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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0 vs r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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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77* 현재: 배임, 횡령등 8개 혐의 재판중
7878== 일생 ==
7979=== 유년기 ===
80리처드 콜턴(Richard Colton)은 1963년 5월 4일, 산업화의 속도를 높이던 루이나의 격랑기 한복판에서 태어났다. 전후 재건을 마무리하던 사회가 규범과 질서를 중시하던 시절, 집안 분위기는 검약했고 교육에 엄격했다. 아버지는 군 복무 경력이 있는 기술직 감독관이었고, 어머니는 회계 보조로 일하며 살림을 꾸렸다. 두 사람 모두 “배운 만큼 책임도 커진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강조했고, 콜턴의 초기 세계관은 그 말 위에 천천히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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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어린 시절의 그는 숫자와 표, 규칙을 유난히 좋아했다. 동네 도서관에서 가장 오래 붙들고 있던 책은 역사나 소설이 아니라 철도 시간표와 산업 통계 요람이었다. 열차가 분 단위로 움직이고, 공장이 조 단위로 원자재를 들이고 내보내는 질서에 매혹됐다. 집 근처 화물역에서 지게차 동선과 선로 전환을 관찰하며 스스로 도식도를 그려 보았고, 주말이면 아버지와 함께 항만에 가서 하역 순서를 기록했다. 나중에 그가 교통·물류 정책에 강한 신념을 보이게 되는 씨앗은 이 무렵 이미 심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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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중학교 무렵, 가족은 더 큰 일자리가 있는 도시로 이주했다. 지역이 달라지면서 학교 문화도 바뀌었지만, 콜턴은 빠르게 적응했다. 새 학교에서 그는 반장 대신 ‘질서위원’으로 활동했는데, 교실 좌석 배치와 청소 구역을 바꾸어 혼잡을 줄이는 작은 실험들을 벌였다. 교사가 “왜 굳이 이렇게까지 하니?”라고 묻자 그는 “규칙이 명확하면 갈등이 줄어듭니다”라고 대답했다. 또래들 사이에서는 고집이 세다는 평을 들었지만, 일단 맡은 역할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성향 덕분에 성적과 생활기록은 늘 안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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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세인트 바룬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그의 관심사는 두 갈래로 뻗었다. 하나는 토론부와 학생회에서의 규정 개정, 다른 하나는 교내 군사훈련 동아리에서의 기초 전술 훈련이었다. 토론부에서는 교칙의 일관성과 평가 기준의 표준화를 주장했고, 군사동아리에서는 지도관에게서 리더십의 ‘절차’가 ‘카리스마’보다 오래 간다는 말을 곱씹었다. 체력 훈련과 사격기초에서 눈에 띄는 성적을 냈고, 동시에 수학과 법사회 과목에서 상위권을 유지했다. 교사가 장래 희망을 묻자 그는 “사관학교에 가서 조직을 배운 뒤, 언젠가는 정책을 다뤄 보고 싶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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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집에서는 여전히 검소한 생활이 이어졌다. 어머니는 가계부를 아들에게 맡기며 지출 항목을 표준화해 보라고 과제를 내주듯 부탁했고, 아버지는 주말마다 “현장에서 배운 단 하나의 원칙은 안전과 표준”이라며 군대 얘기를 곁들였다. 이 대화는 가족의 소소한 일상처럼 들렸지만, 콜턴에게는 조직이 돌아가는 최소 단위—규칙, 점검표, 책임 소재—를 몸에 밸 정도로 익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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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고교 2학년 때 그는 학교 버스 노선이 비효율적이라고 보고, 등하교 정류장 재배치안과 회차 시간표를 직접 설계해 학생회에 제출했다. 교내 설문에서 호응을 얻자 학교는 시범 운영을 승인했고, 지각률이 줄었다는 통계가 나오자 그는 처음으로 ‘작은 제도의 개선이 큰 효과를 낳는다’는 확신을 얻었다. 이 경험은 이후 그가 ‘표준화’와 ‘네트워크 재편’을 정책 키워드로 삼게 되는 정신적 전사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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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세인트 바룬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콜턴의 선택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는 애포르 육군사관학교를 목표로 체력을 끌어올리고, 입시 준비와 면접 대비 계획을 일간·주간 단위로 쪼개어 실행했다. 마지막 학기 생활기록에는 “규율에 강하고 체계적이며, 조직의 안정성을 중시한다”는 담임평이 적혔다. 주변 친구들이 “너무 딱딱한 거 아니냐”고 농담할 때면 그는 웃으며 “딱딱한 뼈대가 있어야 살이 붙는다”고 받아쳤다.
8093=== 청소년기 ===
8194=== 청년기 ===
8295=== 군 생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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