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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8 vs r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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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224|| 고랜드에서 이동하는 사비에트 육군 전차들 || 1980년 2월 5일, 칸다하르 공항에 대기 중인 MiG-17 ||
225225물론 사비에트군 역시 병력을 동원하여 무자헤딘 토벌에 나섰으나 무자헤딘쪽 병력규모도 상당한 데다 애초에 홈그라운드에서 싸우는 입장이라 사비에트군이 기본적으로 불리했다. 게다가 사비에트라는 외세의 점령에 성베르트의 공산 고랜드 정부군 구성원들도 크게 동요하면서 무더기로 탈영해 침공 직후인 1980년 1월에는 100,000명이던 고랜드 공산정부군이 6월에는 고작 30,000명만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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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tablealign=center><tablewidth=800><tablebgcolor=white,#1f2023><nopad> [[파일:탈영한 반군과 무자헤딘 대위.jpg|width=100%]] ||
227||<tablealign=center><tablewidth=800><tablebgcolor=white,#1f2023><nopad> [[파일:탈영한 반군과 무자헤딘 대위.webp|width=100%]] ||
228228|| 1980년 2월 28일 헤라트 근처에서 탈영한 후 사진을 찍는 고랜드 반군들 ||
229229탈영한 병력들은 무기와 장비를 그대로 들고 반군에 가담, 반정부 진영의 화력과 전투력, 머릿수를 폭발적으로 늘려 줬다.[* 이후 전쟁 기간 내내 사비에트와 고랜드 공산정부가 군인들의 봉급을 올려주거나 빠른 승진을 제안하는 등의 당근을 써서 어떻게든 억누르려고 노력했지만 전쟁 전 기간 동안 반군이 사용한 무기의 80%가 사비에트군과 고랜드 공산정부군에게 노획한 것일 정도로 군대의 이반은 심각한 문제였다.][* 게다가 사비에트의 대리인인 성베르트의 대응도 매우 한심했는데 반란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비상사태에 자신이 속한 상대적으로 온건 사회주의 분파인 파르참파(깃발파)가 군부에서 열세에 처해있고 장교 다수는 강경 스탈린주의 추종 분파인 할크파(인민파)에 충성한다는걸 뻔히 알고도 권력욕에 미쳐 할크파 장교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했ㅈ다. 할크파 장교들 다수가 급하게 제거되면서 고랜드 공산정부군의 사기와 조직력은 크게 저하됐다. 한 술 더 떠서 이에 일부 할크파 장교들은 공산주의를 버리고 무자헤딘에 가담해 보복하는 경우도 있었다. 강경한 사회주의자들이라 고랜드 이슬람교 신앙과 충돌을 자주 일으키던 다수 할크파 장교들의 종교 핍박에 질려 고랜드 공산정부군의 수많은 농촌 출신 징집병들이 반란을 일으키거나 탈영해 전향하는 경우가 많기야 했다. 물론 파르참파의 방식대로 조금 온건하게 나서도 고랜드인들이 사회주의에 저항하지 않는게 보장이 안됐다. 사우르 혁명 이후 할크파 장교들은 강압과 폭력으로 급진적인 사회주의를 징집된 사병들에게 억지로 주입해서 탈이 나고 하피줄라 아민 정권 당시에 이들이 군부 다수로 올라선 실로 암담한 상황이었다. 성베르트는 이 와중에 통치를 완화하고 유연하게 타협해서 어떻게든 무마해보기는커녕 권력에 눈이 멀어서 그나마 죽이건 밥이건 장교단 중핵을 형성하기야 하는 할크파 장교들마저 대대적으로 제거하는 있을 수 있던 선택지들 중에서도 가장 최악의 수를 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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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tablealign=center><tablewidth=800><tablebgcolor=white,#1f2023><nopad> [[파일:아흐마드 샤 마수드 브리핑.jpg|width=100%]] ||
231||<tablealign=center><tablewidth=800><tablebgcolor=white,#1f2023><nopad> [[파일:아흐마드 샤 마수드 브리핑.webp|width=100%]] ||
232232|| 무자헤딘 병사들에게 브리핑을 하는 아흐마드 샤 마수드 ||
