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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43 vs r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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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5== 배경 ==
3636웨스타시아와 마베라, 이 두 나라는 예로부터 오랜 앙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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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8=== 마테르는 누구인가 ===
3839'''마테르 쿠빌리치오'''(Matir Kubiliçio)는 과거 웨스타시아 연방에서 활동하던 불법 종교 조직인 '''민케 교단'''(Minker Sect)의 고위 전도사로, 이후 라 마베라 왕국에서 종교 탄압 저항의 상징 인물로 부상한 인물이다. 공식적으로는 '''종교가 금지된 웨스타시아 체제 하에서 단독으로 3000명 이상에게 종교를 전파한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민케 교단 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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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45=== 민케 대학살 ===
4546'''민케 대학살(Minker Massacre)'''은 1981년 4월, 웨스타시아 연방정부가 자국 내 지하 종교조직인 민케 교단을 무력으로 진압하며 벌어진 대규모 학살 사건이다. 사건은 공식적으로 973명이 사망한 것으로 발표되었지만, 생존자의 증언과 라 마베라 측의 피해 보고서에 따르면 실제 피해자는 1,000명을 넘어서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건은 이후 라 마베라 왕국의 참전을 불러일으킨 결정적 계기가 되었으며, 결국 웨스타시아의 체제 붕괴와 마테르 전쟁의 발발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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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웨스타시아 연방은 파시즘 체제 아래에서 종교와 이념을 철저히 통제하는 체계를 유지해왔다. 1970년 ‘국민사상통일법’ 제정 이후, 모든 종교 활동은 금지되었으며, 기존의 사찰·교회·성소는 모두 ‘국가의 과학적 진리’에 반하는 미신적 시설로 간주되어 해체되었다. 정부는 진리부(Ministry of Truth) 중심으로 사상적 순결성과 이념적 순응을 강요했으며, 종교인들은 대부분 전향하거나 사라졌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일부 지하 종교 공동체는 명맥을 유지했고, 민케 교단은 그중에서도 가장 은밀하고 조직적으로 운영되던 집단이었다.
48웨스타시아 연방은 파시즘 체제 아래에서 종교와 이념을 철저히 통제하는 체계를 유지해왔다. 1970년 ‘국민사상통일법’ 제정 이후, 모든 종교 활동은 금지되었으며, 기존의 사찰·교회·성소는 모두 ‘국가의 과학적 진리’에 반하는 미신적 시설로 간주되어 해체되었다. 정부는 군사경찰(Westasia Military Police) 중심으로 사상적 순결성과 이념적 순응을 강요했으며, 종교인들은 대부분 전향하거나 사라졌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일부 지하 종교 공동체는 명맥을 유지했고, 민케 교단은 그중에서도 가장 은밀하고 조직적으로 운영되던 집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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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민케 교단은 웨스타시아 남부의 칼펜(Calphen) 시 지하시설에 근거지를 두고 있었다. 이들은 공공 배관과 유기 폐건축물들을 연결한 밀실망 안에서 은밀히 신도를 양성하고 집단 생활을 이어갔으며, 교단의 핵심 전도사였던 마테르 쿠빌리치오는 약 20년에 걸쳐 3천 명에 달하는 신자에게 설교하고 교리를 전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는 오랫동안 이 집단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했지만, 1979년 3월 마테르가 체포되면서 상황이 급변하였다.
