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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1 | 251 | 자세한건 [[벵가지 상륙전]]문서를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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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3 | 253 | === 대공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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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4 | | 1983년 가을, 마베라–체르드 연합군은 전선을 일제히 반격하기 시작했다. 참호전과 장마로 한동안 고착되어 있던 전황은, 7월 장마 종료와 동시에 점진적 전환을 예고했으며, 루이나를 비롯한 제3국의 물자·정보 지원이 본격화되면서 전쟁의 흐름은 서서히 ‘되돌려지기’ 시작했다. 이 대공세는 마베라 왕국 수뇌부가 전격적으로 승인한 '국민총동원계획 제12호'의 일환으로 시행된 일련의 반격 작전 묶음으로, 북부 노르트란트 회랑, 중부 솔로몬 돌출부, 남부 마레트 라인을 축으로 하는 3방향 작전이었다. 연합군은 이 작전을 통해 고착화된 전선을 타개하고, 웨스타시아군의 후방 보급망과 방어선을 붕괴시키며, 다시금 전술 주도권을 탈환하고자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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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4 | 1983년 가을, 마베라–체르드 연합군은 전선을 일제히 반격하기 시작했다. 참호전과 장마로 한동안 고착되어 있던 전황은, 7월 장마 종료와 동시에 점진적 전환을 예고했으며, 루이나를 비롯한 제3국의 물자·정보 지원이 본격화되면서 전쟁의 흐름은 서서히 ‘되돌려지기’ 시작했다. 이 대공세는 마베라 왕국 수뇌부가 전격적으로 승인한 '국민총동원계획 제12호'의 일환으로 시행된 일련의 반격 작전 묶음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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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6 | 256 | ==== 노르트란트 회랑 전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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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7 | 257 | 1983년 가을, 마베라–체르드 연합군의 대공세가 시작되며 침체되어 있던 전쟁 양상이 서서히 전환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연합군이 가장 주목한 지역은 북부 노르트란트 회랑이었다. 이 지역은 카르비크 고원과 로흐스 평야 사이를 잇는 좁고 긴 병목지대였으며, 웨스타시아군이 마베라 북부를 점령한 이래 줄곧 군수 보급의 핵심 동맥으로 기능해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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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4 | 284 | 결정적 전환점은 9월 18일, 마베라 공군의 “에이브럼 작전” 하 강습기가 돌출부 중앙의 통신지휘소를 파괴하면서 도래했다. 이후 남측 체르드군이 동부 능선까지 밀고 들어가며 포위망을 재봉쇄했고, 9월 22일, 남은 웨스타시아 병력 9,300명은 대부분 전투불능 상태로 항복하거나 산개 탈출을 시도하다 무력화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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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6 | 286 | ==== 마레트 라인 돌파 작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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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7 | | 강타 전투 이후 중부 전선이 전술적으로 교착되자, 마베라–체르드 연합지휘부는 남부 아크로마–미스라타 일대의 전선 돌파를 전격 결정한다. 이 지역은 상대적으로 지형이 평탄하고, 고원과 평야가 만나는 완충지대에 해당해 전차기동전에 적합한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전선은 오랫동안 방어 중심의 고착 상태였고, 이미 마베라군과 웨스타시아군 모두에게 지뢰대, 참호망, 고착화된 중화기 진지가 빽빽이 늘어선 "움직이지 않는 전선"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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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7 | 강타 전투 이후 중부 전선이 전술적으로 교착되자, 마베라–체르드 연합지휘부는 중부 아크로마–미스라타 일대의 전선 돌파를 전격 결정한다. 이 지역은 상대적으로 지형이 평탄하고, 고원과 평야가 만나는 완충지대에 해당해 전차기동전에 적합한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전선은 오랫동안 방어 중심의 고착 상태였고, 이미 마베라군과 웨스타시아군 모두에게 지뢰대, 참호망, 고착화된 중화기 진지가 빽빽이 늘어선 "움직이지 않는 전선"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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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9 | 289 | 하지만 마베라군 수뇌부는 솔로몬 돌출부 붕괴 이후 전선이 일시적으로 재편되고 있는 틈을 노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웨스타시아군 제14보병사단과 제6혼성기갑대대가 재보급과 병력 충원을 위해 일부 병력을 철수한 상황을 정찰망이 포착하면서, 돌파 작전은 빠르게 실전 계획으로 전환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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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1 | 291 | 작전명은 「브레이크사우스(Operation Breaksouth)」, 지휘는 마베라군 헨리크 로드페르 장군과 체르드군 니콜라 슈테판 대장이 공동 담당하였다. 루이나군은 작전 당시 후방 항공정찰 및 무선교란 지원, 남부 국경 초계망 확장, 차량형 전자전 장비 제공 등의 형태로 깊이 개입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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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3 | 293 | 작전은 1983년 10월 3일 새벽 4시, 마베라 제2기갑사단과 체르드 제5전차여단이 선두에 서서 아크로마 북동부의 방어진지에 기습 포격을 퍼부으며 개시되었다. 