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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9 | 249 | ==== 벵가지 상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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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0 | 250 | 자세한건 [[벵가지 상륙전]]문서를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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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1 | 251 | ==== 대공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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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2 | | 1983년 가을, 공수교대의 시간이 다가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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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2 | 1983년 가을, 마베라–체르드 연합군은 전선을 일제히 반격하기 시작했다. 참호전과 장마로 한동안 고착되어 있던 전황은, 7월 장마 종료와 동시에 점진적 전환을 예고했으며, 루이나를 비롯한 제3국의 물자·정보 지원이 본격화되면서 전쟁의 흐름은 서서히 ‘되돌려지기’ 시작했다. 이 대공세는 마베라 왕국 수뇌부가 전격적으로 승인한 '국민총동원계획 제12호'의 일환으로 시행된 일련의 반격 작전 묶음으로, 북부 노르트란트 회랑, 중부 솔로몬 돌출부, 남부 아크로마–베이다 전선을 축으로 하는 3방향 작전이었다. 연합군은 이 작전을 통해 고착화된 전선을 타개하고, 웨스타시아군의 후방 보급망과 방어선을 붕괴시키며, 다시금 전술 주도권을 탈환하고자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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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5 | 이 작전으로 전선 전체의 주도권이 마베라–체르드 측으로 전환되었으며, 웨스타시아군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서둘러 2차 방어선을 구축하고 내륙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이 공세는 루이나의 간접 개입이 실질적인 전략 변수로 부상한 국면이었다. 특히 위성 정찰, 전자전 지원, 화학·방사능 보호장비 공급 등은 연합군의 전술적 능력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으며, 루이나가 단순한 외교적 지지국을 넘어 전쟁에 일정 수준 이상 ‘투명하게’ 개입하기 시작했음을 암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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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7 | 마베라 국내에서는 이 시기부터 '''"트리넬을 되찾자"'''는 구호가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했고, 국왕 상 페드로 3세는 직접 말을 타고 전선을 순시하며 군민 사기를 북돋았다. 반면, 웨스타시아 총사령부는 내심 작전의 실패를 인정하면서도 외부에는 '임시적 반동'이라는 해석으로 일관하며 전선 유지에 몰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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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9 | 결과적으로, '''대공세는 마테르 전쟁의 결정적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전쟁 초반 7일간의 급속 침공으로 얻은 전략적 우위를 한랜드 측이 이 시기부터 급격히 상실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마베라군의 주도 아래 전장은 점차 서쪽으로 밀려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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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5 | 260 | ==== 번외: 라이넬 항 탈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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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6 | 261 | 자세한건 [[라이넬 항 탈출]]문서를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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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7 | 262 | === 발악: 은색작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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