50민케 교단은 웨스타시아 남부의 칼펜(Kalphen) 시 지하시설에 근거지를 두고 있었다. 이들은 공공 배관과 유기 폐건축물들을 연결한 밀실망 안에서 은밀히 신도를 양성하고 집단 생활을 이어갔으며, 교단의 핵심 전도사였던 마테르 쿠빌리치오는 약 20년에 걸쳐 3천 명에 달하는 신자에게 설교하고 교리를 전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는 오랫동안 이 집단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했지만, 1979년 3월 마테르가 체포되면서 상황이 급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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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마테르는 2년 가까이 비공식적으로 구금되었고, 이 과정에서 진리부는 교단의 전모를 확보하였다. 이후 연방 정부는 교단의 본거지를 전면 소각하고 구성원을 말살하는 강제 진압작전을 결정하였다. 같은 해 4월 4일, 웨스타시아 진리부 제8기동대는 칼펜 지하시설에 침투해 고열 내연 가스, 증기식 소이탄, 밀폐형 진압 구조를 동시 투입하였으며, 출입구는 봉쇄되어 사실상 ‘불로 가득 찬 방’ 안에 교도들이 갇히는 형국이 되었다. 작전은 4시간 만에 종료되었으며, 현장은 완전히 불타올라 유해 대부분은 회수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정부는 이 작전을 “반체제 사상균을 제거한 위대한 정화 작전”이라고 발표했으며, 사건의 실상을 전면 통제했다.
52마테르는 2년 가까이 비공식적으로 구금되었고, 이 과정에서 헌병대는 교단의 전모를 확보하였다. 이후 연방 정부는 교단의 본거지를 전면 소각하고 구성원을 말살하는 강제 진압작전을 결정하였다. 같은 해 4월 4일, 군경 제8기동대는 칼펜 지하시설에 침투해 고열 내연 가스, 증기식 소이탄, 밀폐형 진압 구조를 동시 투입하였으며, 출입구는 봉쇄되어 사실상 ‘불로 가득 찬 방’ 안에 교도들이 갇히는 형국이 되었다. 작전은 4시간 만에 종료되었으며, 현장은 완전히 불타올라 유해 대부분은 회수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정부는 이 작전을 “반체제 사상균을 제거한 위대한 정화 작전”이라고 발표했으며, 사건의 실상을 전면 통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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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54진압 직후 생존한 47명의 교도들은 지하 배관망을 통해 탈출하였고, 그들은 라 마베라 왕국으로 망명했다. 이들은 학살의 전말을 상세히 증언했으며, 이를 접한 라 마베라 국왕 상페드로 4세는 웨스타시아에 강력한 항의서한을 전달하고, 사망자당 2억 레티의 배상금을 요구했다. 그러나 웨스타시아는 이를 ‘내정 간섭’으로 규정하며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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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6이 사건은 단순한 종교 탄압이 아니라, 웨스타시아 체제의 파시즘적 속성과 국가권력이 이념 순응을 위해 민간인을 어떻게 제거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상징적 사건으로 남았다. 특히 웨스타시아 정부가 민간인 대량 학살을 ‘예방적 소거’로 표현하고, 대외적으로는 “불순 종교의 근절”이라 포장했다는 점에서, 학계와 국제사회의 강도 높은 비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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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한편, 사건의 직접 실행 책임자였던 진리부 소속 자이르 리는 이후 잠적했다가 19921월 자택 지하실에서 마베라 정보부에 의해 체포되어 마베라로 압송당한 후 처형되었으며, 당시 웨스타시아 행정부 핵심 인사 27명은 전쟁 패배 직전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이들 모두는 패전 이후 라 마베라 정부에 의해 평화부 역사관에 ‘박제’되어 전시되고 있으며, 이는 과거 체제의 잔혹성과 몰락을 상징하는 정치적 기념물로 남아 있다.
