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r1 vs r2
......
66||<height=35> '''결성''' ||1966년 12월 24일 {{{-2 (베르코트 교도소)}}} ||
77||<height=35> '''규약 채택''' ||1968년 5월 1일 ||
88||<height=35> '''국가''' ||[include(틀:루이나국기)][[루이나]] ||
9||<height=35> '''근거지''' ||벨포르 특별시 동부 올덴버그 지구 ||
9||<height=35> '''근거지''' ||올덴버그 {{{-2 (루이나 남부)}}} ||
1010||<height=35> '''창설자'''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00; font-size: 0.75em"
1111{{{#fff '''초대 평의장'''}}}}}} 도메니코 R. 팔리아로 {{{-2 (1966~1989)}}} ||
1212||<height=35> '''구성''' ||이탈리아계 루이나인 이주민 3~4세 ||
......
3535{{{-2 — 도메니코 R. 팔리아로, 1991년 공판 최후진술}}}
3636}}}
3737
38'''올덴버그 마피아'''(Ольденбургская мафия / Oldenburg Mafia)는 벨포르 특별시 동 올덴버그 지구를 근거지로 한 루이나의 범죄조직이다. 조직 자체는 스스로를 '''성 니콜라 형제단'''이라 칭했으며, 올덴버그 마피아는 수사기관과 언론이 붙인 명칭이다.
38'''올덴버그 마피아'''(Ольденбургская мафия / Oldenburg Mafia)는 루이나 항구도시 올덴버그를 근거지로 한 범죄조직이다. 조직 자체는 스스로를 '''성 니콜라 형제단'''이라 칭했으며, 올덴버그 마피아는 수사기관과 언론이 붙인 명칭이다.
3939
4019세기 말 올덴버그에 정착한 이탈리아계 이주민 사회의 상호부조회를 모체로 하나, 범죄조직으로서의 결성은 1966년 12월 24일 베르코트 교도소에서 이루어졌다. 결성의 직접적 계기는 [[공화국의 방패]]의 항만 진출이었다. 방패가 1963년부터 노동조합 파괴 용역을 수주하며 올덴버그의 하역 조직을 잠식하자, 이에 맞선 충돌로 수감된 이주민 노동자들이 옥중에서 결사를 조직한 것이다.
4019세기 말 올덴버그 구항 일대에 정착한 이탈리아계 이주민 사회의 상호부조회를 모체로 하나, 범죄조직으로서의 결성은 1966년 12월 24일 베르코트 교도소에서 이루어졌다. 결성의 직접적 계기는 수도에 본부를 둔 [[공화국의 방패]]의 남부 항만 진출이었다. 방패가 1963년부터 노동조합 파괴 용역을 수주하며 올덴버그의 하역 조직을 잠식하자, 이에 맞선 충돌로 수감된 하역 노동자들이 옥중에서 결사를 조직한 것이다.
4141
4242조직의 성격을 결정한 사건은 1976년 방패의 소멸이었다. [[루이나 국방부 특무처|특무처]]가 자체 작전 자금을 조달하던 아편 반입 경로의 국내 유통 부분은 1967년 이후 방패가 장악하고 있었는데, 방패가 제거되면서 이 유통망이 통째로 비었고 올덴버그가 이를 접수했다. 국가가 만든 조직이 무너진 자리를 국가에 맞서 만들어진 조직이 물려받은 셈이다.
4343
......
5353올덴버그 마피아라는 통칭은 1971년 [[MIA|광역수사국]]의 전신인 광역범죄조사과가 압수한 규약 문서를 분석하면서 수사 기록에 처음 등장했다. 조직원은 이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내부에서는 단순히 형제단 또는 회(會)라고 불렀다.
5454
5555== 기원 ==
56=== 올덴버그 ===
57올덴버그는 루이나 남부 해안의 항구도시다. 고대에 건설된 항구를 기원으로 하며, 구시가에는 로만 루이나 시기의 성벽과 열주 광장이 남아 있어 루이나에서 고전 유산이 가장 잘 보존된 도시로 꼽힌다.
