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 1 | == 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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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2 | [[마테르 전쟁]]의 전반부(개전 ~ 동맹국 참전 시점까지)를 다루는 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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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 4 | == 침공 후 일주일, 40년전의 악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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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 | 전쟁의 첫 포성은 웨스타시아가 가져갔다. 1984년 2월 22일 오전 4시, 최후통첩 기간이 만료되자마자 웨스타시아 전군에 '할아버지가 살아나셨다'라는 역사적인 개전암호가 타전되었다. 4시 3분경, 럭샤슨호르스트급 2번함 시후니제나우의 11.1인치급 주포가 에스타뉴산 너머를 향해 전쟁의 첫 번째 고폭탄을 쐈다. 이윽고 김용하 장군 휘하의 13개 포병연대와 그 유명한 구스타프 III급 열차포 6문이 포격전에 동참하고 보름달을 까맣게 가린 공군의 전폭기들이 에스타뉴산을 넘어왔다. 마베라 국왕 샹페드로 4세가 개전 사실을 보고받았을때는 이미 6,900발의 포격이 산맥 너머에 내리꽂힌 뒤였다. 한편 에스타뉴산을 넘어온 웨스타시아 공군은 할파야 공중전에서 마베라 공군을 궤멸시킨뒤 제공권을 장악, 마베라 서부의 모든 땅에 폭격을 가했다. '쿤타치 작전'이라 명명된 이 작전은 웨스타시아의 7일 전쟁 계획에 기반을 둔 사전 초토화 작전으로, 지상군이 병력을 전개하기 전에 전 마베라 영토의 거의 모든 기반시설, 인프라, 군사시설을 모조리 파괴시켜 3일 트리넬 진격을 가능케 하는것이 요지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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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 전쟁의 첫 포성은 웨스타시아가 가져갔다. 1984년 2월 22일 오전 4시, 최후통첩 기간이 만료되자마자 웨스타시아 전군에 '할아버지가 살아나셨다'라는 역사적인 개전암호가 타전되었다. 4시 3분경, 럭샤슨호르스트급 2번함 시후니제나우의 11.1인치급 주포가 에스타뉴산 너머를 향해 전쟁의 첫 번째 고폭탄을 쐈다. 이윽고 김용하 장군 휘하의 13개 포병연대와 그 유명한 구스타프 III급 열차포 6문이 포격전에 동참하고 보름달을 까맣게 가린 공군의 전폭기들이 에스타뉴산을 넘어왔다. 마베라 국왕 샹페드로 4세가 개전 사실을 보고받았을때는 이미 6,900발의 포격이 산맥 너머에 내리꽂힌 뒤였다. 한편 에스타뉴산을 넘어온 웨스타시아 공군은 할레프 공중전에서 마베라 공군을 궤멸시킨뒤 제공권을 장악, 마베라 서부의 모든 땅에 폭격을 가했다. '쿤타치 작전'이라 명명된 이 작전은 웨스타시아의 7일 전쟁 계획에 기반을 둔 사전 초토화 작전으로, 지상군이 병력을 전개하기 전에 전 마베라 영토의 거의 모든 기반시설, 인프라, 군사시설을 모조리 파괴시켜 3일 트리넬 진격을 가능케 하는것이 요지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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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 7 | 개전 3일째, 포격과 폭격이 잠잠해짐과 동시에 반 폐허가 된 트리넬 국제공항에 웨스타시아의 13개 공수여단이 투하됐다([[부르군트 작전]]). 웨스타시아 공수군은 전차바퀴보다 큰 모든것을 싹다 죽였다. 샹페드로 4세와 왕가는 당초 수도를 지킬려 했지만, 왕궁의 코앞까지 공수부대가 진격해오자 어쩔 수 업이 칼펜시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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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 | 한편 마베라 군부의 모든 이목이 수도에 몰려있는 사이, 25일(개전 4일째) 3시경 한랜드 제6,9,7군이 니베스시에서 마베라군 제44사단을 괴멸시켜버린 것을 시작으로 웨스타시아 육군이 마베라 남부지방을 파죽지세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쿤타치 작전의 후속으로 기획된 '바로바로싸 작전'의 요지는 일단 서부전선 중간에 위치한 369고지를 점령해 마베라 수비군을 동서로 분단, 양군의 전략적 연계를 끊은 뒤 둘로 분단된 마베라군을 베타와 감마 집단군이 해안과 산맥으로 밀어 포위섬멸하고 그러는 동안 알파 집단군은 최대한 신속한 기갑웨이브로 트리넬까지 진격해 공수군과 합류, 트리넬 시를 점령하는 것이었다. 