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 1 | [[분류:루이나]][[분류:유고랜드]][[분류:알자미아]][[분류:유고랜드의 폭탄 테러]][[분류:사이클론 작전]][[분류:1997년]] |
|---|
| 2 | 2 | [include(틀:사건사고)] |
|---|
| 3 | 3 | |
|---|
| 4 | | [[파일:카스바 호텔 폭탄 테러 현장.jpg]] |
|---|
| 5 | | |
|---|
| 6 | | * 러시아어 명칭: Взрыв в отеле «Касба» |
|---|
| 7 | | * 영어 명칭: Kasbah Hotel bombing |
|---|
| 8 | | * 아랍어 명칭: تفجير فندق القصبة |
|---|
| 4 | [[파일:영랑호텔 폭탄 테러 현장.jpg]] |
|---|
| 5 | |
|---|
| 6 | * 러시아어 명칭: Взрыв в отеле «Ённан» |
|---|
| 7 | * 영어 명칭: Yeongnang Hotel bombing |
|---|
| 8 | * 아랍어 명칭: تفجير فندق يونغنانغ |
|---|
| 9 | 9 | |
|---|
| 10 | 10 | ||<tablealign=right><bgcolor=#131230><color=#ffffff> '''발생 일시''' [br] (현지시간) || 1997년 4월 12일 토요일 오후 9시 47분 || |
|---|
| 11 | 11 | ||<bgcolor=#131230><color=#ffffff> '''사건 종료''' [br] (현지시간) || 1997년 4월 14일 오전 7시 20분[* 구조 작업 종료 및 마지막 시신 수습 시각.] || |
|---|
| 12 | | ||<bgcolor=#131230><color=#ffffff> '''발생 장소''' || [[유고랜드]] 시디벨아베스 카스바 지구 카스바 호텔[br]{{{-2 [include(틀:국기, 국명=유고랜드)]}}} || |
|---|
| 12 | ||<bgcolor=#131230><color=#ffffff> '''발생 장소''' || [[유고랜드]] 시디벨아베스 영랑구 영랑호텔[br]{{{-2 [include(틀:국기, 국명=유고랜드)]}}} || |
|---|
| 13 | 13 | ||<bgcolor=#131230><color=#ffffff> '''사고 유형''' || [[테러]][* 내부자의 협조를 받은 차량 폭탄 공격.] || |
|---|
| 14 | 14 | ||<bgcolor=#131230><color=#ffffff> '''발생 주체''' || [[알자미아]][* 알자미아는 공식적으로 책임을 주장하지 않았다. 1997년 5월 루이나 정부는 국가정보국 평가를 근거로 알자미아를 배후로 지목하고 테러조직으로 지정했다.] || |
|---|
| 15 | 15 | ||<bgcolor=#131230><color=#ffffff> '''범인''' || 칼리드 무사 알사누시 (주모자, 도주)[br]실행·지원 인원 7명[* 3명 사형, 2명 무기징역, 1명 도주, 1명 군정보국 구금 중 탈주.] || |
|---|
| 16 | 16 | ||<bgcolor=#000000> {{{#white '''사망'''}}} || '''41명'''[* 루이나인 17명, 유고랜드인 22명, 제3국인 2명.] || |
|---|
| 17 | 17 | ||<bgcolor=#FFBB00> {{{#black '''부상'''}}} || '''213명''' || |
|---|
| 18 | 18 | |
|---|
| 19 | | > '''"그날 밤 카스바 호텔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은 루이나의 군인이었고, 유고랜드의 노동자였으며, 무엇보다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루이나는 이들을 죽인 자들을 찾아낼 것입니다."''' |
|---|