루이나 항공정찰대로부터 확보된 진지 배치 정보에 따라, 포병은 지휘통신소, 탄약고, 야전 발전기 등 비탄 핵심 시설을 우선 제거했다. 뒤이어 160대 이상의 전차와 장갑차가 전속력으로 진입하며 첫 돌파 구간을 단 7시간 만에 열어젖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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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5 | | 10월 4일, 미스라타 서측의 방어진지가 무너지며 웨스타시아군의 제14보병사단 좌익이 붕괴되었다. 남아 있던 기갑대대는 지원 없이 고립되었고, 마베라군 선봉부대는 이틀 만에 48킬로미터를 전진, 아크로마와 미스타라를 연결하는 교차 물류허브를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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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7 | | 체르드군은 이 돌파구를 확대하기 위해 '''‘코브라 라인’'''으로 명명된 남부 능선 방어선을 포위해 들어갔고, 이에 맞선 웨스타시아군은 퇴각과 반격을 병행하는 지연전술을 펼쳤으나 지형의 한계로 인해 효과는 미미했다. 웨스타시아 측이 진지 철수를 명령한 것은 10월 7일. 그러나 이 결정은 이미 너무 늦었다. 마베라–체르드 연합군은 미스라타 북부 비행장과 유류 저장소, 중형 철도 분기점을 포획했으며, 전선은 단 1주일 만에 남동방향으로 80킬로미터 이상 전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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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9 | | 마레트 라인 돌파는 전통적인 교착전 양상을 뒤엎은 전격적 기갑 작전의 성공 사례로 기록되었다. 마베라군은 전차 손실 140여 대, 전사자 약 3,200명을 감수했지만, 웨스타시아군은 남부 방어망 전반이 붕괴되며 3개 여단이 후퇴, 2개 기갑중대가 포위 및 항복, 1개 야전사령부가 해체되는 전선 붕괴 사태를 겪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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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5 | 10월 4일, 미스라타 북측의 방어진지가 무너지며 웨스타시아군의 제14보병사단 좌익이 붕괴되었다. 남아 있던 기갑대대는 지원 없이 고립되었고, 마베라군 선봉부대는 이틀 만에 48킬로미터를 전진, 아크로마와 미스타라를 연결하는 교차 물류허브를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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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9 | 마레트 라인 돌파는 전통적인 교착전 양상을 뒤엎은 전격적 기갑 작전의 성공 사례로 기록되었다. 마베라군은 전차 손실 140여 대, 전사자 약 3,200명을 감수했지만, 웨스타시아군은 동부 방어망 전반이 붕괴되며 3개 여단이 후퇴, 2개 기갑중대가 포위 및 항복, 1개 야전사령부가 해체되는 전선 붕괴 사태를 겪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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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1 | 301 | 이 돌파는 웨스타시아군이 남부에서의 작전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마베라 측은 이를 기반으로 다우엘 평야와 동부 도시권 진격 작전의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었다. 또한 루이나 정보국은 작전 직후 웨스타시아군의 내부 무전 일부를 해독하여, '''“동부 사단은 응답 없다(East Command is silent)”'''라는 문구를 국내 언론에 노출시켰고, 이는 이 작전의 상징적 명제로 퍼지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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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3 | | 이 작전으로 전선 전체의 주도권이 마베라–체르드 측으로 전환되었으며, 웨스타시아군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서둘러 2차 방어선을 구축하고 내륙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이 공세는 루이나의 간접 개입이 실질적인 전략 변수로 부상한 국면이었다. 특히 위성 정찰, 전자전 지원, 화학·방사능 보호장비 공급 등은 연합군의 전술적 능력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으며, 루이나가 단순한 외교적 지지국을 넘어 전쟁에 일정 수준 이상 ‘투명하게’ 개입하기 시작했음을 암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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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3 | 이 작전으로 전선 전체의 주도권이 마베라–체르드 측으로 전환되었으며, 웨스타시아군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서둘러 2차 방어선을 구축하고 서부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이 공세는 루이나의 간접 개입이 실질적인 전략 변수로 부상한 국면이었다. 특히 위성 정찰, 전자전 지원, 화학·방사능 보호장비 공급 등은 연합군의 전술적 능력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으며, 루이나가 단순한 외교적 지지국을 넘어 전쟁에 일정 수준 이상 ‘투명하게’ 개입하기 시작했음을 암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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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5 | 305 | 마베라 국내에서는 이 시기부터 '''"트리넬을 되찾자"'''는 구호가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했고, 국왕 상 페드로 3세는 직접 말을 타고 전선을 순시하며 군민 사기를 북돋았다. 반면, 웨스타시아 총사령부는 내심 작전의 실패를 인정하면서도 외부에는 '임시적 반동'이라는 해석으로 일관하며 전선 유지에 몰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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