58
59이 고전적 외관과 도시의 실제 사정은 오래 어긋나 있었다. 남부는 19세기 산업화에서 소외되어 벨포르·콜마르 같은 북부 공업 도시와 소득 격차가 컸고, 행정·사법 기관의 인력과 예산도 열악했다. 중앙의 제도가 형식상으로만 존재하고 실제 분쟁은 지역 사회 내부에서 해결되는 상태가 20세기 중반까지 이어졌으며, 이것이 올덴버그에 마피아형 조직이 뿌리내린 조건이 되었다.
60
5661=== 상호부조회 ===
57올덴버그는 1880년대부터 이탈리아계 이주민이 정착한 벨포르 동 배후 지역이다. 이주민 대부분이 하역과 어업에 종사했고, 언어와 신용의 장벽 때문에 제도권 금융과 행정에서 사실상 배제되어 있었다. 1893년 설립된 성 니콜라 상호부조회는 이 공백을 메우는 조직이었다. 소액 대부, 장례 부조, 상해 보상, 그리고 조합원 간 분쟁의 중재가 주된 기능이었다.
621880년대부터 이탈리아계 이주민이 올덴버그 일대에 대규모로 정착했다. 이주민 대부분이 하역과 어업에 종사했고, 언어와 신용의 장벽 때문에 제도권 금융과 행정에서 사실상 배제되어 있었다. 1893년 설립된 성 니콜라 상호부조회는 이 공백을 메우는 조직이었다. 소액 대부, 장례 부조, 상해 보상, 그리고 조합원 간 분쟁의 중재가 주된 기능이었다.
5863
5964분쟁 중재 기능이 이후 조직의 성격을 결정했다. 이주민 사회의 분쟁은 법원으로 가지 않았다. 절차가 길고 비용이 크며 언어가 통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판결이 이주민에게 불리하게 나온다는 인식이 뿌리 깊었기 때문이다. 상호부조회는 재판을 대신했고, 그 판정을 집행할 수단으로 물리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6065
......
6570
6671== 결성 ==
6772=== 방패의 진출 ===
681963년 [[공화국의 방패]]가 기업으로부터 노동조합 파괴 용역을 수주하기 시작하면서 올덴버그와 충돌이 발생했다. 방패는 파업 현장에 행동대를 투입해 대체 인력을 호위했고, 이는 하역 인력 배치권을 쥔 상호부조회의 이해와 정면으로 부딪쳤다. 1964년 11월 방패가 롱비치 항만노조 회관에 방화한 사건 이후 항만 전역에서 긴장이 높아졌다.
73[[공화국의 방패]]는 벨포르에 본부를 둔 전국 조직이었고 남부에는 기반이 없었으나, 1962년 올덴버그 지부를 설치하며 진출했다. 1963년 방패가 기업으로부터 노동조합 파괴 용역을 수주하기 시작하면서 올덴버그와 충돌이 발생했다. 방패는 파업 현장에 행동대를 투입해 대체 인력을 호위했고, 이는 하역 인력 배치권을 쥔 상호부조회의 이해와 정면으로 부딪쳤다. 1964년 11월 방패가 롱비치 항만노조 회관에 방화한 사건 이후 항만 전역에서 긴장이 높아졌다.
6974
7075올덴버그가 대응할 수단은 제한되어 있었다. 방패는 등록된 합법 단체였고 압수수색을 받은 전례가 없었으며, 경찰에 신고해도 조서에 기록되는 것은 대개 이주민 측의 폭력이었다. 방패의 배후에 국가가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알지 못했으나, 방패에 대해 국가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7176
7277=== 베르코트 교도소 ===
731965년 벨포르 항에서 벌어진 충돌로 하역 노동자 다수가 폭력 혐의로 수감되었다. 이 가운데 상호부조회 하역반장이던 도메니코 R. 팔리아로가 있었다. 당시 34세였던 팔리아로는 베르코트 교도소에서 동향 수감자들을 규합했고, 1966년 12월 24일 성탄절 밤에 결사의 창설을 선언했다.