| 19 | > '''"그날 밤 영랑호텔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은 루이나의 군인이었고, 유고랜드의 노동자였으며, 무엇보다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루이나는 이들을 죽인 자들을 찾아낼 것입니다."''' |
|---|
| 20 | 20 | > ---- |
|---|
| 21 | 21 | > 사건 이튿날 [[린드 B. 랭스턴]] [[루이나 대통령|대통령]]의 성명 |
|---|
| 22 | 22 | |
|---|
| 23 | | > '''"카스바 호텔과 와디 사크르 기지에서 사용된 군용 폭약은 1986년 국가정보국이 사이클론 작전을 통해 공급한 폭약과 같은 생산 로트였다. 정부는 1997년 이 사실을 확인하고도 5년 동안 공개하지 않았다."''' |
|---|
| 23 | > '''"영랑호텔과 와디 사크르 기지에서 사용된 군용 폭약은 1986년 국가정보국이 사이클론 작전을 통해 공급한 폭약과 같은 생산 로트였다. 정부는 1997년 이 사실을 확인하고도 5년 동안 공개하지 않았다."''' |
|---|
| 24 | 24 | > ---- |
|---|
| 25 | 25 | > 1.19 사건 의회 합동조사위원회 최종 보고서 제7장 (2002) |
|---|
| 26 | 26 | |
|---|
| ... | ... | |
|---|
| 29 | 29 | |
|---|
| 30 | 30 | == 개요 == |
|---|
| 31 | 31 | |
|---|
| 32 | | 카스바 호텔 폭탄 테러는 1997년 4월 12일 오후 9시 47분 [[유고랜드]]의 수도 시디벨아베스 카스바 지구에 있는 카스바 호텔에서 일어난 폭탄 테러다. 국제 지하드 조직 [[알자미아]]의 지시를 받은 실행조가 포섭한 호텔 직원의 도움으로 폭약을 실은 화물차를 호텔 지하 납품장에 들여보냈고, 폭발로 호텔 동관 일부가 무너져 41명이 숨지고 213명이 다쳤다. |
|---|
| 32 | 영랑호텔 폭탄 테러는 1997년 4월 12일 오후 9시 47분 [[유고랜드]]의 수도 시디벨아베스 영랑구에 있는 영랑호텔에서 일어난 폭탄 테러다. 국제 지하드 조직 [[알자미아]]의 지시를 받은 실행조가 포섭한 호텔 직원의 도움으로 폭약을 실은 화물차를 호텔 지하 납품장에 들여보냈고, 폭발로 호텔 동관 일부가 무너져 41명이 숨지고 213명이 다쳤다. |
|---|
| 33 | 33 | |
|---|
| 34 | 34 | 호텔은 1985년부터 주유고랜드 루이나군의 장교와 군무원, [[플라자 그룹]] 계열 경비업체 직원들이 장기 투숙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사망자 41명 가운데 루이나인은 17명이었고, 호텔 직원 15명을 포함한 유고랜드인이 22명으로 더 많았다. 나머지 2명은 투숙 중이던 제3국인이었다. |
|---|
| 35 | 35 | |
|---|
| ... | ... | |
|---|
| 39 | 39 | |
|---|
| 40 | 40 | == 배경 == |
|---|
| 41 | 41 | |
|---|
| 42 | | === 카스바 호텔 === |
|---|
| 43 | | |
|---|
| 44 | | 카스바 호텔은 시디벨아베스 구시가의 성채 지구인 카스바 지구 동쪽 끝에 있던 8층 건물로, 객실 수는 212실이었다. 1936년 라 마베라령 페잔 시절 총독부 영빈관으로 지어졌고, 이후 증축을 거쳐 수도에서 가장 오래된 고급 호텔이 되었다. 서관에는 연회장과 식당이, 동관에는 객실과 주방·세탁실·납품장이 있었으며, 동관 지하 납품장은 호텔 뒤편 골목과 경사로로 이어져 있었다. |
|---|
| 45 | 45 | |
|---|
| 46 | 46 | 1985년 4월 [[루이나-유고랜드 상호방위조약]] 체결과 함께 루이나군이 유고랜드에 전개했을 때, 수도에는 루이나군 연락사령부와 각급 연락 장교들이 머물 숙소가 부족했다. 주유고랜드 루이나군 사령부는 같은 해 카스바 호텔과 장기 임대 계약을 맺고 동관 4~7층의 객실 96실을 장교·군무원 숙소로 썼다. 1990년대에는 루이나군 시설 경비를 위탁받은 플라자 시큐리티 서비스의 직원들도 같은 층에 투숙했다. 호텔은 민간 영업을 계속했기 때문에 1~3층과 서관에는 일반 투숙객과 연회 손님이 드나들었다. |
