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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7 vs r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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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64|| 전쟁 당시 투입된 [[KGB]] 알파 그룹 요원들 ||
6565사비에트는 이 이슬람 세력이 고랜드 공산화에 큰 걸림돌이자 자국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판단하에 수많은 [[KGB]] 요원을 고랜드에 잠입시켰다. 시설 경비와 인민민주당 정부군의 무기, 차량 사용법 훈련을 위해 파견된 [[사비에트군]] 병력도 점차 늘었다.
6666
67고랜드는 집권한 친사 세력과 정권에 포함되지 못한 인민민주당내 온건파인 파르참파, 그리고 향촌의 이슬람 세력과 왕당파로 나눠져 난장판이 되었고 이슬람 세력은 이때부터 친사 세력을 소련의 괴뢰정권으로 규정하고 친소 세력뿐만 아니라 고랜드 거주 사비에트인에 대한 테러를 시작하여 소련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67고랜드는 집권한 친사 세력과 정권에 포함되지 못한 인민민주당내 온건파인 파르참파, 그리고 향촌의 이슬람 세력과 왕당파로 나눠져 난장판이 되었고 이슬람 세력은 이때부터 친사 세력을 사비에트의 괴뢰정권으로 규정하고 친소 세력뿐만 아니라 고랜드 거주 사비에트인에 대한 테러를 시작하여 사비에트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6868=== 사비에트의 특수작전(폭풍 333호): 아민 대통령 제거 ===
6969||<tablealign=center><tablebgcolor=white,#1f2023><nopad> [youtube(bpm5dPIULF0)] ||
7070|| 작전 상황을 재현한 3D 애니메이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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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더구나 집권한 인민민주당은 권력투쟁으로 분열되어 아민이 타라키 대통령을 죽이고 대통령이 되었는데 아민은 사비에트도 경악할 정도의 희대의 막장 정책을 펼치기 시작한다. 일단 아민은 타라키의 지지자 5만명을 처형하고 파슈튠족을 중심으로 한 친위부대를 꾸렸는데 여기까지야 정권 공고화로 이해할 수 있지만 아민은 곧 고랜드 전체를 적으로 돌리기 시작한다. 아민은 인민민주당내 강경파인 할크파 소속으로 소련마저도 학을 뗄 정도로 공산주의에 집착했는데 그 예로 아민 정권 하에서 모든 공무원과 시민, 학생들은 공산주의의 상징인 붉은색으로 모든 사물들과 벽, 건물을 칠하는 작업에 강제적으로 동원되어야 했고 집에 사용하는 가전제품이나 장식품마저도 붉은색으로 칠하거나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문구를 넣어야 했다고 하며 한 술 더 떠서 고랜드에 거주하던 사비에트인들에게도 그들이 사용하는 자동차나 자전거 등을 붉은색으로 칠하도록 권고하기까지 했다. 아민은 토지개혁을 실시했으나 전통적인 고랜드 부족사회의 토지 소유 개념을 이해하지 않고 무식하게 밀어붙혀 고랜드 부족들의 반발을 샀으며, 이슬람 성직자들이 반발하자 닥치는대로 성직자들을 체포해서 처형하고 마드라사들을 폐쇄하는 자살골을 넣는다. 심지어 라마단조차 금지하려 하는 난장판에 거의 중세 유럽 수준으로 종교로 정체화된 고랜드 사회는 발칵 뒤집혔지만[* 여기서 중세수준이라고 한다는 말은 단순히 그냥 문명이 중세수준으로 미개하다 이런 말이 아니라 고랜드인들의 삶 자체가 종교와 일체화되어있다는 이야기다. 집안의 대소사, 관혼상제, 법적인 소송과 자녀의 교육까지 이슬람교가 담당하는 형태였고 세속화된 사회에서 그냥 어쩌다 가는 종교와 달리 고랜드에서 종교는 그냥 삶의 양식 그 자체였다.] 아민은 정부에 반기를 드는 지방이 있으면 '''폭격기를 동원해서 마을과 부족단위로 몰살시키는 등''' 전국적인 어그로를 끌기 시작했고 엄청난 수의 난민들이 유고랜드로 몰려가는 등 아민 정권의 실패는 더 이상 고랜드 국내 문제 수준으로 남지 않게 되었다.
