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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1 | 541 | === [[세계무역센터의 붕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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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2 | 542 | 두 번의 충돌 이후 충돌에 의한 구조적 손상과 화재의 열기를 버티지 못하고 오전 9시 59분경 제2세계무역센터가 완전히 붕괴하였다. 뒤이어 10시 28분경 제1세계무역센터 역시 붕괴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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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4 | === 테러 직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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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5 | ||<tablealign=center><tablewidth=800><tablebordercolor=#000,Gray><width=54.8%><nopad>[[파일:attachment/136_505.png|width=100%]]||<nopad> [[파일:attachment/RUINA-UNDER-ATTTACK.png|width=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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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6 | || 뉴스위크 || 벨포르 타임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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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8 | ||<tablealign=center><tablewidth=800><tablebordercolor=#000,Gray><width=51.2%><nopad>[[파일:4044869384279.webp|width=100%]]||<nopad>[[파일:ABCDEFG.webp|width=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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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9 | || 타임 || 더 벨포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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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1 | ||<tablealign=center><tablewidth=500><tablebordercolor=#000,Gray><nopad>[[파일:attachment/cnn_911_t323_c.jpg|width=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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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2 | || CNN 뉴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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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4 | 당시 루이나의 주요 언론들은 일제히 호외를 발행하며 사상 초유의 비극을 속보로 전했다. 대부분의 1면 헤드라인은 굵은 활자체로 ''RUINA UNDER ATTACK(공격받는 루이나)''라는 문구를 내걸었으며, 일부 신문은 이 사태를 "루이나 본토 전쟁", 혹은 "21세기의 벨포르 대참사"라고 표현했다. '''국민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수도권은 물론 전국 주요 도시에 긴급 경계령이 발동되었고, 루이나 경찰청, 국가방위사령부, 그리고 광역수사국(MIA) 전 간부들이 일제히 비상소집됐다. 전국 모든 공립학교와 대다수의 사립학교는 즉각 임시 휴교에 들어갔으며, 학생들은 교사의 인솔 아래 곧장 귀가 조치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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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6 |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Gray><nopad> [youtube(xh4V9PZT2VY)]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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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7 | || '''테러 발생 당시 루이나의 영공 통제 상황'''[br]{{{-2 역사상 첫 전면적 공중이동통제령(NA-RED)가 NAAS로부터 발령되자(0:52) 수천 대의 항공기들이 레이더망에서 순차적으로 사라진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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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8 | 사건 직후, 루이나 영공 전체가 즉시 봉쇄되었다. 이는 [[NA-RED]](루이나 전시항공통제령)이라 불리는 긴급 조치로, 전시 또는 국토에 대한 무차별 대형 테러 발생 시 민간 항공 운항을 전면 중지하고, 내외국 항공기 전부를 지상에 착륙시키는 국가비상계획이다. 해당 조치는 1979년 '노르테 사태' 이후 제정되어 있었으나, 실제로 발령된 것은 1.19 테러가 처음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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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0 | 이 조치의 시행으로, 루이나 상공을 비행 중이던 약 2,100대 이상의 항공기는 전원 지상으로 강제 착륙 명령을 받았으며,[* 군용기, 고위급 수송기, 대통령령에 따른 의약품/병력 수송기를 제외하고는 전면 이륙 금지.] 루이나에 접근 중이던 모든 외국 항공편은 경로를 변경해 인근 중립국 또는 출발지로 회항해야 했다.[* 단, 이 와중에도 한 건의 민간 비행만이 예외적으로 허가되었는데, 콜마르 시 외곽에서 독사에 물린 6세 아동이 즉각적인 해독제 투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직접 명령으로 플라자 응급의료항공이 긴급 이륙 허가를 받아 벨포르 종합의료센터로 해독제를 수송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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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2 | 이때 루이나와 인접한 빌베른, 동사랜드, 고랜드 일부 공항들은 "은하 회랑 계획(Operation Silver Lane)"에 따라 비상 착륙 허가를 내렸고, 출발지 회항이 어려운 외국 국적 항공기들을 임시로 받아들였다. 