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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2 | 142 | === 국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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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3 | 143 | == 역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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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4 | 144 | === 고대 - 근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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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5 | | 예로부터 유고랜드 땅은 아무것도 없이 텅텅 빈 사막이었다. 지리적 이점 또한 딱히 없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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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7 | | 그리고 1904년, 영원히 변두리 깡촌으로만 남을 것 같은 이 지역에 지구 반대편에서 온 불굴의 의지들이 이주하기 시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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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5 | 예로부터 유고랜드 땅은 아무것도 없이 텅텅 빈 사막이었다. 지리적 이점 또한 딱히 없어 라 마베라의 식민 지배 시기 전까지는 이름 없는 마을 하나만 있었을 뿐이었다[* 이 마을은 현재 가자우에트 지역에 존재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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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7 | 하지만 식민 지배 시기부터 라 마베라는 시디벨아베스(지금 유고랜드 수도인 그 시디벨아베스 맞다.)란 계획도시를 개발하기 시작하면서 인구는 급격히 증가하게 된다. 기록상 1905년까지 무려 200만명의 고랜드인이 이곳으로 이주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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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9 | 동시에 1904년, 지구 반대편에서 온 불굴의 의지들 또한 새로운 꿈을 품고 이곳으로 이주하기 시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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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8 | 150 | === 현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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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 | 1904년부터 한국인, 혹은 고려인들 또한 썩을 대로 썩어 들어간 조선을 떠나 머나먼 이곳으로 이주해오기 시작한다. 1930년까지 약 200만명의 한국인들이 이주했으며 소련의 고려인 억압 정책으로 인해 소련에 거주하던 300만명, 그리고 조선에서 식민 지배에 저항하기 위해 이주한 500만명까지 합쳐서 총 1000만명이나 되는 인구가 이주하기 시작하면서[* 왜 하필이면 한국에서 드럽게 멀리 떨어진 이곳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이주했냐면, 똑같은 식민 지배지여도 비교적 변두리라 공권력이 닿지 않는 곳이 이곳 시디벨아베스였기 때문이었다.],영원히 변두리 깡촌으로만 남을 것 같던 이곳에 유래 없는 활기가 돌기 시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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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3 | 하지만 아직은 라 마베라의 식민지 신분. 라 마베라에서도 엄청나게 높은 인구 증가에 관심을 가졌고, 느슨하게 풀려있던 목줄을 슬슬 죄여오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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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5 | 이런 라 마베라의 행태는 1939년 즈음 세테트에서 석유가 발견됨에 따라 더욱 심해졌다. 하지만 한국인과 고랜드인(아랍인)들 또한 식민지배의 전적이 있던지라 거센 저항(라 마베라 시디벨아베스 총독부 방화 사건 등)과 독립운동을 이어나갔다. 지속되는 반발에, 고랜드 반란이란 급한 불을 꺼야 했던 마베라는 결국 1940년 7월 21일 시디벨아베스 독립에 도장을 찍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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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7 | 떠나갈 듯 한 환호성도 잠시, 한국인과 아랍인은 시디벨아베스[* 한국명으론 신한성. 문자 그대로 새로운 한성(서울)이란 뜻이다. 현재까지 시디벨아베스의 지명으로 상당히 많이 쓰이고 있다. 특히 이주민 2~3세대 노년층이 자주 애용하며, 보통 시디벨아베스를 신한성이라 지칭한다. 당연히 시디벨아베스 해도 알아듣기는 한다만. 특이한 케이스지만, 이들 중 일부는 자신의 국가를 유고랜드가 아닌 신한성으로 소개하기도 한다.]의 주류가 누구인지를 두고 다시금 승부를 벌이기 시작한다. 한평생 자신들의 나라를 갈망한 한국인, 그리고 자신들이 일군 모든 것을 뺏길 처지에 놓인 아랍인들. 모래바람이 휘날리는 유고랜드 땅에 전운이 드리우는 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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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9 | 1940년 2월 1일, 1차 유고랜드 내전이 발발했다. 아랍인들의 선제공격으로 이루어진 이 전쟁은 고랜드에서 지원받은 첨?단 무기[* 출처 미상의 미제 땅크, 자주포 등이 바로 그것이었다.] 몇 대로 무장한 아랍군이 우세일 것으로 예측되었으나, 철제 농기구와 쪽수로 무장한 한국쪽 군의 기세를 꺾기는 불가능했다. 결과적으론 아랍군의 대패였으며, 아랍인들은 살림살이를 내다버리고 조내령 뒤쪽으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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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1 | 1940년 6월 28일, 2차 유고랜드 내전이 발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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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0 | 162 | == 자연환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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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 | 163 | === 지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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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2 | 164 | === 기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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