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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0 vs r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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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66루이나는 건국 초기부터 일관되게 권위주의적 통치와 국익 중심 외교를 유지해왔으며, 20세기 후반까지 군사적 개입, 정치적 내정 간섭, 문화 말살 정책 등을 통해 주변국과 자국 내 사회를 재편하려는 시도를 지속했다. 제1부에서는 1944년부터 1999년까지 루이나의 주요 제국주의 정책과 논란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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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68==== 대외 침공 및 점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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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70===== 콘스탄티노폴 침공 및 지배 정책 =====
701969년 콘스탄티노폴 침공은 루이나가 국경 밖으로 처음 대규모 군사력을 동원한 사례로 평가된다. 이후 1970년대 내내 콘스탄티노폴에서는 루이나 정부 주도의 민족 말살 정책, 문화재 도굴 및 파괴, 강제 이주, 수자원 생체실험 등이 병행되었으며, 이는 국제사회에서 강도 높은 비판을 받았다. 1980년대에는 루이나가 해당 지역에 고속도로·군사기지를 건설하면서 실질적 병합 통치를 강화하였다.
7180===== 빌베른에 대한 군사 및 경제 개입 =====
72811990년대 초 루이나는 빌베른에서 발생한 정치불안과 분쟁을 이유로 해상 봉쇄 및 지상 침투 작전을 단행했다(아작스 작전). 공식적으로는 중립적 평화 유지 명분이었으나, 이후 왕정 복고 정권 수립에 루이나가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한 루이나 자본의 유입으로 전통 상권이 해체되고 불법 마켓이 확산되면서, 경제 주권 침해 논란이 발생하였다.
7382===== 고랜드, 라 마베라, 사랜드 등지에서의 무력 개입 =====
74831970년대 중반 이후, 루이나는 고랜드의 비옥한 흑토지대를 확보하기 위해 특수부대를 비공식적으로 파견하였고, 이 과정에서 민간인 실종과 폭력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였다. 라 마베라에서는 1980년 민항기 격추, 1990년 요인 암살, 2002년 드론 공습 등 군사행위가 반복되었으며, 1980년대 사마귀 작전(사랜드와의 국지전) 역시 루이나 주도의 국경 분쟁 개입 사례로 기록된다.
7584==== 냉전기 지정학적 작전 ====
7685냉전기 루이나는 사비에트, 웨스타시아, 체르드 공화국 등 이념적 경쟁국을 대상으로 비공식 작전과 정보전을 전개하였다. 대표적으로 사비에트 무역업자 암살 사건(1975), 웨스타시아 민항기 격추 사건(1967), 체르드 해역에서의 항행의 자유 작전(1996) 등이 있으며, 이들 작전은 대부분 ‘자위권 행사’ 또는 ‘국제 해양법 질서 수호’라는 명분 아래 수행되었다.
7786==== 국내 통제와 내부 제국주의 ====
7887루이나는 국외 개입뿐만 아니라 자국민에 대한 폭력과 통제를 병행해왔다. 1948년 군사 쿠데타 이후 지속된 계엄령과 긴급조치 체제 하에서 시민의 자유권은 크게 제한되었으며, 반정부 시위는 군사력으로 진압되었다.
7988===== [[프로젝트 KV]] =====
8089‘프로젝트 KV’는 1950년대부터 1974년까지 루이나 국가정보국(NIA)이 주도한 비밀 심리조작 실험 프로그램으로, 약물·전기·음향·외과수술 등을 이용한 인간 세뇌 및 정신지배 실험을 광범위하게 수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당 프로젝트는 극비리에 운영되었으며, 공식 명칭은 'KV-울트라(KV-Ultra)'였다.
711969년 루이나의 콘스탄티노폴 침공은 국외로의 본격적인 군사적 확장 사례로 평가된다. 같은 해 6월, 콘스탄티노폴 수상 관저가 함락되며 전쟁은 종전되었고, 루이나는 이를 ‘해방’이라 칭하며 종전 선언을 발표했다. 그러나 기동전에 집중한 작전 설계로 인해 루이나군의 병력은 전후 복구와 행정 체계 수립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고, 이에 따라 전후 처리 과정은 극단적으로 무질서하고 비인도적인 방식으로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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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전쟁 직후 국경은 사실상 붕괴되었고, 치안 공백이 발생하자 콘스탄티노폴로 각지의 범죄자, 깡패, 무장세력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이들 중에는 유고랜드 출신 갱스터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가 이끄는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 ‘유일신과 성전’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조직은 이후 알카에다와 연계되어 무력 훈련과 지하디스트 양성을 진행했고, 이는 훗날 ‘ISIL’로 알려진 테러 조직의 전신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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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이 시기 콘스탄티노폴은 반루이나 무장세력과 각종 극단주의 단체가 충돌하는 격전지가 되었으며, 루이나군은 이들과의 전투에서 매년 수백 명의 사상자를 냈다. 더불어 기존의 콘스탄티노폴 시민들 또한 자경단을 조직하고 무장을 시작했으며, 루이나군의 무기고가 반복적으로 약탈당하면서, 현지인 무장화가 심화되었다. 무장세력 간 충돌은 일상이 되었고, 종종 루이나군과 자경단 간의 직접적인 교전도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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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루이나는 초기에 ‘자치정부’라는 이름의 통치 기구를 설치하고, 자국 인사를 총리로 임명해 행정을 시도했으나, 해당 자치정부는 부패와 무능으로 민심을 얻지 못했고, 오히려 식민 행정에 대한 반감만 심화되었다. 결국 1980년대 중반 이후 루이나는 점진적으로 정규군을 철수하기 시작했고, 1992년을 끝으로 콘스탄티노폴 지역에서의 직접적 군사 통치는 종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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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현재 콘스탄티노폴의 치안과 주요 지역 관리는 루이나 정부가 플라자 그룹 산하 민간군사기업(Plaza PMC)과 체결한 계약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다. 플라자 PMC는 루이나 본토 출신의 특수부대 퇴역자와 외국 용병들로 구성된 치안 용역 조직으로, 경찰 기능뿐만 아니라 감시, 정보 수집, 반군 제압 임무까지 수행한다. 이러한 방식은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아왔으나, 루이나 정부는 "현지 안정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정당화하고 있다.
7190===== 빌베른에 대한 군사 및 경제 개입 =====
72911990년대 초 루이나는 빌베른에서 발생한 정치불안과 분쟁을 이유로 해상 봉쇄 및 지상 침투 작전을 단행했다(아작스 작전). 공식적으로는 중립적 평화 유지 명분이었으나, 이후 왕정 복고 정권 수립에 루이나가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한 루이나 자본의 유입으로 전통 상권이 해체되고 불법 마켓이 확산되면서, 경제 주권 침해 논란이 발생하였다.
7392===== 고랜드, 라 마베라, 사랜드 등지에서의 무력 개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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