마치 40년전의 그 나라를 보는듯한 경의로운 진격속도로 웨스타시아군은 공격 이틀만에 369고지를 점령했고, 마베라의 전력은 그들의 계획대로 동서로 갈라져 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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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 한편 마베라 군부의 모든 이목이 수도에 몰려있는 사이, 25일(개전 4일째) 3시경 한랜드 제6,9,7군이 니베스시에서 마베라군 제44사단을 괴멸시켜버린 것을 시작으로 웨스타시아 육군이 마베라 남부지방을 파죽지세로 밀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쿤타치 작전의 후속으로 기획된 '바로바로싸 작전'의 요지는 일단 서부전선 중간에 위치한 369고지를 점령해 마베라 수비군을 동서로 분단, 양군의 전략적 연계를 끊은 뒤 둘로 분단된 마베라군을 베타와 감마 집단군이 해안과 산맥으로 밀어 포위섬멸하고 그러는 동안 알파 집단군은 최대한 신속한 기갑웨이브로 트리넬까지 진격해 공수군과 합류, 트리넬 시를 점령하는 것이었다. 마치 40년전의 그 나라를 보는듯한 경의로운 진격속도로 웨스타시아군은 공격 이틀만에 369고지를 점령했고, 마베라의 전력은 그들의 계획대로 동서로 갈라져 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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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 11 | 이제 남은것은 쌍두가 된 참새의 대가리를 잘라버리는 것이었다. 동쪽의 마베라 제1,9,7군은 바르디야 전투에서 김용하 장군 휘하의 감마 집단군에게 몬타나 산맥에 포위되어 전멸해버렸고, 서부의 가다메스 수비군은 남쪽에서 몰려온 베타 집단군과 해안가를 선점한 한랜드 2군단에 의해 아게다비아 강변 방면으로 포위되어 포로 한명 없이 몰살되었다. 11사단장 시디 바라니 소장은 3시간 가량의 가잘라 대교 전투에서 마지막까지 항전했지만 결국 한랜드군의 아게다비아 강 도하를 막을 순 없었다. 참새의 쌍두가 잘리면서, 이제 서부전선에 알파 집단군을 막을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트리넬을 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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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 13 | 개전 5일째, 연방방위부 국장 직권으로 화학무기 사용이 허가됐고, 그날 오후 9시경 루프트바페는 맛보기삼아 베이다에 스타인먼 화학이 갓 만든 사린, 소만, VX, 겨자가스 등의 대규모 화학무기 공습을 가했다.[* 이딴 짓이 가능했던 이유는, 웨스타시아 민족도 엄연한 아틀란티스 민족의 후손이라 태생적으로 화생방에 강한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베라에도 웨스타시아인들이 적지 않은수가 존재하긴 했지만, 대부분은 전쟁이 일어나자마자 추방당한지 오래였다. ] 그곳은 마베라군의 남부주 사령부, 일명 맘무트 요새가 있던 도시였다. 이 화학탄 공습에서 도시를 수호하던 제21연대는 6시간만에 전 병력 7만명중 2,300명을 빼고 전멸했고, 몬타나주 사령부는 모두 포로가 되어 마베라 동부 야전군에 거대한 지휘 공백이 생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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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 15 | 맘무트 요새로 총사령부를 이전한 웨스타시아 군부는 베이다의 뽕맛을 잊지 못하고 2월 26일(개전 6일째)부터 4달에 가까운 시간동안 서부전선 전역에 화학탄 폭격을 가했다. 지속된 가스폭격으로 인해 빈사상태가 된 마베라군을 한랜드 전차부대가 1차로 빠르게 쓸고 간 뒤, 독가스가 어느정도 가라앉으면 후속 보병부대가 2차로 남은 잔당들을 청소하는 전투양상이 수도에 도달할 때까지 쭈욱 반복됐다. 그것은 그야말로 역사에 남을 기동전, 일명 '전격전'이 반백년 남짓한 세월을 넘어 가장 끔찍한 형태로 부활한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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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 | 결국 2월의 마지막날이자 개전 7일째 되던 1983년 2월 29일. 남쪽에서 달려온 알파 집단군이 트리넬에 도착함과 동시에 마베라군은 수도를 포기하고 후퇴했다. 델레스, 외스테젠은 베타 집단군에, 사오그란트(서부 한정)와 몬타나는 감마 집단군에게 점령당했다. 노르드란트는 후술할 해상봉쇄에 의해 고립되어 죽어갔다. 29일 오전 11시경, 트리넬 왕궁에 백십자기가 올라갔다. 그야말로 완벽한 웨스타시아의 승리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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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 결국 2월의 마지막날이자 개전 7일째 되던 1983년 2월 29일. 남쪽에서 달려온 알파 집단군이 트리넬에 도착함과 동시에 마베라군은 수도를 포기하고 후퇴했다. 델레스, 외스테젠은 베타 집단군에, 자오그란트(서부 한정)와 몬타나는 감마 집단군에게 점령당했다. 노르드란트는 후술할 해상봉쇄에 의해 고립되어 죽어갔다. 29일 오전 11시경, 트리넬 왕궁에 백십자기가 올라갔다. 