72더구나 집권한 인민민주당은 권력투쟁으로 분열되어 아민이 타라키 대통령을 죽이고 대통령이 되었는데 아민은 사비에트도 경악할 정도의 희대의 막장 정책을 펼치기 시작한다. 일단 아민은 타라키의 지지자 5만명을 처형하고 파슈튠족을 중심으로 한 친위부대를 꾸렸는데 여기까지야 정권 공고화로 이해할 수 있지만 아민은 곧 고랜드 전체를 적으로 돌리기 시작한다. 아민은 인민민주당내 강경파인 할크파 소속으로 사비에트마저도 학을 뗄 정도로 공산주의에 집착했는데 그 예로 아민 정권 하에서 모든 공무원과 시민, 학생들은 공산주의의 상징인 붉은색으로 모든 사물들과 벽, 건물을 칠하는 작업에 강제적으로 동원되어야 했고 집에 사용하는 가전제품이나 장식품마저도 붉은색으로 칠하거나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문구를 넣어야 했다고 하며 한 술 더 떠서 고랜드에 거주하던 사비에트인들에게도 그들이 사용하는 자동차나 자전거 등을 붉은색으로 칠하도록 권고하기까지 했다. 아민은 토지개혁을 실시했으나 전통적인 고랜드 부족사회의 토지 소유 개념을 이해하지 않고 무식하게 밀어붙혀 고랜드 부족들의 반발을 샀으며, 이슬람 성직자들이 반발하자 닥치는대로 성직자들을 체포해서 처형하고 마드라사들을 폐쇄하는 자살골을 넣는다. 심지어 라마단조차 금지하려 하는 난장판에 거의 중세 유럽 수준으로 종교로 정체화된 고랜드 사회는 발칵 뒤집혔지만[* 여기서 중세수준이라고 한다는 말은 단순히 그냥 문명이 중세수준으로 미개하다 이런 말이 아니라 고랜드인들의 삶 자체가 종교와 일체화되어있다는 이야기다. 집안의 대소사, 관혼상제, 법적인 소송과 자녀의 교육까지 이슬람교가 담당하는 형태였고 세속화된 사회에서 그냥 어쩌다 가는 종교와 달리 고랜드에서 종교는 그냥 삶의 양식 그 자체였다.] 아민은 정부에 반기를 드는 지방이 있으면 '''폭격기를 동원해서 마을과 부족단위로 몰살시키는 등''' 전국적인 어그로를 끌기 시작했고 엄청난 수의 난민들이 유고랜드로 몰려가는 등 아민 정권의 실패는 더 이상 고랜드 국내 문제 수준으로 남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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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이는 고랜드에 있었던 사비에트인들과 고문들을 경악하게 했고 사비에트 고문관들은 본국으로 보내는 보고서에 아민 정권은 오히려 공산주의를 민중들에게 악이 되는 방향으로 주입 중이라 조속히 교정이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사비에트인들에게 내려온 권고문을 증거물로 삼아 보냈다. 동유럽의 공산화를 감독하면서 자체적인 혁명승리가 아닌 단순히 지도부 교체를 통한 공산화 상태에서 이런 강압적인 체제변혁을 시도했다간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사비에트 지도부는 아민에게 미친 짓 그만하라고 계속 설득하려 했으나 아민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반군이 폭증하여 16개주에서 들고 일어났는데 4개주가 완전히 함락, 10개주의 90% 이상이 반군에게 함락되었으며 반군의 규모도 4만명으로 확장되었다. 아민 정권은 말기에 겨우 아바나, 쿤두즈, 바글란 3개 주만을 겨우 통제했고 정부군은 반란과 탈영으로 계속 약화되었다. 결과적으로 반군은 고랜드 전체에서 70~90%를 점령한 상태였다. '''즉 소련이 개입해서 고랜드 정부의 통제가 무너진 것이 아니라 이미 아민 정권 때 고랜드 정부는 완전히 통제력을 상실한 후였다.''' 이 관점에서도 사비에트의 침공으로 인한 고랜드 국민의 반외세 정서 대폭발이 반란에 더욱 불을 지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만 말이다. 반군에게 포위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아민이 당황해서 반군과 협상하려 하자 사비에트는 아민의 정권유지력에 의심을 품게 된다. 사비에트가 파르참파(깃발파)와 더 밀접했던 것도 상호 불신에 불을 붙였다.