58한편, 사건의 직접 실행 책임자였던 기동대 자이르 리는 이후 잠적했다가 19837월 자택 지하실에서 마베라 정보부에 의해 체포되어 마베라로 압송당한 후 처형되었으며, 당시 웨스타시아 행정부 핵심 인사 27명은 전쟁 패배 직전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이들 모두는 패전 이후 라 마베라 정부에 의해 평화부 역사관에 ‘박제’되어 전시되고 있으며, 이는 과거 체제의 잔혹성과 몰락을 상징하는 정치적 기념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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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60현재 민케 교단 희생자의 유해 중 224구를 제외한 대부분은 라 마베라 정부에 의해 수습되어 진리부 교단연합 묘역에 안치되어 있으며, 매년 4월 4일은 ‘민케의 날’로 지정되어 희생자들을 기리는 국가기념일로 운영되고 있다. 민케 대학살은 종교와 자유, 권력과 폭력의 문제를 둘러싼 현대사의 결정적 전환점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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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62=== 웨스타시아: 이쪽도 상황이 좋지는 않다 ===
6163한편, 이 모든 짓들을 저지른 웨스타시아도 상황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1981년은 정부의 잘못된 부동산정책이 불러온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면서 나라의 경제가 시궁창으로 떨어진지 3년이 채 안지난 시점이었고 이미 7대기업 3개가 도산하고 거리엔 실업자와 부랑자가 넘쳐날 정도로 상황은 크게 악화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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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97한편 367편과 무전이 되지 않자 015편과 동사랜드 관제소는 다급하게 367편을 찾았지만 헛수고였다. 심지어 동사랜드 관제소는 웨스타시아의 민간 항공관제소에도 연락을 했지만 367편이 마지막으로 보고한 곳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이후 웨스트시아가 격추 사실을 시인하였고 부랴부랴 빌베른 해군과 루이나 해군, 마베라 해군, 그리고 민간 트롤어선까지 동원해 공해상에서 구조와 수색을 시도했지만 실패했으며 심지어 웨스타시아 해군과 해안경비대가 루,빌,마 구조대가 웨스타시아 영해로 진입하는 것을 막았기 때문에 유력 추락 지점인 서부 해안 근해는 수색하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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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이후 사고 현장과 인접한 빌베른 근해에서 일부 유류품과 13명분의 시체 조각을 찾았다. 한편 367편이 추락한 직후 웨스타시아는 추락지점 근해를 수색했는데 원래는 RC-135의 잔해와 블랙박스, 컴퓨터 그리고 영공침범의 증거로 마베라군의 시신을 인양하러 간 것이지만 자신들이 격추한 것이 RC-135가 아니고 그냥 민간인이 탄 민간 항공사의 민항기였다는 것을 뒤늦게 안 뒤 경악했다. 이때 367편의 파편과 블랙박스, 유류품이 수거되었다. 원래 웨스타시아는 자기들이 민항기를 격추했다는 사실을 은폐할 생각이었으나 루이나의 정보 공개로 무산되었고 루이나와 마베라의 압박 때문에 1982년 9월 26일 웨스타시아는 유류품 213점을 전달했다. 그러나 블랙박스와 잔해들은 마테르 전쟁이 끝난 후에도 발견되지 않았으며, 웨스타시아는 367편 블랙박스의 존재를 부인했다.
98== 경과 ==
99이후 사고 현장과 인접한 빌베른 근해에서 일부 유류품과 13명분의 시체 조각을 찾았다. 한편 367편이 추락한 직후 웨스타시아는 추락지점 근해를 수색했는데 원래는 RC-135의 잔해와 블랙박스, 컴퓨터 그리고 영공침범의 증거로 마베라군의 시신을 인양하러 간 것이지만 자신들이 격추한 것이 RC-135가 아니고 그냥 민간인이 탄 민간 항공사의 민항기였다는 것을 뒤늦게 안 뒤 경악했다. 이때 367편의 파편과 블랙박스, 유류품이 수거되었다. 원래 웨스타시아는 자기들이 민항기를 격추했다는 사실을 은폐할 생각이었으나 루이나의 정보 공개로 무산되었고 루이나와 마베라의 압박 때문에 1982년 9월 26일 웨스타시아는 유류품 213점을 전달했다. 그러나 블랙박스와 잔해들은 마테르 전쟁이 끝난 후에도 발견되지 않았으며, 웨스타시아는 367편 블랙박스의 존재를 부인했다.\