그야말로 완벽한 웨스타시아의 승리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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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 19 |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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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 21 | == 교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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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 | 7일간의 천지파괴가 끝나고, 전장에 새로운 해가 밝았다. 트리넬과 마베라 서부의 대부분은 웨스타시아 손에 떨어졌고, 왕가와 군 수뇌부들은 동부의 임시수도 칼펜으로 거처를 옮겼다. 2월 30일 오전 8시경 왕가를 태운 C-130 수송기가 세누시 국제공항에 내리고, 임시수도에서 하는 첫 어전회의가 시작됐다. 마베라는 이제 선택을 해야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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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 7일간의 천지파괴가 끝나고, 전장에 새로운 해가 밝았다. 트리넬, 아릴레지아를 비롯한 마베라 서부의 대부분은 웨스타시아 손에 떨어졌고, 왕가와 군 수뇌부들은 동부의 임시수도 칼펜으로 거처를 옮겼다. 2월 30일 오전 8시경 왕가를 태운 C-130 수송기가 세누시 국제공항에 내리고, 임시수도에서 하는 첫 어전회의가 시작됐다. 마베라는 이제 선택을 해야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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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 24 | 군부는 둘로 나뉘었다. 육군의 니콜라 드 몬테 소장을 주축으로 한 협상파, 해군의 마르사 엘 브라가 제독을 중심으로 한 항전파가 그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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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 43 | 83년 3월 1일. 마베라 외무성은 웨스타시아의 협상 제의에 ㅗ로 대응했다. 앞서 말한대로 최대한 빠른 종전을 원한 웨스타시아는 약간 당황했다. 한편 웨스타시아군 점령지에서는 잔존 마베라군들을 토벌하기 위한 산발적인 교전을 계속하느라 진격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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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 | 또한 83년 3월부터 마베라군은 동자오그란트, 수미나이, 노르트란트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광할한 길이의 참호선을 건설했다. 마침 3월 3일부터는 2월에 끝났던 장마가 다시 찾아와 전선 전역이 진흙으로 뒤덮혔다. 3주간 이어진 장마로 땅이 질척거려 땅끄들이 진격을 못하니 한랜드군의 전격전 전술이 돈좌, 공세가 막을 내리고 전선이 고착화되었다. 당황한 한랜드군은 전쟁 전에 연구해뒀던 인공강우 프로젝트 '나푸사 작전'을 실행, 600만톤이 넘는 HINA 분무액[* 웨스타시아 연방 기술개발부 소속 R.J. 라인하르트 박사가 개발해낸 물건으로, 본디 수증기 결집용 원소로 아이오딘화'''은'''을 뿌려야 했기에 비용이 천문학적이던 인공강우 기술을 기존의 7분의 1 비용으로 쓸수있게 해준 용액이다. ]을 전선에 뿌려 공기중 수증기를 한방에 응결, 3~4일만에 장마를 끝내려 했지만 계산 실수와 마베라 정보부 & 루이나 MIA의 분무액 생산라인 사보타쥬[* HINA 분무액의 생산은 스타인먼 화학이 담당했는데, 본토의 공장들은 독가스 만드느라 이미 바빠서 주로 점령지의 로동력을 이용해 분무액을 생산했던게 화근이었다. ]가 겹쳐 뿌려진 불량용액이 역효과를 유발. 예보대로면 3월 중순에 그칠 예정이던 장마가 7월까지 연장되버리는 참사가 발생했다. 굳은 날씨때문에 그렇게 한달내내 내린 장마로 양측의 기갑 전력들이 대부분 봉쇄되어버리면서 남은건 보병부대 뿐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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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 또한 83년 3월부터 마베라군은 자오그란트 동부, 나르덴, 노르트란트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광할한 길이의 참호선을 건설했다. 마침 3월 3일부터는 2월에 끝났던 장마가 다시 찾아와 전선 전역이 진흙으로 뒤덮혔다. 3주간 이어진 장마로 땅이 질척거려 땅끄들이 진격을 못하니 한랜드군의 전격전 전술이 돈좌, 공세가 막을 내리고 전선이 고착화되었다. 