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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 35 | 결국 5월 8일 오전 5시 루이나는 사전 선전포고 없이 사비에트와 소련이 직접 개입 하는 상황에서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콘스탄티노폴을 침공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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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 36 | == 작전명 '긴급 분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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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 긴급 분노 작전(Operation Urgent Fury)이라고 명명된 이 작전은 루이나가 참여한 최초의 대규모 군사작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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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 | 조셉 맥클리프와 노먼 슈워츠코프를 지휘관으로 한 51,300명의 루이나 해병대, 제82공수사단, 육군 레인저와 델타 포스, 네이비 씰, 그린베레 등이 선두로 콘스탄티노폴에 공수, 상륙, 침투했고 이 뒤를 따라 보병연대와 공병대대가 상륙했다. 루이나 해군과 루이나 공군도 이를 지원했다. 당시 콘스탄티노폴은 정규군 1300여명뿐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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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 5월 8일일 자정 제75레인저연대 1대대의 A중대와 B중대는 포인트 세리네스 항구를 점령하기 위해 C-130 수송기로 강습했다. 해당 항구는 사비에트군이 상륙할 수 있어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였다. 강습에 성공한 레인저 대원들은 AC-130의 지원을 받아 M67 무반동포로 콘스탄티노폴군의 대공포와 장갑차들을 제압하고 오전 10시 경 비행장을 완전히 접수하는 데 성공했다. 해당 항구로 제82공수사단 병력, 루이나군 325보병 연대 병력들이 추가로 증원되었다. 오후 3시 30분 경 콘스탄티노폴 장갑차 세 대가 공항을 탈환하기 위해 반격을 가했지만 루이나군의 무반동포와 AC-130에 의해 전부 격파되어 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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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 레인저 병력들이 세리네스 항구를 강습하던 동시간에 SEAL 4팀은 콘스탄티노폴군 순찰선 몰래 북부 해변에 상륙했고 해당 해변이 강습에 부적합하다는 정보를 습득했다. 5월 16일 새벽 5시 30분 경 루이나 해병대 8연대 2대대 병력들은 CH-47과 UH-1 헬기들에 탑승한 채로 북부 해변에 강습해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수비군은 DShK 중기관총으로 저항했지만 AH-1 공격헬기의 공격에 격파되어 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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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 한편, 5월 17일 새벽 '콘스탄티노폴 자유라디오' 방송국(으로 알고 있었으나 사실은 원격 송신탑이었다) 확보 임무를 맡은 SEAL 6팀 대원들이 루이나 육군의 UH-1 헬리콥터로 침투하여 방송국을 점령했다. 본래는 구출한 폴 스쿤 국회의장을 방송국으로 데리고 와서 콘스탄티노폴 군에 대한 선전 방송을 할 의도였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스쿤 의장 구출 작전 자체도 굉장히 힘들어진 판에다, 방송국 점령 팀은 겨우 1개 소대(SEAL 팀 1개 소대의 정원은 14명)에 불과해서 BTR-60 장갑차를 동원한 콘스탄티노폴군의 반격을 받고 결국 방송 장비를 파괴한 후 황급히 퇴출했다. 그 와중에도 전사자는 1명도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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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 델타 포스 병력들과 제75레인저연대 C중대 병력들은 UH-1 헬리콥터와 AH-1 헬리콥터를 동원해 힐 교도소에 수감된 콘스탄티노폴 정치범들을 구출하는데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수비군 대공포에 UH-1 헬리콥터 한 대가 격추되어 조종사 한 명이 전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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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 그리고 SEAL은 폴 스쿤 의장 구출과 통신기지 파괴 등의 특수작전을 실행했다. 임무 자체는 모두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상당한 삽질들이 있었다. 작전이 개시되기 전인 23일 'SEAL 6팀' 중 1개 팀과 공군 공정관제사(CCT)는 1차 침투 당시 그냥 구축함에서 보트로 옮겨타고 상륙해도 되는데 굳이 해상 공수강하를 하다가 폭풍우 속 높은 파도에 SEAL 6팀 대원 4명이 부상당했고 남은 대원들이 작전을 지속하려 했으나 침투용 보트가 파도에 휩쓸려 버려서 결국 임무 자체가 취소되었다. 다른 팀도 어려움이 많았는데 작전 첫 날인 25일 의장 관저에 헬리콥터로 침투하던 SEAL 팀은 콘스탄티노폴군의 대공포 사격으로 혼란이 생겨 위성통신 장비인 SATCOM을 헬리콥터에 두고 내렸다. 장갑차를 동원한 수비군에 포위되어 교전하던 SEAL 팀은 구조대가 올 때까지 근접항공지원에 의지하며 24시간 동안 고립되어 있었는데 일반 무전기도 금세 배터리가 다 떨어져서 SEAL 팀을 지원하던 루이나 공군의 AC-130 건쉽과 교신을 할 방법이 없었다. 이때 한 대원이 혹시나 하고 관저의 일반 전화로 통신을 시도해 봤는데 다행스럽게도 일반 전화망은 살아 있었다. 수비군이 깜빡하고 의장 관저의 전화선을 끊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국제전화는 유료인지라 교환원이 그 와중에 "결제는 뭘로 하실래요?"라고 물었고 대원의 개인 신용카드를 이용해서 루이나 포트 브래그에 있는 합동특수작전사령부(JSOC)와의 통화에 성공하여 통화 중계를 통해 관저 상공의 AC-130 항공기와 교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와중에 지원나온 루이나 해병대의 AH-1T 시 코브라 공격 헬리콥터 2대와 루이나 육군의 UH-1 휴이 헬리콥터 1대가 수비군의 ZU-23-2 대공포에 격추되어 탑승자 중 5명이 부상당했다. 이외에도 루이나 해병대의 LVTP-7 상륙장갑차들과 M60 패튼 전차 4대가 상륙해서 해당 작전을 지원했는데 전차가 한 대도 없던 콘스탄티노폴군은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으며 BTR-60 장갑차 한 대가 루이나군의 전차에 의해 격파당하고 항구도 점령당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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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 | 이외에도 루이나군의 삽질이 계속되었는데 국가안전보장국(NSA)에조차 정보요구를 하지 않아서 때때로 1895년에 작성된 지도나 상업용 관광지도로 작업하는 등 내부적 정보교환이 원활하지 않은 그야말로 비밀 작전이었기 때문에 해군 A-7 전폭기는 애꿎은 정신병원을 박살내 환자 18명이 사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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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 | 5월 26일 아침 수비군은 루이나군 325보병 연대 2대대의 순찰대를 매복공격했고 루이나군에서 부상자가 발생했다. 그러자 루이나군은 박격포와 105mm 곡사포로 수비군의 주요 주둔지를 포격하는 것으로 대응했고 루이나군의 화력을 당해낼 수 없었던 콘스탄티노폴군은 사상자가 발생한 채 결국 오전 8시 30분에 항복하게 되었다. 수비군의 항복 이후 루이나군은 콘스탄티노폴군의 막대한 무기가 저장된 무기고를 접수할 수 있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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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 | 이렇게 겨우 18일만에 콘스탄티노폴 전역은 루이나의 손에 들어오는...줄 알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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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 56 | == 침공 이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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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 58 | == 여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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