99100=== 웨식트(Wexit): 비동맹노선으로 ===
100101상황이 이 지경이 되자, 루이나와 미합중제국을 비롯한 제1세계 국가들(특히 폴란드와 서독)은 40년전의 악몽을 다시금 떠올리기 시작했다. 군국주의 정권, 선전선동을 통한 지지율 강화, 민족에 대한 적대심 유발 및 혐오정치, 거기에 영토확장 야욕까지... 이거 어디서 많이 본 모양세 아니었던가? 해협은 다시금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웨스타시아는 경제력 이슈로 결코 그리 강한나라가 아니었지만 만약 마베라가 전쟁에서 진다면 [[https://namu.wiki/w/%ED%94%84%EB%9E%91%EC%8A%A4%20%EC%B9%A8%EA%B3%B5?from=%EB%82%AB%EC%A7%88%20%EC%9E%91%EC%A0%84|중립을 무시하는 군국주의 특성상]] 시스타니아, 체르드, 델라웨어 등의 랜드해협 북부 중립국들도 도미노처럼 차례차례 무너지게 되고, 이렇게 되면 북마베라해의 재해권[* 꽤나 중요한 문제였다. 랜드해협의 해상무역은 유럽쪽으론 북쪽의 포틸락스 해협과 북마베라해로 나가고, 아시아 및 인도양 쪽으론 동남쪽의 카이삼 해로 나가는데, 이중 북마베라 해가 나라 하나에 통째로 먹힌다는건 유럽쪽 해상무역의 통제가 가능해짐과 동시에, 아래쪽 남포틸락스 해협을 먹고있는 루이나의 패권이 약화된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과 영토, 각종 희토류와 천연자원들을 한랜드가 깡으로 손에 쥐어 서방세계에 맞설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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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109양국은 물론 서로의 최후통첩에 무시로 대응했다. 동월 20일에는 주마베라 웨스타시아 대사관이, 21일에는 주웨스타시아 마베라 대사관이 본국으로 철수를 마쳤다. 그렇게 하루 뒤인 2월 22일 새벽, 양국의 명절 콩콩절에 맞춰 선전포고문 발송 30분후 웨스타시아 육군이 마베라 국경을 넘어가면서 짧고 굵은 남북의 전란이 시작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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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침공 후 일주일, 40년 악몽 ===
111전쟁의 첫 포성은 웨스타시아가 가져갔다. 1984년 2월 22일 오전 4시, 최후통첩 기간이 만료되자마자 웨스타시아 전군에 '할아버지가 살아나셨다'라는 역사적인 개전암호가 타전되었다. 4시 3분경, 럭샤슨호르스트급 2번함 시후니제나우의 11.1인치급 주포가 에스타뉴산 너머를 향해 전쟁의 첫 번째 고폭탄을 쐈다. 이윽고 김용하 장군 휘하의 13개 포병연대와 그 유명한 구스타프 III급 열차포 6문이 포격전에 동참하고 보름달을 까맣게 가린 공군의 전폭기들이 에스타뉴산을 넘어왔다. 마베라 국왕 샹페드로 4세가 개전 사실을 보고받았을때는 이미 6,900발의 포격이 산맥 너머에 내리꽂힌 뒤였다. 한편 에스타뉴산을 넘어온 웨스타시아 공군은 할파야 공중전에서 마베라 공군을 궤멸시킨뒤 제공권을 장악, 마베라 서부의 모든 땅에 폭격을 가했다. '쿤타치 작전'이라 명명된 이 작전은 웨스타시아의 7일 전쟁 계획에 기반을 둔 사전 초토화 작전으로, 지상군이 병력을 전개하기 전에 전 마베라 영토의 거의 모든 기반시설, 인프라, 군사시설을 모조리 파괴시켜 3일 트리넬 진격을 가능케 하는것이 요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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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7438== 반전: 헤이그에서 밝혀진 것 ==
438439== 그의 행방은 어디로? ==
439440== 이후 ==
111== ==
112=== [[마테르 전쟁/전개/전반부|전반부]] ===
113=== [[마테르 전쟁/전개/후반부|후반부]] ===
440118== 기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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