당황한 한랜드군은 전쟁 전에 연구해뒀던 인공강우 프로젝트 '나푸사 작전'을 실행, 600만톤이 넘는 HINA 분무액[* 웨스타시아 연방 기술개발부 소속 R.J. 라인하르트 박사가 개발해낸 물건으로, 본디 수증기 결집용 원소로 아이오딘화'''은'''을 뿌려야 했기에 비용이 천문학적이던 인공강우 기술을 기존의 7분의 1 비용으로 쓸수있게 해준 용액이다. ]을 전선에 뿌려 공기중 수증기를 한방에 응결, 3~4일만에 장마를 끝내려 했지만 계산 실수와 마베라 정보부 & 루이나 MIA의 분무액 생산라인 사보타쥬[* HINA 분무액의 생산은 스타인먼 화학이 담당했는데, 본토의 공장들은 독가스 만드느라 이미 바빠서 주로 점령지의 로동력을 이용해 분무액을 생산했던게 화근이었다. ]가 겹쳐 뿌려진 불량용액이 역효과를 유발. 예보대로면 3월 중순에 그칠 예정이던 장마가 7월까지 연장되버리는 참사가 발생했다. 굳은 날씨때문에 그렇게 한달내내 내린 장마로 양측의 기갑 전력들이 대부분 봉쇄되어버리면서 남은건 보병부대 뿐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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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 | 그렇게 솔로몬, 미스라타, 아크로마 전투에서 1차대전 이후 봉인되어있었던 참호전이 반백년의 세월을 넘어 부활하고야 말았다. 웨스타시아군은 여전히 미미하게 공세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3달이 넘는 기간동안 전선에 변화는 거의 없었고, 대부분 하루에 수킬로미터 진격에 그쳤으며 가끔은 몇미터씩 진격했던 때도 있었다. 이런 질척이는 전황은 솔로몬 공방전에서 정점을 찍었는데, [[솔로몬 포위전|도시 하나 먹는것]]에 양군 총합 '''30만명'''[* 민간인 피해를 제외하고 30만명이다.]의 희생자가 발생할 정도였다. 이렇듯 양측의 손해가 극심했기에, 브라가 제독은 쏟아지는 반전 여론에 한동안 경질당할뻔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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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 그렇게 솔로몬, 마슈레텐, 에크레텐 전투에서 1차대전 이후 봉인되어있었던 참호전이 반백년의 세월을 넘어 부활하고야 말았다. 웨스타시아군은 여전히 미미하게 공세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3달이 넘는 기간동안 전선에 변화는 거의 없었고, 대부분 하루에 수킬로미터 진격에 그쳤으며 가끔은 몇미터씩 진격했던 때도 있었다. 이런 질척이는 전황은 솔로몬 공방전에서 정점을 찍었는데, [[솔로몬 포위전|도시 하나 먹는것]]에 양군 총합 '''30만명'''[* 민간인 피해를 제외하고 30만명이다.]의 희생자가 발생할 정도였다. 이렇듯 양측의 손해가 극심했기에, 브라가 제독은 쏟아지는 반전 여론에 한동안 경질당할뻔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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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 49 | == "수면위의 모든것은 웨스타시아의 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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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 50 | 이제 난감한 쪽은 웨스타시아였다. 당초의 7일 전쟁 계획은 물건너간 상황에서, 병사와 물자들은 계속 갈려나가고 있는데 장마로 더이상의 진격도 불가했다. 현 시점에서 가능한 수는 그저 7월에 장마가 끝날 때까지 버티다 땅이 건조해졌을때 다시 진격하는 것밖에 없었는데 문제는 마베라 측은 곡창지대를 잃었음에도 NLTO에서 들어오는 원조가 워낙 막대했기에 오랫동안 버틸수 있었지만, 웨스타시아 측은 기껏얻은 곡창지대를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막대한 지출을 해야했다는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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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4 | 84 | == 개무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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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5 | 85 | 허지만 웨스타시아 측은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루이나 외교부의 경고에도 ㅗ로 일관했고, 의외로 루이나 해군이 별 움직임을 보이지 않음에 따라[* 사실 이럴수밖에 없었는데... 당시 루이나 해군 상부는 웨스타시아의 잠수함 전력을 과대평가 하고 있었다. 