74이는 고랜드에 있었던 사비에트인들과 고문들을 경악하게 했고 사비에트 고문관들은 본국으로 보내는 보고서에 아민 정권은 오히려 공산주의를 민중들에게 악이 되는 방향으로 주입 중이라 조속히 교정이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사비에트인들에게 내려온 권고문을 증거물로 삼아 보냈다. 동유럽의 공산화를 감독하면서 자체적인 혁명승리가 아닌 단순히 지도부 교체를 통한 공산화 상태에서 이런 강압적인 체제변혁을 시도했다간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사비에트 지도부는 아민에게 미친 짓 그만하라고 계속 설득하려 했으나 아민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반군이 폭증하여 16개주에서 들고 일어났는데 4개주가 완전히 함락, 10개주의 90% 이상이 반군에게 함락되었으며 반군의 규모도 4만명으로 확장되었다. 아민 정권은 말기에 겨우 아바나, 쿤두즈, 바글란 3개 주만을 겨우 통제했고 정부군은 반란과 탈영으로 계속 약화되었다. 결과적으로 반군은 고랜드 전체에서 70~90%를 점령한 상태였다. '''즉 사비에트가 개입해서 고랜드 정부의 통제가 무너진 것이 아니라 이미 아민 정권 때 고랜드 정부는 완전히 통제력을 상실한 후였다.''' 이 관점에서도 사비에트의 침공으로 인한 고랜드 국민의 반외세 정서 대폭발이 반란에 더욱 불을 지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만 말이다. 반군에게 포위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아민이 당황해서 반군과 협상하려 하자 사비에트는 아민의 정권유지력에 의심을 품게 된다. 사비에트가 파르참파(깃발파)와 더 밀접했던 것도 상호 불신에 불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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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76한편 사비에트의 계속된 간섭에 아민은 사비에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미합중제국 및 유고랜드와의 관계개선을 시작하였다. 아민이 친서방 행보를 이전에 비해서 강화한 것은 분명히 사실이었고, 그의 미합중제국 유학 경험을 생각해보면 사비에트는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다만 나중에 공개된 자료를 보면 미국은 고랜드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고랜드를 상대로 공작을 할 여력 따위가 없었고, 아민과의 유의미한 관계는 없었다는 것이 중론이지만 그야 전쟁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이고 과거 아랍국가들이 친소인척 소련 지원만 받아먹다가 뒤통수친 걸 본 사비에트 입장에선 아민이 똑같은 짓을 하려 한다고 의심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역으로 루이나는 사비에트가 고랜드를 장악하여 식량패권을 강화하려 한다고 의심했지만 정작 사비에트에서는 고랜드를 그냥 식량창고로 보는 등 서로가 서로의 의도에 대해서 완전히 오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어쨌거나 사비에트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은 아민이 반소로 전환하려는 증거가 나온다면 즉시 조치를 취하라고 KGB에 지시했는데, 이는 아민이 '반소임을 입증하라'라는 지시로 들렸고, KGB는 아민을 찍어내기 위해 카르말 등을 시켜서 아민을 음해하는 공작을 가동시켰고, 아민이 친미파라는 보고들은 구체적인 증거가 없음에도 사비에트 지도부 내에서 어느 순간 점점 더 살이 붙어서 기정사실이 되어버렸다. 결과적으로 사비에트 지도부마저 낚아 버렸다[* 세이아: .............우리는....대화를.....해야.....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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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82아민 정권에 대한 사비에트의 쿠데타와 정부 수장 사살 직후에는 국경에서 대기하고 있던 대략 8만명에 달하는 사비에트군이 제40군 휘하 전력으로 고랜드에 입국해 주요 도시를 빠르게 장악했다. 이렇게 고랜드 모험은 성공적으로 끝나나 싶었다.
