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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6 | 136 | ==== 타임라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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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7 | 137 | ===== 5월 28일, 주심재판관 임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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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8 | 무작위 추첨을 통해 뽑힌 주심재판관으로 민승균 헌법재판관이 임명되었다.[* 당초 헌정사상 최초로 진행되는 정당해산심판인데다가 제1야당에 대한 해산에 관련된 중대한 일이므로 내규에 따른 전자추첨 대신 헌법재판소장 및 헌법재판관이 참석하는 회의를 통해 주심재판관을 결정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정치적 민감성을 고려해 일반 사건과 똑같은 방식인 전자추첨을 통해 임명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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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0 | 민승균 재판관은 대통령이나 국회 임명이 아닌 금경한 전 대법원장의 인선에 의해 취임되었기에 정치적 논란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우며, 웨스타시아의 괴뢰국이었던 시절에는 시에타대법원장을 지냈으며 독립 후 사법연수원 교수로 지냈기에 법리해석분야의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으므로 무작위 추첨을 진행했음에도 논란이 없는 인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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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8 | 141 | ===== 6월 21일, 첫 재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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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9 | 142 | 1991년 6월 21일, 헌재 대심판정에서 공개변론이 시작되었다. 청구인(정부)과 피청구인(자유아라비아)은 양측 모두 20명 이상의 변호인단을 구성해 참석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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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0 | 143 | 이날 정부 측은 다음과 같은 혐의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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