을 동료들에게 알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혀 관련 없는 육군보급창으로 발령되었다. 또 다른 장교 요시카와 신지(吉川信司) 대위는 사적으로 진행하던 전술 연구회가 군 감찰부에 보고되었고, 관련 명단이 군정원 정보국에 이첩되었다는 비공식 소문까지 퍼지며 장교단 내부의 긴장은 극도로 고조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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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8 | 반루파 장교들은 이 숙청이 단순히 진급 문제나 좌천 정도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루이나의 전략상, 북산이 청평을 막는 요새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내부 이념 통제의 일관성이 필요했고, 그 점에서 독립·자주·민족 해방을 외치는 청년 장교들은 ‘안정 질서의 교란 요인’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컸다. 특히 사육당 교육 과정에서 반식민주의와 사회적 평등을 강조받은 장교들은, 루이나가 자신들을 '체제 불만 세력'으로 규정하고 제거에 나설 것이라는 데 대해 확신을 갖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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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 | 이러한 불안 속에서 반루 성향 장교들은 수도 방위사령부 예하 통신단과 항공정비대, 일부 보병 중대의 청년 간부들과 비밀리에 연락망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공식 작전 명령 없이도 병력 일부를 이동시킬 수 있는 통제권을 보유하고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단기간 내 '''‘국왕 직접 상주’, ‘군정원 무력해제’, ‘루이나 고문단 활동 중지’'''를 요구하는 행동 계획을 수립하였다. 계획은 제한적이었고, 일종의 경고성 시위로 끝나길 바라는 이들도 있었지만, 일부는 실제로 국방부 청사 점거와 고위 장성 체포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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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 | 111 | == 전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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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2 | 112 | === 반루 세력의 결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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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3 | 113 | === 쿠데타 전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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