|---|
| 42 | === 영랑호텔 === |
|---|
| 43 | |
|---|
| 44 | 영랑호텔은 시디벨아베스 영랑구 동쪽 끝에 있던 8층 건물로, 객실 수는 212실이었다. 1936년 라 마베라령 페잔 시절 총독부 영빈관으로 지어졌고, 1941년 유고랜드 건국 뒤 자리한 구의 이름을 따 영랑호텔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후 증축을 거쳐 수도에서 가장 오래된 고급 호텔이 되었다. 서관에는 연회장과 식당이, 동관에는 객실과 주방·세탁실·납품장이 있었으며, 동관 지하 납품장은 호텔 뒤편 골목과 경사로로 이어져 있었다. |
|---|
| 47 | 47 | |
|---|
| 48 | 48 | 호텔 경비는 유고랜드 민간 경비업체가 맡았고, 루이나군은 투숙층 출입만 따로 통제했다. 1994년 이후 루이나군은 기지 출입 통제를 대폭 강화했으나, 이 호텔은 '기지 밖 숙소'로 분류되어 같은 수준의 조치가 적용되지 않았다. |
|---|
| 49 | 49 | |
|---|
| 50 | 50 | === 와디 사크르 이후 === |
|---|
| 51 | 51 | |
|---|
| 52 | 52 | 1994년 2월 이브라힘 나쉬디는 「나시르 알 물크 선언」을 발표해 유고랜드에 주둔한 루이나군을 공격하는 것을 모든 무슬림의 의무로 규정했다. 넉 달 뒤인 6월 25일 나시르 알 물크의 루이나 공군 기지 외곽 숙소에서 트럭 폭탄이 터져 루이나군 23명이 숨졌다. 이것이 와디 사크르 기지 폭탄 테러다. 당시 배후는 특정되지 않았고, 사건은 유고랜드 서부의 무장세력 소행이라는 추정 속에 미제로 남았다. |
|---|
| 53 | 53 | |
|---|
| 54 | | 와디 사크르 사건 이후 루이나군은 기지 외곽에 차량 차단 구역을 두고 출입 검문을 강화했다. 이 조치로 기지를 직접 노리는 차량 공격은 사실상 불가능해졌으나, 기지 밖에 흩어진 숙소와 연락 사무소는 상대적으로 무방비한 채로 남았다. 1995년 루이나군 내부 감사는 카스바 호텔을 포함한 기지 밖 숙소 11곳의 위험도를 '높음'으로 평가하고 기지 안 이전을 권고했으나, 예산과 기지 내 공간 부족을 이유로 이전은 1998년 이후로 미뤄졌다. |
|---|
| 54 | 와디 사크르 사건 이후 루이나군은 기지 외곽에 차량 차단 구역을 두고 출입 검문을 강화했다. 이 조치로 기지를 직접 노리는 차량 공격은 사실상 불가능해졌으나, 기지 밖에 흩어진 숙소와 연락 사무소는 상대적으로 무방비한 채로 남았다. 1995년 루이나군 내부 감사는 영랑호텔을 포함한 기지 밖 숙소 11곳의 위험도를 '높음'으로 평가하고 기지 안 이전을 권고했으나, 예산과 기지 내 공간 부족을 이유로 이전은 1998년 이후로 미뤄졌다. |
|---|
| 55 | 55 | |
|---|
| 56 | 56 | === 알자미아의 고랜드 이전 === |
|---|
| 57 | 57 | |
|---|
| 58 | | 1995년 3월 유고랜드 정부가 나쉬디 등 외국 국적 지도부 11명에게 추방 명령을 내리자 지도부는 서부 국경 산악지대로 옮겨 갔고, 1996년 9월 탈레반이 아바나를 점령한 뒤에는 탈레반의 초청으로 본거지를 고랜드로 옮겼다. 그러나 1988년 창설 이후 유고랜드 안에 뿌리내린 지원망, 곧 사이클론 작전 시절의 훈련소와 숙소에서 맺어진 인맥과 은신처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카스바 호텔 공격은 고랜드로 옮긴 지도부가 유고랜드 안에 남은 지원망을 움직여 벌인 첫 대규모 공격이었다. |
|---|