또한, 벨포르 항과 나보레, 세인트 바룬 등의 주요 항만 역시 전면 폐쇄 조치가 내려졌으며, 모든 입항 선박은 해안 경비대의 명령에 따라 정박·회항하거나 루이나 해군 제3함대의 호위 아래 지정된 해상통제선으로 철수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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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4 | 9시를 전후한 벨포르 중심부 테러에 이은 연쇄 무장폭동 및 차량 폭탄 공격에 벨포르, 톨루즈, 크레테, 세인트 바룬, 롱비치 등 루이나의 주요 대도시는 사실상 소개령[* 공습이나 대규모 테러에 대비해 도심의 주민, 인력, 차량 등을 외곽으로 소개하는 명령.]이 내려졌다. 당시 생중계된 고층 빌딩에 대한 무차별 무장공격에도 루이나 정부는 여전히 정확한 침투 경로와 배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상황이라, 주요 도시 정부와 대기업, 각급 기관들이 도심을 전면 소개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테러가 발생한 오전 내내 사실상 루이나의 모든 대도시의 스카이라인이 2차 공격의 잠재 타겟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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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6 | 뿐만 아니라 도심에 위치한 공립·사립학교들도 자체 휴교령을 내렸으며, 이에 따라 패닉에 빠진 시민들이 차량이나 도보로 도시를 빠져나가면서 벨포르, 톨루즈 등은 말 그대로 유령도시가 되었다. 보도에 따르면 한 기자는 이를 “헐리우드 재난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 표현했으며, 실제로 도심행 고속도로는 텅 비었고 외곽방면은 수백만 대의 차량으로 완전히 정체 상태였다고 한다. 이처럼 루이나 본토 상공이 봉쇄되고 전국의 수십 개 대도시 기능이 완전히 마비되면서, 루이나는 적어도 1월 19일 하루 동안은 완전한 전시상황에 놓여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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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8 | 상술한 대로 리처드 엘스워스 대통령은 사건 당시 초등학교를 시찰 중이었다. 국무실은 당시 대통령이 학교 강당에서 연설을 준비 중이었으며, 대통령은 곧바로 연설을 취소하고 현장지휘통제반(NCRC) 지하 벙커로 이동을 요청했으나, 현장 여건상 안전 확보가 어렵다고 판단되어 현지 공군기지에서 에어포스원에 긴급 탑승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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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0 | 그 직후 루이나 국가정보국(NIA)과 광역수사국(MIA)은 '''“다음 타겟은 ‘엔젤’(에어포스원 호출명)이다”'''라는 교신을 감청했다. 즉시 전용기의 조종석은 군사경찰 헌병 장교가 봉쇄하였고, 대통령 경호부는 기내의 모든 무기를 압수하고, 엘스워스 대통령의 전용실 주변에 전원 배치하여 외부 접근을 차단했다. 심지어 신원이 확인된 보좌관조차 별도 허가 없이 접근하지 못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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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2 | 당시 에어포스 원은 전투기 호위 없이 남부방공지대 상공을 단독으로 비행하고 있었으며, 긴급 출격한 F-22 호위기 2기는 연료 부족으로 속도를 늦추며 근접 비행을 시도해야 했다. 대통령은 워싱턴으로 즉시 복귀할 것을 요청했으나, 비서실장과 국가안보국, 비밀경호국이 모두 이를 만류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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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4 | > “다음 공격이 지상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대통령님. 지금은 공중이 가장 안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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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6 | 이 시점에서 엘스워스 대통령이 공군 상층부와 국가안보참모단의 의견을 받아들여, 기체를 벨포르로 복귀시키는 대신 세인트 바룬 인근 제5해군기지에 착륙하기로 결정하였다. 의전 차량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고, 대통령은 급히 대기 중이던 민간 수송밴에 탑승해야만 했다.[* 당시 현장 관계자는 “루이나 대통령이 민간 밴에 탑승한 것은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밝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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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8 | 이후 즉시 대국민 연설 준비를 위한 임시 방송 시스템이 설치되었고, 대통령은 이곳에서 생애 첫 “전시 비상선언”을 발표했다. 그러나 시설이 열악하고 통신 품질이 떨어지자 곧 크레테 외곽에 위치한 제2연합지휘소로 이동, 보다 정밀한 지휘 통제가 가능한 '델타 사령부'로 전환하였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 전용기의 모든 탑승자에게 탄저균 백신과 생물학 무기 노출 대비용 마스크가 지급되었으며, 기내 감염 전파 차단 프로토콜이 시행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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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9 | ==== 루이나 정부의 마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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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0 | 이 테러는 또 다른 부분으로 루이나를 충격에 빠트렸다. 테러의 충격으로 벨포르는 대혼란에 빠졌고, 국무부에서도 차량을 이용한 자살폭탄 테러가 감행되었다느니 국회의사당 및 대법원 건물에서도 폭탄이 터졌다느니 등의 유언비어들이 항공기 충돌을 전후로 대대적으로 퍼지면서 루이나의 주요 정부기관이 일제히 마비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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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2 | 루이나 상하원 양당 지도부는 테러 직후 급히 전용 방탄차량을 타고 엄중한 호위와 함께 교외의 핵전쟁 대비 시설로 이동했다. 벨포르항에 항모 2척이 입항했으며 준계엄령과 동시에 모든 항공기들은 착륙해 통제를 받아야 했다. 행정부의 명령으로 입법부 성원들을 피신시킨 것이 법적인 문제가 되었는데, 초기 혼란 와중에는 지도부가 별말없이 피신에 동의했으나 어느 정도 상황이 파악되자 많은 의회 지도자들이 워싱턴으로 복귀해서 상황을 돕고 싶다는 의사를 타진해왔다. 