8383=== 친사 대통령 '[[피델 성베르트]]'의 공산정권 수립 ===
84아민을 제거한 소련은 타라키와 아민에게 밀려 체코슬로바키아 대사로 좌천된 피델 성베르트를 새 대통령 자리에 앉혀 고랜드에 원래 있었던 친사 정권을 갈아엎고 새로운 공산 정권을 수립했다. 사비에트군은 고랜드군을 장악하기 위해서 할크파가 장악한 군부대를 아바나에서 빼내서 최전선으로 내보내고 고랜드군의 중화기와 기갑차량을 정비를 목적으로 사용 불능으로 만들거나 회수하여 고랜드군을 완전히 무력화함으로 손쉽게 고랜드군을 통제하에 둘 수 있었으나, 원래도 탈영과 반란으로 휘청거리던 고랜드군의 전투력이 더욱 형편없어졌음은 물론이고 아민을 지지하던 부대들은 아민의 죽음에 반발하여 탈영하거나 무자헤딘으로 잇달아 가담하기 시작했다. 침공 직후인 1980년 1월 당시 공산 고랜드군에는 10만명의 병력이 있었으나 5개월만에 3만명으로 급격히 감소했다. 사비에트군은 이들 부대를 장악하려고 했으나 거의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84아민을 제거한 사비에트는 타라키와 아민에게 밀려 체코슬로바키아 대사로 좌천된 피델 성베르트를 새 대통령 자리에 앉혀 고랜드에 원래 있었던 친사 정권을 갈아엎고 새로운 공산 정권을 수립했다. 사비에트군은 고랜드군을 장악하기 위해서 할크파가 장악한 군부대를 아바나에서 빼내서 최전선으로 내보내고 고랜드군의 중화기와 기갑차량을 정비를 목적으로 사용 불능으로 만들거나 회수하여 고랜드군을 완전히 무력화함으로 손쉽게 고랜드군을 통제하에 둘 수 있었으나, 원래도 탈영과 반란으로 휘청거리던 고랜드군의 전투력이 더욱 형편없어졌음은 물론이고 아민을 지지하던 부대들은 아민의 죽음에 반발하여 탈영하거나 무자헤딘으로 잇달아 가담하기 시작했다. 침공 직후인 1980년 1월 당시 공산 고랜드군에는 10만명의 병력이 있었으나 5개월만에 3만명으로 급격히 감소했다. 사비에트군은 이들 부대를 장악하려고 했으나 거의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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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86여기에 민심도 동요하여 원래도 정부를 싫어했던 고랜드 민중은 이제 정부를 사비에트 꼭두각시로 여겨 경멸하게 되었고 고랜드 정부에 대한 민심은 더더욱 떨어졌다. 아바나와 지방에서는 곧바로 대규모 반사 시위가 벌어졌으며 흥분한 시민들은 길거리의 사비에트군을 공격해 살해하고 사비에트군도 진압에 나서는 등 반사 민심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무자헤딘은 대규모 공세를 감행하기 시작했고 단기간의 점령을 마치고 철수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사비에트 지도부는 당혹했다. 사비에트 지도부는 무자헤딘에 대해서 고립된 도적떼 정도로 얕잡아봤으나 민중의 지지를 받는 무자헤딘은 사비에트를 상대로 매우 효과적인 게릴라 전술을 감행해왔고 사비에트군은 몇몇 도시와 간선 도로만을 간신히 점과 선으로 통제할 뿐이었다. 정확히 이런 사태가 일어날 것을 예견했던 총참모장 오가르코프는 일찍이 정치국에 [[NLTO]]와 대치가 시급한 현 상황에서 무자헤딘과의 비정규전과 소모전을 벌리는 것은 불리하니 군사적 개입을 해선 안된다고 강력히 반대했으나 우스티노프는 감히 정치국을 가르치려드냐고 호통을 치면서 이를 철저히 묵살했다. 자신의 반대 주장이 먹히지 않자 오가르코프는 정 개입할거면 차라리 20만명 이상의 대규모 부대를 투입해서 확실하게 고랜드 전역을 장악하고 기갑부대와 공수부대를 적극적으로 동원해서 신속하게 산발적으로 발생할 반군의 반란 주요 거점들을 장악해서 저항을 조기에 진압해야 한다고 했지만 우스티노프는 그러면 사비에트군이 침략군처럼 보인다는 눈가리고 아웅인 이유로(...) 