마베라 해군의 카푸초함은 루이나의 플라자 그룹에서 최신 대잠전 사양으로 업그레이드를 한 함선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수출용 프로그램은 다운그레이드 버전인데다가 마베라 해군의 군 기강의 헤이함과 오랜 평화로 인한 장비 점검 불량으로 장비의 성능에 불문하고 격침당할 운명인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이같은 일을 루이나 해군 상부에서 속속들이 알고있기란 불가능했고, 웨스타시아 잠수함에 대한 제한적 대잠 작전만을 승인했었으나 이마저도 곧 종료하게된다 ] 웨스타시아 해군은 의외로 순조롭게 마베라 근해의 재해권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5월 초부터 마베라해는 완전한 죽은 자들의 땅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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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 | | 봉쇄의 효과는 굉장했다! 서방의 원조만으로 실상 버티고 있던 마베라는 봉쇄시작 몇주만에 빠르게 무너져내렸다. 당시 마베라가 버티고있던 동부주들은 대부분이 더운 사바나 기후 + 장마로 햇빛이 안듬 크리로 도저히 농사를 지을땅이 안되었던데다, 대부분의 비축미들은 서부에 있었던 탓에 마베라는 빠르게 아사해가기 시작했다. 거리에는 굶어죽은 시체들과 거지들이 넘쳐났고, 끊임없이 오는 공습은 하나의 거대한 절망덩어리를 형성했다. 그렇게 7월이 되자 서서히 장마도 그치고, 웨스타시아군은 다시 진격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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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 | 봉쇄의 효과는 굉장했다! 서방의 원조만으로 실상 버티고 있던 마베라는 봉쇄시작 몇주만에 빠르게 무너져내렸다. 당시 마베라가 버티고있던 동부주들은 대부분이 더운 사바나 기후 + 장마로 햇빛이 안듬 크리로 도저히 농사를 지을땅이 안되었던데다, 대부분의 비축미들은 서부에 있었던 탓에 마베라는 빠르게 아사해가기 시작했다. 거리에는 아사자들과 거지들이 넘쳐났고, 끊임없이 오는 공습은 하나의 거대한 절망덩어리를 형성했다. 그렇게 7월이 되자 서서히 장마도 그치고, 웨스타시아군은 다시 진격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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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 | 89 | 말 그대로 망국 직전의 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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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9 | 109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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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 | 110 | > 신께 맹세하노니, 마베라는 무너지지 않노라. 왕관은 피로 지켜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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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2 | | 왕자 라파엘 페드로(Rafael Pedro), 칼레드 페드로(Kàled Pedro), 팔라스 페드로(Falas Pedro), 그리고 공주 나디아 페드로(Nadia Pedro)는 각각 해군, 육군, 병참, 공군 부문에 배속되어 작전에 투입되었으며, 이들의 활약은 ‘왕가의 분전(Royal Resistance)’이라는 표현으로 불리며 대중적 상징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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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2 | 왕세자 라파엘 페드로(Rafael Pedro), 칼레드 페드로(Kàled Pedro), 팔라스 페드로(Falas Pedro), 그리고 공주 나디아 페드로(Nadia Pedro)는 각각 해군, 육군, 병참, 공군 부문에 배속되어 작전에 투입되었으며, 이들의 활약은 ‘왕가의 분전(Royal Resistance)’이라는 표현으로 불리며 대중적 상징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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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 | 114 | 특히 왕족이 직접 총을 들고 전선에 나선 사실은, 전황이 불리한 가운데서도 마베라 국민의 사기를 크게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전국 곳곳에서 자원입대가 증가하고, 국왕에 대한 충성 서약과 시민들의 자발적 구호활동이 이어졌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신이시여 우리 왕을 도우소서”라는 구호가 민병 조직의 표어로 사용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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