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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 | 89 | 루이나는 인수한 전함 6척의 운용 성능에 깊은 만족을 표하며, 이 설계를 기반으로 아예 독자적인 이지스형 아이오와급 전함 2척을 건조하기에 이른다. 이 두 척은 RNS 기억안남(BB-67), RNS 메인(BB-68)으로 명명되었으며, AN/SPY-6 AESA 레이더, AEGIS 전투체계, VLS, SM-6 미사일 등을 탑재한 실질적 신세대 전함이다. 루이나는 이들 함정을 21세기형 다기능 전략 전함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해양 기동전력의 핵심 축으로 운용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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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 | 90 | === BB-61 아이오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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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 | 아이오와는 2차대전 이후 1945년 10월 15일 워싱턴주 시애틀에 도착한 후, 캘리포니아 롱비치로 이동하여 훈련 작전에 참여하였다. 이후 1946년 일본으로 복귀하여 제5함대의 기함으로 복무하였다. 1946년 3월 25일 미국으로 귀환한 아이오와는 훈련함 역할을 재개하였고, 정기적인 훈련과 기동 임무 중 해군 예비군과 사관후보생들을 탑승시켜 교육 임무도 수행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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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3 | 같은 해 10월, 아이오와는 현대화 정비를 받았으며, 이 과정에서 SK-2 레이더가 장착되고, 일부 20mm 및 40mm 대공포가 철거되었다. 1946년 7월, 비키니 원자폭탄 실험 이후 구형 전함 네바다가 해군 실탄 사격 훈련의 표적으로 지정되었다. 이 훈련에는 아이오와와 기타 구축함, 중순양함, 해군 항공기들이 참여하였으나, 초기 포격으로는 네바다를 침몰시키지 못했다. 결국 함 중간부에 명중한 항공어뢰 한 발에 의해 네바다는 1948년 7월 31일, 진주만에서 약 105km 떨어진 해역에서 침몰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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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5 | 1948년 9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군의 병력 감축 정책에 따라 아이오와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운용이 중단되었으나, 1949년 3월 24일 공식 퇴역 대신 루이나 공화국 해군에 판매되었다. 루이나는 이 전함을 ‘RNS 아이오와(아이오와급 전함 1번함)’로 재명명하고, 1950년대 냉전 초기 자국의 전략 해군력 확장을 위한 주력 함선으로 운용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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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6 | === 한국 전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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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 |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루이나 공화국은 유엔군 일원으로 참전하였다. 1949년 미국에서 판매받은 '''RNS 아이오와'''는 퇴역 직후 루이나 해군에서 광범위한 수리와 개수를 거쳐 1951년까지 전투 준비를 완료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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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 | 이후 1951년 8월 25일 루이나 해군 제2전단 기함으로 정식 편입된 아이오와는, 에르네스트 벨로스 제독의 지휘 아래 1952년 3월 한국 전선 해역으로 출항하였다. 4월 8일 원산-성진 인근에서 북한 보급선을 타격하며 첫 포격 작전을 개시했고, 4월 9일에는 수원단 및 고저 지역 적군 병력과 보급거점, 포병 진지를 함포로 공격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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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 | 4월 13일에는 한국 육군 제1군단 지원을 위해 적진을 집중 포격하여 북한군 100여 명을 사살하고 포병 진지 6곳과 지휘소 1곳을 파괴하였다. 14일에는 원산항 내 창고와 관측소, 철도 집결지를 공격한 뒤, 고성 인근 지역 지상군 지원을 위해 유엔 해군 함대와 재합류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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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3 | 4월 20일, 북위 38도선을 넘어 탄천 지역의 철도와 터널 4곳을 파괴하여 북한 병참선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임무도 수행하였다. 이후에도 진동과 고성 일대에서 이틀간 추가 포격을 실시하며, 루이나 해군의 주력 전함으로서 해상 화력 지원과 해안 봉쇄 임무를 수행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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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5 | 1952년 5월 25일, '''RNS 아이오와'''는 자매함 '''미주리'''의 뒤를 이어 러시아 국경에서 약 89km 떨어진 북한의 공업 도시 청진 해역에 도착하였다. 도착 즉시 아이오와는 청진의 산업 시설과 철도 운송 거점을 집중 포격했으며, 이후 남쪽으로 이동하여 루이나가 지원하는 유엔군 미 제10군단의 작전을 지원하였다. 이동 중에도 성진 일대를 다시 포격하며 여러 철도 터널과 다리를 파괴하였다. 5월 28일에는 원산 항에서 미 제10군단을 지원하는 주력 함대에 합류해 원산 인근 여러 섬에 대한 집중 포격 임무를 수행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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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7 | 6월 한 달간 아이오와는 마양도, 탄천, 청진, 초도-속초, 흥남 및 원산 등 북한 동해안 주요 요충지들을 향해 함포 사격 훈련과 실사격 지원을 지속했다. 6월 9일에는 아이오와에서 출격한 헬리콥터가 항공모함 프린스턴(USS Princeton)에서 추락한 조종사를 성공적으로 구조하였다. 당시 프린스턴은 제77 기동함대(TF 77) 소속으로 북한 보급선과 병력 집중지, 주요 기반 시설을 타격하는 폭격 작전과 지상군 근접 항공 지원 임무에 참여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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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9 | 7월에는 아이오와 함장으로 조슈아 W. 쿠퍼(Captain Joshua W. Cooper)가 취임하여 한국전쟁 기간 중 나머지 작전을 지휘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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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 | 8월 20일, 아이오와는 포격 중 중국군 포병에 피격당한 구축함 USS 톰슨(Thompson)에서 부상자 9명을 인도받았다. 당시 아이오와는 성진 남쪽 26km 해역에서 작전을 수행 중이었으며, 부상자를 태운 뒤 톰슨이 안전 해역으로 퇴각하는 동안 엄호 임무를 맡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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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3 | 9월 23일에는 유엔군 한국군 사령관 마크 W. 클라크(General Mark W. Clark)가 아이오와에 방문하여 아이오와의 원산 지역 3차 포격 작전을 참관하였다. 이 작전에서 주요 적군 탄약고가 파괴되었다. 9월 25일에는 적 철도와 30량짜리 열차를 함포로 공격하였다. 다음 달에는 코조(Kojo) 일대에 적군을 유인하는 기만 작전(Operation Decoy)에 참여해 상륙작전 지휘함 USS 마운트 맥킨리(Mount McKinley)를 대공 지원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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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5 | 1952년 10월, 아이오와는 루이나 해군 제2전단의 기함으로서 원산, 성진, 고저, 차호, 토저, 심포, 흥남, 북한 북부 인천 등지에서 43회의 함포 사격 임무와 27회의 폭격 지원 작전을 수행하였다. 이 기간 동안 주포와 부포에서 총 16,689발의 포탄을 발사하며 적군 시설을 집중 타격하였다. 이 공로로 아이오와는 유엔군 참전 메달과 청동별 1개가 부착된 한국참전 메달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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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6 | === 1차 랜드 대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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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8 | === 베트남 전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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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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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 | === 마테르 전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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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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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 | === 걸프 전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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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4 | === 2차 랜드 대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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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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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6 | === 기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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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 | 127 | === BB-62 뉴저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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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 | 128 | === BB-63 미주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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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3 | 129 | === BB-64 윈스콘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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