| 58 | 1995년 3월 유고랜드 정부가 나쉬디 등 외국 국적 지도부 11명에게 추방 명령을 내리자 지도부는 서부 국경 산악지대로 옮겨 갔고, 1996년 9월 탈레반이 아바나를 점령한 뒤에는 탈레반의 초청으로 본거지를 고랜드로 옮겼다. 그러나 1988년 창설 이후 유고랜드 안에 뿌리내린 지원망, 곧 사이클론 작전 시절의 훈련소와 숙소에서 맺어진 인맥과 은신처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영랑호텔 공격은 고랜드로 옮긴 지도부가 유고랜드 안에 남은 지원망을 움직여 벌인 첫 대규모 공격이었다. |
|---|
| 59 | 59 | |
|---|
| 60 | 60 | == 진행 == |
|---|
| 61 | 61 | |
|---|
| 62 | 62 | === 준비 === |
|---|
| 63 | 63 | |
|---|
| 64 | | 공격의 계획은 1996년 가을 고랜드 동부의 알자미아 훈련소에서 시작되었다. 군사위원회 소속 칼리드 무사 알사누시는 와디 사크르 이후 강화된 기지 대신 기지 밖 숙소를 노리기로 하고, 시디벨아베스의 지원 세포에 표적 정찰을 맡겼다. 세포는 1997년 1월 카스바 호텔을 표적으로 골랐는데, 루이나 장교들이 한 건물에 몰려 살고 있고 지하 납품장이 건물 바로 밑에 있다는 점이 결정적이었다. |
|---|
| 64 | 공격의 계획은 1996년 가을 고랜드 동부의 알자미아 훈련소에서 시작되었다. 군사위원회 소속 칼리드 무사 알사누시는 와디 사크르 이후 강화된 기지 대신 기지 밖 숙소를 노리기로 하고, 시디벨아베스의 지원 세포에 표적 정찰을 맡겼다. 세포는 1997년 1월 영랑호텔을 표적으로 골랐는데, 루이나 장교들이 한 건물에 몰려 살고 있고 지하 납품장이 건물 바로 밑에 있다는 점이 결정적이었다. |
|---|
| 65 | 65 | |
|---|
| 66 | 66 | 세포는 호텔 납품 검수 담당 직원 사미르 아지즈 바크리를 포섭했다. 바크리는 납품 차량의 출입 시간과 차량 번호를 기록하고 지하 납품장 차단기를 여는 일을 맡고 있었다. 세포는 그의 사촌을 통해 접근해, 루이나 장교들에게 팔 밀주를 들여오는 일이라며 차량 한 대를 검문 없이 들여보내 주는 대가로 1만 5천 달러를 제시했다. 바크리가 처음부터 폭약임을 알았는지는 재판의 핵심 쟁점이 되었다. |
|---|
| 67 | 67 | |
|---|
| ... | ... | |
|---|
| 73 | 73 | |
|---|
| 74 | 74 | 오후 9시 47분 화물차가 폭발했다. 폭발은 지하 납품장의 천장 슬래브를 뚫고 위층으로 솟구쳤고, 동관의 기둥 네 개가 무너지면서 1층부터 4층까지의 동관 중앙부가 아래로 내려앉았다. 지하와 1층에 있던 주방·세탁실의 야간 근무 직원들이 폭발의 직격을 받았고, 루이나 장교들이 투숙하던 4층 일부는 붕괴에 휩쓸렸으며, 5~7층은 외벽과 창이 날아가 객실 안 사람들이 유리와 파편에 다쳤다. 서관 연회장에서는 결혼 피로연이 진행 중이었는데, 천장 일부가 떨어져 하객 3명이 숨졌다. |
|---|
| 75 | 75 | |
|---|
| 76 | | 폭발음은 시내 3km 밖까지 들렸고, 카스바 지구 일대의 창문 수백 장이 깨졌다. 호텔 뒤편 골목에 면한 주택 여섯 채도 부서졌다. |
|---|
| 76 | 폭발음은 시내 3km 밖까지 들렸고, 영랑구 일대의 창문 수백 장이 깨졌다. 호텔 뒤편 골목에 면한 주택 여섯 채도 부서졌다. |
|---|
| 77 | 77 | |
|---|
| 78 | 78 | === 구조 === |
|---|
| 79 | 79 | |
|---|
| ... | ... | |
|---|
| 104 | 104 | |
|---|
| 105 | 105 | 세포장 유세프 알하킴은 시디벨아베스에서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하던 유고랜드인으로, 1980년대 후반 무자헤딘 훈련소에서 정비병으로 일한 경력이 있었다. 운전자 하산 압델 라만은 이집트 출신의 옛 의용병이었다. |
|---|
| 106 | 106 | |
|---|
| 107 | | 폭약을 조달한 아흐마드 주마 칸은 사비에트-고랜드 전쟁 때 넘어온 파슈툰 난민 가정 출신으로, 1980년대 후반 군정보국이 관리하던 무자헤딘 보급 창고에서 일했다. 그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서부 국경지대에 남은 옛 창고의 재고를 빼돌려 무장세력에 팔아 왔고, 카스바 호텔에 쓰인 군용 폭약도 그가 넘긴 것이었다. |
