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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 33 | == 배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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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 34 | === 마테르는 누구인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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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 | === 민케 교단에 대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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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 | === MAL기 격추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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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 | === 버블 붕괴의 여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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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 | 한편, 이 모든 짓들을 저지른 웨스타시아도 상황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1982년은 정부의 잘못된 부동산정책이 불러온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면서 나라의 경제가 시궁창으로 떨어진지 3년이 채 안지난 시점이었고 이미 기업 여럿이 도산하고 거리엔 실업자와 부랑자가 넘쳐날 정도로 상황은 크게 악화되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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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 === 마베라: 민케 교단에 대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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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 === 웨스타시아: 이쪽도 상황이 좋지는 않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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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 한편, 이 모든 짓들을 저지른 웨스타시아도 상황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1982년은 정부의 잘못된 부동산정책이 불러온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면서 나라의 경제가 시궁창으로 떨어진지 3년이 채 안지난 시점이었고 이미 기업 3개가 도산하고 거리엔 실업자와 부랑자가 넘쳐날 정도로 상황은 크게 악화되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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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 39 | 이러한 불만은 대게 초저금리 정책을 펼쳐 부동산 폭등을 초래한 정부에게 향했다. 가뜩이나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데다 정부수반 대부분이 외국인이라 정통성이 전무하던 정부였는데, 버블 붕괴는 어찌어찌 경제 호황으로 버티고 있던 군사정권의 막대한 지지율 파괴를 초래했다. 전국에서 쏟아지는 반란의 낌세들은 군사경찰을 통해 속속들이 군부에 보고되었고, 대게는 거사를 개시하기도 전에 소리소문없이 사라졌지만 앨빈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선 이를 이대로 계속 방치할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1978년 이후로 잠잠해졌던 유고랜드 독립운동이 다시금 일어설 기미를 보이는 것도 불안의 요소 중 하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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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 | 앨빈 대통령의 선택은 외부의 적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82년 6월 25일 제49차 전당대회에서 한 연설로 단숨에 자신들의 지지율을 회복시키고, 국민들을 군대로 결집시켰다. 그들은 그 연설에서 처음으로 자신들의 패배를 인정하되, 그 책임을 IMF, 세계은행 등의 국제금융기관들과 웨스타시아가 무너지고 떨군 자본들을 줍줍한 서방세계한테 돌리면서 교묘하게 책임을 회피, 동시에 당시 IMF 총재의 출신국이자 1차 랜드전쟁 시절을 제외하면 예로부터 오랜 숙적이었던 마베라에 전 국민의 적대감을 집중시키면서 전쟁 분위기를 조성했다. 물론 선전내용의 90%는 말같지도 않은 개소리였지만, 재계의 전문가들이 반박을 준비했을때는 이미 대중들은 확증편향에 빠진지 오래된 상태였고 머지않아 그 전문가들도 군사경찰에 의해 대부분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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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 앨빈 대통령의 선택은 외부의 적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82년 9월 11일 제49차 전당대회에서 한 연설로 단숨에 자신들의 지지율을 회복시키고, 국민들을 군대로 결집시켰다. 그들은 그 연설에서 처음으로 자신들의 패배를 인정하되, 그 책임을 IMF, 세계은행 등의 국제금융기관들과 웨스타시아가 무너지고 떨군 자본들을 줍줍한 서방세계한테 돌리면서 교묘하게 책임을 회피, 동시에 당시 IMF 총재의 출신국이자 1차 랜드전쟁 시절을 제외하면 예로부터 오랜 숙적이었던 마베라에 전 국민의 적대감을 집중시키면서 전쟁 분위기를 조성했다. 마베라 지하에 묻힌 희토류들을 채굴하면 전자산업계의 반도체 보급난이 해결될 것이라는 약간의 귀띰도 빼놓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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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 물론 선전내용의 90%는 말같지도 않은 개소리였지만, 이미 2차대전 시절부터 양국간의 국민감정은 좋았던 적이 없었기에 재계의 전문가들이 반박을 준비했을때 이미 대중들은 확증편향에 빠진지 오래였고, 머지않아 그 전문가들도 군사경찰에 의해 대부분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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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 마베라는 당연히도 적반하장이라는 식으로 대꾸했다. 외무성에서도 여러차례 항의성명을 내고 민케 학살에 대한 배상금과 사죄를 다시금 요구했지만, 웨스타시아는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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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 그렇게 양국간의 관계가 슬슬 개차반이 되던 찰나, 양국간의 관계에 종지부를 찍는 사건이 터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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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 === MAL기 격추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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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 51 | === 웨식트(Wexit): 비동맹노선으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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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 | | 결국 1983년 2월 18일, 제7차 NLTO 정상회의에서 마베라의 퇴출에 대한 안건이 부결되었고, 도리어 를 탈퇴한다. 웨스타시아는 마베라와 단교를 선언함과 동시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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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 | 상황이 이 지경이 되자, 루이나와 미합중제국을 비롯한 제1세계 국가들(특히 서독)은 40년전의 악몽을 다시금 떠올리기 시작했다. 군국주의 정권, 선전선동을 통한 지지율 강화, 민족에 대한 적대심 유발 및 혐오정치, 거기에 영토확장 야욕까지... 이거 어디서 많이 본 모양세 아니었던가? 해협은 다시금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웨스타시아는 경제력 이슈로 결코 그리 강한나라가 아니었지만 만약 마베라가 전쟁에서 진다면 [[https://namu.wiki/w/%ED%94%84%EB%9E%91%EC%8A%A4%20%EC%B9%A8%EA%B3%B5?from=%EB%82%AB%EC%A7%88%20%EC%9E%91%EC%A0%84|중립을 무시하는 군국주의 특성상]] 시스타니아, 체르드, 델라웨어 등의 랜드해협 북부 중립국들도 도미노처럼 차례차례 무너지게 되고, 이렇게 되면 북마베라해의 재해권[* 꽤나 중요한 문제였다. 랜드해협의 해상무역은 유럽쪽으론 북쪽의 포틸락스 해협과 북마베라해로 나가고, 아시아 및 인도양 쪽으론 동남쪽의 카이삼 해로 나가는데, 이중 북마베라 해가 나라 하나에 통째로 먹힌다는건 유럽쪽 해상무역의 통제가 가능해짐과 동시에, 아래쪽 남포틸락스 해협을 먹고있는 루이나의 패권이 약화된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과 영토, 각종 희토류와 천연자원들을 한랜드가 깡으로 손에 쥐어 서방세계에 맞설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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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 | 그렇게 이틀 뒤인 2월 22일, 양국의 명절 콩콩절에 맞춰 웨스타시아 육군이 마베라 국경을 넘어가면서 남북의 전란이 시작되고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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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 | 56 | === 침공 후 3개월, 40년전의 악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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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 | 59 | === "수면위의 모든것은 웨스타시아의 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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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 | 60 | === 그 계곡을 먹어야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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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 | 61 | === 역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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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 | 결국 루이나는 마베라를 택했다. 1983년 2월 10일, 벨포르에서 열린 제7차 NLTO 정상회의에서 웨스타시아의 퇴출에 대한 안건이 만장일치로 가결되었고, 궁지에 몰린 I.S. 아이에스 외무부 장관은 자존심이라도 채우려 NLTO 자진탈퇴를 선언함과 동시에, 회담장을 박차고 나왔다. 마베라는 유엔 총회에도 웨스타시아에 대한 제제안을 발의했지만, 은근슬쩍 자본주의 진영의 내분을 유도한 제2세계 국가들의 반대로 부결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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