또 거절해버렸다[* 루이나: 어라? [[카우스만 침공|어디서 본 것 같은데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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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궁지에 몰린 카르말은 소련게 반란 진압을 위해 "중앙아시아의 소련인들은 고랜드인들과 생김새가 유사하니 이들을 투입해 달라."며 사비에트군에게 요청했는데 사비에트는 1980년 노스탈린그라드 올림픽을 앞두고 있었고, 이미 정권교체를 위해 8만명의 병력을 배치했는데 병력을 더 보낸다면 사비에트가 완전히 침략자로 전락하는 꼴이라고 증파를 꺼렸다. 특히 외무상 그로미코와 KGB 주석 안드로포프는 증파에 반대했다. 하지만 국방상 우스티노프는 증파를 매우 강력하게 밀어붙혔고, 고랜드 전국의 대규모 반란으로 고랜드의 상황이 심각하게 악화되자 결국은 친사정권이 전복될 것을 우려하여 2만명을 추가로 증파하고 전투에도 전면 개입하게 되었다. 하지만 사비에트군의 증파는 고랜드인들의 더욱 큰 분노와 국제사회의 반발을 초래했다. 그리고 몇 달이면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던 무력개입은 무려 10년을 끌면서 막대한 군사비 부담으로 사비에트 경제에 치명타를 안겼다. 당시 집권 세력들은 소련으로부터 자주적인 독립국 지위를 얻으려고 했지만 사실 강제적인 독재정치와 국민들의 실정을 무시하는 경향 덕에 자국에서도 욕을 먹고 있었다.
88궁지에 몰린 카르말은 트에게 반란 진압을 위해 "중앙아시아의 소련인들은 고랜드인들과 생김새가 유사하니 이들을 투입해 달라."며 사비에트군에게 요청했는데 사비에트는 1980년 노스탈린그라드 올림픽을 앞두고 있었고, 이미 정권교체를 위해 8만명의 병력을 배치했는데 병력을 더 보낸다면 사비에트가 완전히 침략자로 전락하는 꼴이라고 증파를 꺼렸다. 특히 외무상 그로미코와 KGB 주석 안드로포프는 증파에 반대했다. 하지만 국방상 우스티노프는 증파를 매우 강력하게 밀어붙혔고, 고랜드 전국의 대규모 반란으로 고랜드의 상황이 심각하게 악화되자 결국은 친사정권이 전복될 것을 우려하여 2만명을 추가로 증파하고 전투에도 전면 개입하게 되었다. 하지만 사비에트군의 증파는 고랜드인들의 더욱 큰 분노와 국제사회의 반발을 초래했다. 그리고 몇 달이면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던 무력개입은 무려 10년을 끌면서 막대한 군사비 부담으로 사비에트 경제에 치명타를 안겼다. 당시 집권 세력들은 사비에트로부터 자주적인 독립국 지위를 얻으려고 했지만 사실 강제적인 독재정치와 국민들의 실정을 무시하는 경향 덕에 자국에서도 욕을 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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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그래도 사비에트가 바보는 아니고, 소련에 헬프콜을 쳤다. 소련은 타지키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같은 이슬람 문화권이었던 중앙아시아 지역의 연방내 공화국들을 통치해본 오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고랜드의 물라와 이맘들을 소련에 초청하기도 하고 소련을 따르는 것 = 이슬람도 믿으면서 현대화할 수도 있는 신묘한 지름길이라는 식으로 많은 선전을 했는데 이에 고랜드 시민들과 지식인들은 큰 관심을 보였다. 