|---|
| 107 | 폭약을 조달한 아흐마드 주마 칸은 사비에트-고랜드 전쟁 때 넘어온 파슈툰 난민 가정 출신으로, 1980년대 후반 군정보국이 관리하던 무자헤딘 보급 창고에서 일했다. 그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서부 국경지대에 남은 옛 창고의 재고를 빼돌려 무장세력에 팔아 왔고, 영랑호텔에 쓰인 군용 폭약도 그가 넘긴 것이었다. |
|---|
| 108 | 108 | |
|---|
| 109 | 109 | === 내부자 논란 === |
|---|
| 110 | 110 | |
|---|
| 111 | | 호텔 직원 사미르 아지즈 바크리는 나크시에 로스탐 출신으로, 1993년부터 카스바 호텔에서 일했다. 그는 체포 직후 진술에서 사촌 타리크 바크리의 부탁으로 "루이나 장교들에게 팔 밀주를 실은 차"를 들여보냈을 뿐이며 폭약인 줄은 몰랐다고 주장했다. |
|---|
| 111 | 호텔 직원 사미르 아지즈 바크리는 나크시에 로스탐 출신으로, 1993년부터 영랑호텔에서 일했다. 그는 체포 직후 진술에서 사촌 타리크 바크리의 부탁으로 "루이나 장교들에게 팔 밀주를 실은 차"를 들여보냈을 뿐이며 폭약인 줄은 몰랐다고 주장했다. |
|---|
| 112 | 112 | |
|---|
| 113 | 113 | 검찰은 바크리가 평소와 달리 토요일 밤 납품을 받아들였고, 폭발 7분 전에 자리를 떠났으며, 받은 돈이 밀주 반입의 대가로는 지나치게 많았다는 점을 들어 그가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반면 바크리를 포섭한 사촌 타리크가 고랜드로 달아나 증언할 수 없었고, 휴식 시간 이탈은 그 시각의 정해진 교대였다는 동료 직원들의 진술도 있었다. 바크리가 몰랐을 가능성은 지금도 유고랜드 인권 단체들이 제기하는 쟁점이다. |
|---|
| 114 | 114 | |
|---|
| ... | ... | |
|---|
| 145 | 145 | |
|---|
| 146 | 146 | 호텔 주방 조리장 김순례(향년 52세). |
|---|
| 147 | 147 | |
|---|
| 148 | | 1964년 웨스타시아 지배기에 주방 보조로 들어와 33년 동안 카스바 호텔의 주방을 지켰다. 직원들 사이에서 '호텔의 어머니'로 불렸으며, 루이나 장교들이 한국식 반찬을 따로 주문할 만큼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폭발 당시 다음 날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
|---|
| 148 | 1964년 웨스타시아 지배기에 주방 보조로 들어와 33년 동안 영랑호텔의 주방을 지켰다. 직원들 사이에서 '호텔의 어머니'로 불렸으며, 루이나 장교들이 한국식 반찬을 따로 주문할 만큼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폭발 당시 다음 날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
|---|
| 149 | 149 | |
|---|
| 150 | 150 | 플로렌시아인 수자원 기술자 앙투안 L. 소렐(향년 47세). |
|---|
| 151 | 151 | |
|---|
| ... | ... | |
|---|
| 195 | 195 | |
|---|
| 196 | 196 | 유고랜드가 수사를 독점한 상황에서, 루이나가 독자적으로 확보한 증거는 구조 작업에 참여한 루이나군 공병대가 4층 잔해에서 수거한 폭발 잔류물이었다. 광역수사국 법과학연구소는 이 잔류물에서 군용 플라스틱 폭약에 생산 단계에서 넣는 식별용 화학 표지를 찾아냈다. |
|---|
| 197 | 197 | |
|---|