781965년 올덴버그 항에서 벌어진 충돌로 하역 노동자 다수가 폭력 혐의로 수감되었다. 이 가운데 상호부조회 하역반장이던 도메니코 R. 팔리아로가 있었다. 당시 34세였던 팔리아로는 베르코트 교도소에서 동향 수감자들을 규합했고, 1966년 12월 24일 성탄절 밤에 결사의 창설을 선언했다.
7479
7580창설 취지는 방어적이었다. 흩어진 개인으로는 조직화된 상대를 이길 수 없으므로, 상호부조회의 느슨한 결속을 서약과 계급을 갖춘 결사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창설에 참여한 인원은 팔리아로를 포함해 9명이며, 전원이 하역 노동자 또는 어업 종사자였다.
7681
......
109114
110115== 사업 ==
111116=== 양륙권 ===
112올덴버그의 사업 가운데 가장 특징적인 것은 양륙권(揚陸權) 매각이다. 조직은 밀수품을 직접 취급하기보다 벨포르 항의 특정 부두 구간에서 물품을 내릴 권리를 다른 범죄조직에 팔았다. 하역 인력과 야간 경비, 세관 검사 일정을 통제하고 있었으므로 이것이 가능했다.
117올덴버그의 사업 가운데 가장 특징적인 것은 양륙권(揚陸權) 매각이다. 조직은 밀수품을 직접 취급하기보다 올덴버그 항의 특정 부두 구간에서 물품을 내릴 권리를 다른 범죄조직에 팔았다. 하역 인력과 야간 경비, 세관 검사 일정을 통제하고 있었으므로 이것이 가능했다.
113118
114이 사업은 조직에 두 가지 이점을 주었다. 물품에 직접 손대지 않으므로 밀수 혐의 입증이 어렵고, 경쟁 조직이 올덴버그를 제거할 유인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실제로 1970년대 루이나로 반입된 밀수품 상당량이 올덴버그에 양륙료를 지불하고 들어왔으며, 조직의 안정적 수입원이 되었다.
119이 사업은 조직에 두 가지 이점을 주었다. 물품에 직접 손대지 않으므로 밀수 혐의 입증이 어렵고, 경쟁 조직이 올덴버그를 제거할 유인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남부 해안은 감시가 성긴 반면 벨포르로 이어지는 육상 수송로가 확보되어 있었으므로 밀수 경로로서의 가치가 컸다. 실제로 1970년대 루이나로 반입된 밀수품 상당량이 올덴버그에 양륙료를 지불하고 들어왔으며, 조직의 안정적 수입원이 되었다.
115120
116121=== 담배와 아편 ===
1171221967년부터 조직은 담배 밀수에 본격적으로 참여했다. 당시 국내 유통 부분은 [[공화국의 방패]]가 장악하고 있었으므로 올덴버그의 몫은 양륙 단계에 한정되었고, 두 조직의 마찰은 이 시기 내내 계속되었다.
......
1241291977년 한 해에 접수된 납치 사건 84건 가운데 정치 조직의 소행으로 확인된 것은 19건에 불과하며, 나머지의 대부분이 조직범죄의 소행이었다.
125130
126131=== 노조와 건설 ===
127하역 인력 통제에서 출발한 노동조합 침투는 1980년대에 건설·폐기물 부문으로 확대되었다. 조직은 항만 관련 노조 지부 임원을 확보한 뒤 조합원 연금 기금의 운용에 개입했고, 벨포르 동부의 재개발 사업에서 하도급 배분을 통제했다. 이 시기 올덴버그의 수입 가운데 합법 사업 부문의 비중이 절반을 넘었다.
132하역 인력 통제에서 출발한 노동조합 침투는 1980년대에 건설·폐기물 부문으로 확대되었다. 조직은 항만 관련 노조 지부 임원을 확보한 뒤 조합원 연금 기금의 운용에 개입했고, 올덴버그 구시가 재개발 사업에서 하도급 배분을 통제했다. 이 시기 올덴버그의 수입 가운데 합법 사업 부문의 비중이 절반을 넘었다.