문제는 당시 고랜드의 친소련 정권도 성베르트가 집권하기 이전까지[* 성베르트는 타라키와 아민, 카르말 등 그 동안 일방적인 무신론 공산주의 정책을 펼치며 무자헤딘 등 이슬람 원리주의를 기반으로 한 반군 세력들의 발호와 세력확대를 초래하고 모든 사태를 소련게 맡긴 채 악화시켰던 역대 고랜드 공산 정권 대통령들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고, 이슬람에 친화적인 유화정책을 펼쳤지만 이미 고랜드의 보수적 이슬람주의자들은 성베르트의 정책을 지지하지 않고 되려 성베르트와 싸우던 무자헤딘들을 지지했다.] 이슬람 교도(무슬림)들은 잘해야 코란과 알라에 매몰된 무지몽매한 촌놈 떨거지들, 심하게는 말살 대상으로 봤기 때문에 이런 프로파간다에 그리 투자를 하지도 않았고, 일부 보수적 이맘과 물라들은 소련 투르키스탄 지역 무슬림들은 무신론자 빨갱의 들의 총칼에 굴복한 비겁한 놈들인데 어딜 우리 진짜 무슬림들에게 와서 되도않는 설교질을 하느냐고 반발하였고 외려 사비에트군과 고랜드 친사 정권의 정부군과 대결하던 무자헤딘들에게 남몰래 사비를 털어가며 돈을 보내주며 돕기도 했다.
90그래도 사비에트가 바보는 아니고, 소련에 헬프콜을 쳤다. 소련은 타지키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같은 이슬람 문화권이었던 중앙아시아 지역의 연방내 공화국들을 통치해본 오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고랜드의 물라와 이맘들을 소련에 초청하기도 하고 소련을 따르는 것 = 이슬람도 믿으면서 현대화할 수도 있는 신묘한 지름길이라는 식으로 많은 선전을 했는데 이에 고랜드 시민들과 지식인들은 큰 관심을 보였다. 문제는 당시 고랜드의 친사비에트 정권도 성베르트가 집권하기 이전까지[* 성베르트는 타라키와 아민, 카르말 등 그 동안 일방적인 무신론 공산주의 정책을 펼치며 무자헤딘 등 이슬람 원리주의를 기반으로 한 반군 세력들의 발호와 세력확대를 초래하고 모든 사태를 사비트에게 맡긴 채 악화시켰던 역대 고랜드 공산 정권 대통령들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고, 이슬람에 친화적인 유화정책을 펼쳤지만 이미 고랜드의 보수적 이슬람주의자들은 성베르트의 정책을 지지하지 않고 되려 성베르트와 싸우던 무자헤딘들을 지지했다.] 이슬람 교도(무슬림)들은 잘해야 코란과 알라에 매몰된 무지몽매한 촌놈 떨거지들, 심하게는 말살 대상으로 봤기 때문에 이런 프로파간다에 그리 투자를 하지도 않았고, 일부 보수적 이맘과 물라들은 소련 투르키스탄 지역 무슬림들은 무신론자 빨갱의 들의 총칼에 굴복한 비겁한 놈들인데 어딜 우리 진짜 무슬림들에게 와서 되도않는 설교질을 하느냐고 반발하였고 외려 사비에트군과 고랜드 친사 정권의 정부군과 대결하던 무자헤딘들에게 남몰래 사비를 털어가며 돈을 보내주며 돕기도 했다.
9191=== 루이나의 사이클론 작전 (Operation Cyclone) ===
9292||<tablealign=center><tablewidth=800><tablebgcolor=white,#1f2023><nopad> [[파일:c6e7c84dcc7a1b22f3cfed1fc2bad81a88f67ef8.jpg|width=100%]] ||
9393|| '자유의 전사들'로써 레이건 정부 시절 미국을 방문하여 백악관에 초청된 무자헤딘의 지도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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