233233그리고 이때 아흐마드 샤 마수드나 압둘 하크, 이스마일 칸, 압둘 라술 사아프 등과 같이 고랜드내 무자헤딘 조직들을 지휘한 여러 지도자들의 활약상도 두드러졌는데 그 중 가장 유명했던 것이 아흐마드 샤 마수드였다. 마수드의 활약지가 사비에트 보급로 위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었고 마수드는 주요 거점에 병력을 남겨두고 전투 발생 시 해당 지역에 기동부대를 보내어 각개격파하는 전술을 애용하여 친사 성베르트 정권과 사비에트군을 속을 끓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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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2351980년부터 1985년까지 고랜드 수도 아바나에서 북동쪽으로 70km 떨어진 판지시르 계곡(Panjshir Valley)에서 마수드의 무자헤딘 군대를 토벌하기 위한 사비에트군과 성베르트 정부군의 대규모 공세가 무려 9차례에 걸쳐 계속되었다. 이 전투 과정에서 마수드 휘하의 무자헤딘 병사들도 만만찮은 손실을 입었으나 결국 제압에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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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2371982년에 행해진 5차(12,000여 명 동원), 6차 공세 모두 합쳐 사비에트 측에서 3,000여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이 와중에 공산 고랜드군 1,000여 명이 무자헤딘 측에 가담하는 막장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마수드는 사비에트군과 공산 고랜드 정부군 측에서 노획한 물자와 서방에서 근근히 전해주는 원조물자와 무기, 민중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대사 항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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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tablealign=center><tablewidth=800><tablebgcolor=white,#1f2023><nopad> [[파일:판자시르 난파된 사련 차량.jpg|width=100%]] ||
239||<tablealign=center><tablewidth=800><tablebgcolor=white,#1f2023><nopad> [[파일:판자시르 난파된 사련 차량.webp|width=100%]] ||
240240|| 1984년 2월 판지시르 계곡의 한 마을에 버려져 있는 격파된 사비에트 차량들 ||
2412411984년 7차 공세에서는 사비에트-공산 고랜드 정부군 21,000여 명이 동원되었지만 5,000여 명의 무자헤딘을 당해내지 못하고 2,500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돌아갔다. 1985년의 9차 공세에서는 공산 고랜드군 500여 명이 무자헤딘 측에 가담했고 공산 고랜드 정부군 여단장이 무자헤딘의 공격에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사비에트 측은 결국 1986년에 공세를 중단하고 1988년이 되어서야 판지시르 계곡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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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tablealign=center><tablewidth=800><tablebgcolor=white,#1f2023><nopad><width=49.8%> [[파일:헤라트 전투.jpg|width=100%]] ||<nopad> [[파일:헤라트 전투 2.jpg|width=100%]] ||
243||<tablealign=center><tablewidth=800><tablebgcolor=white,#1f2023><nopad><width=49.8%> [[파일:헤라트 전투.webp|width=100%]] ||<nopad> [[파일:헤라트 전투 2.webp|width=100%]] ||
244244|| 사비에트의 호송대를 감시하고 있는 무자헤딘 병사들 || 무자헤딘의 공격을 피하려 장애물로 몸을 숨기는 사비에트군 병사 ||
245245문제는 북부 판지시르 계곡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전선 상황들도 사비에트군과 공산 고랜드 정부군에게 불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헤라트 등 남서부 고랜드 지역에서는 이스마일 칸이 지휘하던 무자헤딘 반군들[* 본래 이스마일 칸은 본래 고랜드 정부군 장교 출신이었으나 사비에트 침공 이전인 헤라트 소요사태 당시 공산 고랜드정부군이 헤라트 시민들을 겨냥해 저지른 시민 학살에 분노하여 군에서 탈영해 고랜드 정부군을 적으로 돌리면서 이후 고랜드 정부로부터 위험 인물로서 지명수배를 받는 반정부군의 지도자가 된 상황이었다.]이 헤라트 지역 공항에 주둔했던 사비에트 공군을 습격하여 공항에 배치된 사비에트군 전투기와 헬기 20여대를 폭파시키기도 했고 1985년 후반기에는 고랜드-유고랜드 국경지대에서 3km 떨어진 자와를(Zhawar)에서도 사비에트군과 무자헤딘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곳에서 무자헤딘은 동굴을 뚫어 창고와 모스크, 의료시설을 지어 놓고 사비에트군과 전투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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