| 198 | | 연구소는 이 표지를 1994년 와디 사크르 사건 당시 루이나 공군 수사단이 보관해 둔 잔류물 표본과 대조했고, 두 표지가 같은 생산 로트의 것이라는 결과를 1997년 4월 30일 보고했다. 미제로 남아 있던 와디 사크르 사건이 이로써 카스바 호텔 사건과 같은 조직의 소행으로 묶였고, 국가정보국은 이 결과를 근거의 하나로 삼아 5월 알자미아를 테러조직으로 지정하는 평가서를 냈다. |
|---|
| 198 | 연구소는 이 표지를 1994년 와디 사크르 사건 당시 루이나 공군 수사단이 보관해 둔 잔류물 표본과 대조했고, 두 표지가 같은 생산 로트의 것이라는 결과를 1997년 4월 30일 보고했다. 미제로 남아 있던 와디 사크르 사건이 이로써 영랑호텔 사건과 같은 조직의 소행으로 묶였고, 국가정보국은 이 결과를 근거의 하나로 삼아 5월 알자미아를 테러조직으로 지정하는 평가서를 냈다. |
|---|
| 199 | 199 | |
|---|
| 200 | 200 | === 사이클론 작전 === |
|---|
| 201 | 201 | |
|---|
| 202 | 202 | 생산 로트를 추적한 결과는 더 불편한 사실을 가리켰다. 두 사건의 군용 폭약은 루이나 국영 화약창이 1986년 생산한 「86-C」 로트로, 국가정보국이 1986~1987년 [[사이클론 작전]]을 통해 유고랜드 군정보국에 인도한 물량에 속해 있었다. 1986년 4월 관여 부인 원칙이 폐기된 뒤 공급된 루이나 원산 폭약이었다. |
|---|
| 203 | 203 | |
|---|
| 204 | | 정부는 이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1997년 5월 국가안보회의는 "두 사건의 폭약 성분이 일치한다"는 사실만 발표하기로 하고, 생산 로트와 공급 경로는 기밀로 분류했다. 1999년 《르 마탱》이 "카스바의 폭약은 루이나제"라고 보도했을 때도 정부는 "확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
|---|
| 205 | | |
|---|
| 206 | | 사실이 공식 확인된 것은 2002년 1.19 사건 의회 합동조사위원회의 최종 보고서였다. 보고서는 같은 장에서 사이클론 작전 물자가 외국인 의용병 시설로 흘러간 「세테트 배분 장부」를 함께 다루면서, 카스바 호텔의 폭약을 "사이클론 작전의 역풍이 물리적 형태로 확인된 첫 사례"로 규정했다. |
|---|
| 204 | 정부는 이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1997년 5월 국가안보회의는 "두 사건의 폭약 성분이 일치한다"는 사실만 발표하기로 하고, 생산 로트와 공급 경로는 기밀로 분류했다. 1999년 《르 마탱》이 "영랑호텔의 폭약은 루이나제"라고 보도했을 때도 정부는 "확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
|---|
| 205 | |
|---|
| 206 | 사실이 공식 확인된 것은 2002년 1.19 사건 의회 합동조사위원회의 최종 보고서였다. 보고서는 같은 장에서 사이클론 작전 물자가 외국인 의용병 시설로 흘러간 「세테트 배분 장부」를 함께 다루면서, 영랑호텔의 폭약을 "사이클론 작전의 역풍이 물리적 형태로 확인된 첫 사례"로 규정했다. |
|---|
| 207 | 207 | |
|---|
| 208 | 208 | == 반응 == |
|---|
| 209 | 209 | |
|---|
| 210 | 210 | === 루이나 === |
|---|
| 211 | 211 | |
|---|
| 212 | 212 | [[린드 B. 랭스턴]] 대통령은 4월 13일 성명을 내고 희생자들을 애도했으며, 사흘간 관공서와 군 시설에 조기를 게양하도록 했다. 루이나인 희생자 17명의 유해는 4월 16일 벨포르 인근 공군 기지로 돌아왔고, 랭스턴은 활주로에서 유해를 직접 맞았다. |
|---|
| 213 | 213 | |
|---|
| 214 | | 의회는 곧바로 기지 밖 숙소 문제를 따지기 시작했다. 5월 하원 국방위원회 청문회에서 1995년 내부 감사가 카스바 호텔을 위험도 '높음'으로 평가하고 기지 안 이전을 권고했던 사실이 드러났고, 국방장관은 "권고를 이행하지 못한 책임은 국방부에 있다"며 사과했다. 주유고랜드 루이나군 사령관은 6월 교체되었다. |