128133
129134== 항만 전쟁 ==
1301351975년부터 1979년까지 올덴버그는 롱비치와 톨루즈의 경쟁 조직과 대규모 항쟁을 벌였다. 발단은 방패의 붕괴로 비게 될 유통망의 선점 다툼이었으며, 특히 롱비치를 근거지로 한 사보이아 조직과의 충돌이 격렬했다.
131136
132이 항쟁으로 2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사망자에는 조직원뿐 아니라 무관한 시민이 다수 포함되었고, 1977년 벨포르 동부 식당에서 발생한 총격으로 손님 6명이 사망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당시 이 사망자들은 대부분 정치 폭력 통계에 함께 집계되었다. 검은 10년의 혼란 속에서 수사기관이 정치 조직의 소행과 조직범죄의 소행을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1981년 정보기관 조사위원회가 경찰 통계를 재분류하면서 이 시기 사망자의 약 4분의 1이 조직범죄 관련으로 재분류되었다.
137이 항쟁으로 2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사망자에는 조직원뿐 아니라 무관한 시민이 다수 포함되었고, 1977년 올덴버그 구시가 식당에서 발생한 총격으로 손님 6명이 사망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당시 이 사망자들은 대부분 정치 폭력 통계에 함께 집계되었다. 검은 10년의 혼란 속에서 수사기관이 정치 조직의 소행과 조직범죄의 소행을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1981년 정보기관 조사위원회가 경찰 통계를 재분류하면서 이 시기 사망자의 약 4분의 1이 조직범죄 관련으로 재분류되었다.
133138
134항쟁은 1979년 평의회 간 협정으로 종결되었다. 협정으로 벨포르 동항은 올덴버그, 롱비치항은 사보이아 조직이 관할하며, 분쟁은 양측 평의원으로 구성된 합의체가 판정하기로 정해졌다.
139항쟁은 1979년 평의회 간 협정으로 종결되었다. 협정으로 올덴버그 항은 형제단이, 롱비치항은 사보이아 조직이 관할하며, 분쟁은 양측 평의원으로 구성된 합의체가 판정하기로 정해졌다.
135140
136141== 쇠퇴 ==
137142=== 협력자 제도 ===
......
149154
150155== 평가 ==
151156=== 국가가 만든 공백 ===
152올덴버그에 대한 평가에서 반복적으로 지적되는 것은 이 조직이 국가의 부재가 아니라 국가의 작위(作爲)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마피아형 조직은 통상 국가가 보호와 분쟁 해결을 제공하지 못하는 곳에서 그 기능을 대신하며 발생하, 올덴버그의 경우 국가는 단순히 부재했던 것이 아니라 [[공화국의 방패]]라는 조직을 만들어 그 지역에 투입했다.
157올덴버그에 대한 평가에서 반복적으로 지적되는 것은 이 조직이 국가의 부재가 아니라 국가의 작위(作爲)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마피아형 조직은 통상 국가가 보호와 분쟁 해결을 제공하지 못하는 곳에서 그 기능을 대신하며 발생하, 남부의 제도적 공백이라는 이 조건은 올덴버그에도 그대로 존재했다. 다만 올덴버그의 경우 그 공백 위에 국가가 만든 조직이 얹혔다. 국가는 단순히 부재했던 것이 아니라 [[공화국의 방패]] 만들어 그 지역에 투입했다.
153158
154159이주민 사회의 입장에서 이 구도는 명확했다. 조직화된 상대가 자신들을 공격하는데 경찰은 그 상대를 수사하지 않았고, 법원은 이주민에게 불리했으며, 자신들이 대응하면 그것만이 기록되었다. 1991년 공판에서 팔리아로가 남긴 최후진술은 이 인식을 요약한 것으로 자주 인용된다.
15516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