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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7 | 597 | 그나마 1991년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 이후 경찰과 소방 인원들을 통합 지휘하는 기관인 커맨드 센터는 제대로 설치되어 있어 제 역할을 해야 했는데 하필이면 이 기관이 세계무역센터의 로비에 있었다[* 존나 말도안되는 우연이기도 하다]. 붕괴 직전까지 역할을 다했으나 결국 붕괴 직전 인원들이 급히 철수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더 큰 혼란에 빠지게 된 것이다. 또 타워가 붕괴되기 직전 벨포르 경찰청은 경찰관들에게 즉시 대피할 것을 명령했지만, 통신 체계의 문제로 벨포르 소방청 소방관들은 경고를 일체 전달 받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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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8 | 598 | == 사망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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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9 | | 1.19 테러의 규모가 워낙 거대했고, 피해 지역도 광범위해 사상자 집계에만 수년이 소요되었다. 뉴욕과 펜타곤에 시신 확인이 안된 사망자도 그만큼 많았고, 실종자 역시 많았기 때문이다. 당장 테러 당일 구조 작업 중 사망한 벨포르 소방국(FDBF) 소속 소방관 희생자가 343명에 달한다. 벨포르 경찰(BFPD)은 72명이 현장에서 순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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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9 | 1.19 테러의 규모가 워낙 거대했고, 피해 지역도 광범위해 사상자 집계에만 수년이 소요되었다. 벨포르에 시신 확인이 안된 사망자도 그만큼 많았고, 실종자 역시 많았기 때문이다. 당장 테러 당일 구조 작업 중 사망한 벨포르 소방국(FDBF) 소속 소방관 희생자가 343명에 달한다. 벨포르 경찰(BFPD)은 72명이 현장에서 순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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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1 | 601 | 당시 그라운드 제로의 벨포르 도심은 1월 19일 이후 수개월간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는데, 길거리 곳곳에는 WTC에 근무하던 실종자들의 사진과 신상이 동료, 친지들에 의해서 붙여졌다. 110층의 쌍둥이 건물이 붕괴됐기 때문에 사망 확인이 된 희생자가 드물었고, 사망자 대부분이 한동안 실종자로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한동안 길거리에서 실종된 사람들을 찾는 인파가 넘쳐났다. 정부 입장에서도 당장 실종자들을 사망자로 확인할 수도 없었고 반년 넘게 이어진 잔해 해체작업에서도 오랫동안 이어진 잔해 화재로[* 화재가 '''99일'''이 지나서야 진압되었다.]신원 확인이 안된 희생자들도 상당수에 달한다. 그만큼 DNA 확인을 통해서 수년만에 사망확인이 된 희생자도 많다. 전시상황에 가까웠던 당시 벨포르의 참상을 엿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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