|---|
| 214 | 의회는 곧바로 기지 밖 숙소 문제를 따지기 시작했다. 5월 하원 국방위원회 청문회에서 1995년 내부 감사가 영랑호텔을 위험도 '높음'으로 평가하고 기지 안 이전을 권고했던 사실이 드러났고, 국방장관은 "권고를 이행하지 못한 책임은 국방부에 있다"며 사과했다. 주유고랜드 루이나군 사령관은 6월 교체되었다. |
|---|
| 215 | 215 | |
|---|
| 216 | 216 | 5월 9일 루이나 정부는 국가정보국의 평가를 근거로 알자미아(법률상 명칭 「알후라 알자미아」)를 테러조직으로 지정했다. 6월에는 탈레반에 나쉬디와 알사누시의 인도를 요구했으나 거부당했다. 루이나는 탈레반 정권을 승인하지 않았고, 이후 군사적 보복은 검토 단계에서 멈추었다. 1.19 사건 이전까지 루이나의 대응은 국외 정보 수집과 지도부 추적에 머물렀다. |
|---|
| 217 | 217 | |
|---|
| ... | ... | |
|---|
| 223 | 223 | |
|---|
| 224 | 224 | === 알자미아 === |
|---|
| 225 | 225 | |
|---|
| 226 | | 알자미아는 공격에 대한 책임을 공식적으로 주장하지 않았다. 나쉬디는 1997년 8월 고랜드에서 걸프 지역 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카스바와 와디 사크르의 젊은이들은 의무를 다했다"며 공격을 칭송하면서도 자신이 지시했느냐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1998년 2월 나쉬디와 알자와히리가 발표한 「전선 선언」은 두 사건을 루이나군에 대한 공격의 모범으로 거론했다. |
|---|
| 226 | 알자미아는 공격에 대한 책임을 공식적으로 주장하지 않았다. 나쉬디는 1997년 8월 고랜드에서 걸프 지역 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영랑과 와디 사크르의 젊은이들은 의무를 다했다"며 공격을 칭송하면서도 자신이 지시했느냐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1998년 2월 나쉬디와 알자와히리가 발표한 「전선 선언」은 두 사건을 루이나군에 대한 공격의 모범으로 거론했다. |
|---|
| 227 | 227 | |
|---|
| 228 | 228 | === 국제 반응 === |
|---|
| 229 | 229 | |
|---|
| ... | ... | |
|---|
| 233 | 233 | |
|---|
| 234 | 234 | === 기지 내 수용 원칙 === |
|---|
| 235 | 235 | |
|---|
| 236 | | 사건 이후 주유고랜드 루이나군은 모든 장병과 군무원, 계약 인력을 기지 안에 수용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카스바 호텔을 포함한 기지 밖 숙소 11곳은 1998년 3월까지 모두 비워졌다. 기지 안 숙소 신축 공사는 1997년 9월 약 3억 4천만 달러에 발주되었는데, 이 공사를 따낸 것은 같은 해 플라자 그룹이 항만 건설 부문을 떼어 세운 플라자 건설이었다. 플라자 건설이 유고랜드와 고랜드의 루이나군 기지 시설 상당수를 짓게 되는 출발점이 이 계약이었다. |
|---|
| 236 | 사건 이후 주유고랜드 루이나군은 모든 장병과 군무원, 계약 인력을 기지 안에 수용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영랑호텔을 포함한 기지 밖 숙소 11곳은 1998년 3월까지 모두 비워졌다. 기지 안 숙소 신축 공사는 1997년 9월 약 3억 4천만 달러에 발주되었는데, 이 공사를 따낸 것은 같은 해 플라자 그룹이 항만 건설 부문을 떼어 세운 플라자 건설이었다. 플라자 건설이 유고랜드와 고랜드의 루이나군 기지 시설 상당수를 짓게 되는 출발점이 이 계약이었다. |