하지만 벙커에서 상황을 지휘하던 딕 체니 국무장관은 이를 엄격히 금지했는데 이에 의원들은 행정부가 어떻게 입법부의 행동을 구속할 수 있냐고 따졌으나, 체니는 당신들을 태워다 줄 헬기는 행정부 소속이니 당신들이 아니라 헬기에 명령을 내린 것이라는 논리로 씹어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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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4 | 상황이 원체 혼란스러웠던 데다가 당시 에어 포스 원에는 위성 TV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대통령과 보좌진은 큰 도시 위를 지나갈 때나 가끔 잡히는 영상을 보고서야 상황을 직접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대통령궁 벙커로 피신한 부통령과 정부 수뇌부들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었는데, 사용하일이 전혀 없어서 관리가 잘되어 있지 않던 탓에 영상이 나오면 소리가 안 나오고 소리가 나오면 영상이 안 나왔다고 한다. 게다가 산소가 부족해서 벙커에 있는 사람들이 졸음에 빠지는 일까지 발생했다고.[* 결국 몇 명을 내보내서 해결했다고 한다.] 통신장비에도 문제가 있어서 에어 포스 원과 대통령궁 벙커 간의 소통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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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6 | 공중에서 납치한 민항기를 대도시 고층건물에 충돌시켜 자폭 테러를 일으킨다는 구상은, 헐리우드의 재난 영화조차 쉽게 상상하지 못했던 기상천외한 작전이었다. 그러나 1.19 테러 발생 불과 7개월 전, 루이나의 민영방송사 VBS에서 방영된 《에이전트 루카스: 비공식 작전실》 시즌1 1화에서는, 루이나 정보기관이 자국의 민항기를 원격 납치해 벨포르 경제센터에 충돌시키려 한다는 음모론적 시나리오가 그려졌다. 극중에서는 “테러의 위협을 조작해 예산을 증액받으려는 강경파들”이 자작극을 벌인다는 설정이었으며, 이후 이 시리즈는 비슷한 장면으로 인해 온라인에서 재조명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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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8 | 한편으로는, 에드워드 M. 카빌의 1997년작 정치소설 《The Final Justification》(국내 출간명: 《정당한 마지막》)에서도 유사한 장면이 묘사된 바 있다. 작품의 마지막 장에서는 고랜드계 이중간첩 조종사가 여객기를 몰고 루이나의 상원 개원식이 한창이던 국회의사당을 자폭 공격하여 대통령 포함 고위직 다수가 사망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대통령 경호국 요원이 GMR-17 맨패즈로 격추를 시도하지만, 워낙 기체가 대형인 탓에 추락 없이 의사당을 강타한다.][* 실제로 작가 카빌은 원고 집필 당시 루이나 공군 고문단에 이 시나리오를 자문했다가 “그런 가능성은 전혀 고려한 적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카빌은 오히려 ‘이 정도는 이미 대비했을 줄 알았다’며 놀라워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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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0 | 이러한 배경 때문에 카빌의 소설은 1.19 사건 이후 다시 주목받았고, 사건 당일과 직후 수일간 **LNC(루이나 뉴스채널)**에서는 카빌과의 긴급 생방송 인터뷰를 수차례 반복 편성하였다. 또한 테러 발생 3일 뒤, 루이나 국방부는 국내 영화·드라마 작가 27인을 군사정보처 별관에 초청하여, “상상 가능한 모든 본토 공격 시나리오를 문서로 제출하라”고 지시했다는 보도가 확인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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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2 | 게다가 공중 납치는 아니지만, 비행기를 납치해 자폭 테러를 한 시도는 이미 예전에도 있었다. 《항공 사고 수사대》라는 TV 프로그램에서도 다룬 사건으로 알제리에서 반정부 테러리스트들이 공항에서 프랑스 여객기를 납치해 파리에 날아가 '''에펠탑에 자폭테러를 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연료가 부족해 마르세유에 중간기착을 했을 때 프랑스 헌병대 특수부대 GIGN을 투입시켜 막아냈다. 생존자들 중에는 1·19 테러를 보고 "만약 저들이 성공했다면 우리가 저런 꼴이 되었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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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3 | ||<tablealign=center><tablewidth=500><tablebordercolor=#000,Gray><nopad> [[파일:September_11thBFPD_TEMP_HQ_Burger_King_WTC_BelfortCity.jpg|width=1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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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4 | || BFPD의 임시 본부로 사용된 버거킹 점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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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5 | 한편 재난 대책 업무를 맡은 벨포르 경찰청 및 벨포르 소방청에서는 일시적으로 큰 혼란에 빠졌다. 세계무역센터의 붕괴라는 희대의 재난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었지만 여기에 더해서 당시 경찰과 소방, 기타 행정부서들이 모여서 합동으로 사건을 수습하는 훈련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상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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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7 | 그나마 1991년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 이후 경찰과 소방 인원들을 통합 지휘하는 기관인 커맨드 센터는 제대로 설치되어 있어 제 역할을 해야 했는데 하필이면 이 기관이 세계무역센터의 로비에 있었다[* 존나 말도안되는 우연이기도 하다]. 붕괴 직전까지 역할을 다했으나 결국 붕괴 직전 인원들이 급히 철수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더 큰 혼란에 빠지게 된 것이다. 또 타워가 붕괴되기 직전 벨포르 경찰청은 경찰관들에게 즉시 대피할 것을 명령했지만, 통신 체계의 문제로 벨포르 소방청 소방관들은 경고를 일체 전달 받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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