|---|
| 237 | 237 | |
|---|
| 238 | 238 | 이 원칙은 루이나군을 테러로부터 보호했지만, 동시에 루이나군과 유고랜드 사회의 접점을 크게 줄였다. 기지 밖으로 나오지 않게 된 루이나군을 유고랜드에서는 '담장 안의 군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
|---|
| 239 | 239 | |
|---|
| 240 | 240 | === 1.19 사건의 전조 === |
|---|
| 241 | 241 | |
|---|
| 242 | | 2002년 1.19 사건 의회 합동조사위원회는 카스바 호텔 사건을 와디 사크르(1994), 제7국경감시소 습격(1999)과 함께 1.19 이전에 쌓인 '경고' 가운데 하나로 분석했다. 위원회가 특히 문제 삼은 것은 1997년 국가정보국 평가서의 결론이었다. 평가서는 알자미아를 테러조직으로 지정하면서도 그 위협을 "유고랜드 주둔 루이나군에 대한 현지화된 위협"으로 규정하고, 루이나 본토에 대한 공격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했다. 4년 뒤 그 판단은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
|---|
| 242 | 2002년 1.19 사건 의회 합동조사위원회는 영랑호텔 사건을 와디 사크르(1994), 제7국경감시소 습격(1999)과 함께 1.19 이전에 쌓인 '경고' 가운데 하나로 분석했다. 위원회가 특히 문제 삼은 것은 1997년 국가정보국 평가서의 결론이었다. 평가서는 알자미아를 테러조직으로 지정하면서도 그 위협을 "유고랜드 주둔 루이나군에 대한 현지화된 위협"으로 규정하고, 루이나 본토에 대한 공격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했다. 4년 뒤 그 판단은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
|---|
| 243 | 243 | |
|---|
| 244 | 244 | === 군정보국 의혹의 전례 === |
|---|
| 245 | 245 | |
|---|
| ... | ... | |
|---|
| 251 | 251 | |
|---|
| 252 | 252 | == 기타 == |
|---|
| 253 | 253 | |
|---|
| 254 | | * 카스바 호텔의 동관은 1997년 철거되었고, 호텔은 3년 넘게 문을 닫았다가 2001년 서관만으로 「시디벨아베스 그랜드 호텔」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동관 자리에는 희생자 41명의 이름을 한국어, 아랍어, 루이나어로 새긴 추모벽이 세워졌다. |
|---|
| 254 | * 영랑호텔의 동관은 1997년 철거되었고, 호텔은 3년 넘게 문을 닫았다가 2001년 서관만으로 「시디벨아베스 그랜드 호텔」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동관 자리에는 희생자 41명의 이름을 한국어, 아랍어, 루이나어로 새긴 추모벽이 세워졌다. |
|---|
| 255 | 255 | * 매년 4월 12일 오후 9시 47분 추모벽 앞에서 추모식이 열린다. 2001년까지는 루이나군과 유고랜드 정부가 따로 추모식을 열었으나, 2002년부터 합동 추모식으로 바뀌었다. |
|---|
| 256 | 256 | * 추모벽의 이름은 국적이나 가나다순이 아니라 사망 당시 있던 층의 순서대로 새겨져 있다. 지하 세탁실의 하다드와 1층 주방의 김순례가 맨 앞에, 4층의 루이나 장교들이 그 뒤에 온다. 국적별로 나누자는 루이나 측 제안을 호텔 직원 유족회가 거부한 결과다. |
|---|
| 257 | 257 | * 내부자 바크리의 가족은 지금도 그가 폭약인 줄 몰랐다고 주장한다. 2009년 유고랜드 인권 단체가 사후 재심을 청구했으나 기각되었다.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