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r6 vs r7
11[[분류:랜드해협]][[분류:유고랜드]][[분류:루이나]][[분류:성폭력 사건]][[분류:1987년 범죄]][[분류:주둔군 범죄]]
22[include(틀:사건사고)]
33
44[[파일:하다드지구 5.30 사건 집회.jpg|width=100%]]
5{{{-2 1987년 7월 11일 하다드지구 중앙로에서 열린 진상규명 요구 집회. 이날 집회는 경찰에 의해 해산되었다.}}}
5{{{-2 1987년 7월 11일 존 하다드 알샤비로에서 열린 진상규명 요구 집회. 이날 집회는 경찰에 의해 해산되었다.}}}
66
77 * '''루이나군 하다드지구 성폭행 사건'''
88 * '''5.30 사건''' · '''하다드 사건''' {{{-2 (유고랜드 내 통칭)}}}
99 * '''로스탐 사건''' {{{-2 (루이나 내 통칭)}}}
1010
1111||<-2><tablealign=right><tablewidth=450><tablebordercolor=#131230><tablebgcolor=#fff,#1c1d1f><bgcolor=#131230><color=#ffc224> '''{{{+1 루이나군 하다드지구 성폭행 사건}}}''' ||
1212||<width=25%><colbgcolor=#131230><colcolor=#ffffff> '''발생 일시''' ||1987년 5월 30일 23시경 ||
13|| '''발생 장소''' ||[[유고랜드]] 나크시에 로스탐부 하다드지구 외곽 ||
13|| '''발생 장소''' ||[[유고랜드]] 나크시에 로스탐부 세테트시 존(zone) 하다드 외곽[* 현 세테트시 함맘-마나스지구] ||
1414|| '''유형''' ||성폭력 범죄, 주둔군 범죄 ||
1515|| '''발생 주체''' ||[[루이나 공군]] 제4전술비행단 소속 병사 3명 ||
1616|| '''범인''' ||올리비에 T. 뒤메닐[br]드니 M. 파주[br]파스칼 J. 르그랑 ||
......
3030[clearfix]
3131
3232== 개요 ==
331987년 5월 30일 [[유고랜드]] 나크시에 로스탐부 하다드지구에서 [[루이나 공군]] 병사 3명이 현지인 여성 1명을 납치해 성폭행한 사건. 유고랜드가 [[루이나-유고랜드 주둔군지위협정|주둔군지위협정]]에 따른 재판권을 포기하고 루이나 군사법원이 심리한 마지막 중대범죄 사건이며, 9년 뒤 [[루이나군 진양통 부부 살인사건]]에서 유고랜드가 재판권 포기 요청을 거부하는 직접적인 배경이 되었다.
331987년 5월 30일 [[유고랜드]] 나크시에 로스탐부 존 하다드에서 [[루이나 공군]] 병사 3명이 현지인 여성 1명을 납치해 성폭행한 사건. 유고랜드가 [[루이나-유고랜드 주둔군지위협정|주둔군지위협정]]에 따른 재판권을 포기하고 루이나 군사법원이 심리한 마지막 중대범죄 사건이며, 9년 뒤 [[루이나군 진양통 부부 살인사건]]에서 유고랜드가 재판권 포기 요청을 거부하는 직접적인 배경이 되었다.
3434
3535유고랜드 독립 이후 처음으로 전국 규모의 항의 시위를 불러온 사건이기도 하다.
3636
......
4242
4343사건 당시 유고랜드 정부는 루이나와 두 건의 현안을 안고 있었다. 하나는 독립 이후 처음 추진하던 대외 차관 협의였고, 다른 하나는 방공망 도입 사업의 조건 협의였다. 두 건 모두 1987년 하반기에 타결 예정이었다. 사건 처리 과정에서 정부가 보인 소극적 태도의 배경으로 이후 가장 많이 지목된 것이 이 두 현안이다.
4444
45=== 모르방 기지와 하다드지구 ===
45=== 모르방 기지와 존 하다드 ===
4646루이나군은 1985년 4월 체결된 상호방위조약과 주둔군지위협정에 따라 같은 해 여름부터 유고랜드에 전개했다. 주둔 2년째이던 1987년 당시 병력은 약 2만 6,000명이었다.
4747
4848모르방 기지는 1985년 개설된 루이나 공군 기지로, 사건 당시 제4전술비행단과 지원부대 약 3,900명이 주둔하고 있었다. 랜드해협 남측 항로와 유고랜드 남부 접근로의 감시가 주 임무였다.
4949
50하다드지구는 나크시에 로스탐부 소속으로, 사막 가장자리의 관개 농업과 소규모 가공업으로 유지되던 인구 6만 8,000여 명의 지구였다. 유고랜드 남부는 아랍어권이며, 하다드지구 주민도 대부분 아랍계였다. 기지는 시가지에서 북쪽으로 6km 떨어져 있었고, 두 곳을 잇는 지방도 주변에 병사 상대 업소 130여 개가 늘어서 있었다.
50존 하다드는 나크시에 로스탐부 세테트시 소속으로, 사막 가장자리의 관개 농업과 소규모 가공업으로 유지되던 인구 6만 8,000여 명의 지구였다. 유고랜드 남부는 아랍어권이며, 존 하다드의 주민도 대부분 아랍계였다. 기지는 시가지에서 북쪽으로 6km 떨어져 있었고, 두 곳을 잇는 지방도 주변에 병사 상대 업소 130여 개가 늘어서 있었다.
5151
52하다드지구는 나자프정 진양지구만큼 기지에 종속된 지역은 아니었다. 이 점이 사건 이후의 전개에 영향을 주었다. 기지촌 상권이 지역 경제를 좌우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민들이 항의에 나서는 데 따르는 부담이 작았고, 사건 직후부터 시위가 지속적으로 조직될 수 있었다.
52존 하다드는 기지에 종속된 지역은 아니었다. 이 점이 사건 이후의 전개에 영향을 주었다. 기지촌 상권이 지역 경제를 좌우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민들이 항의에 나서는 데 따르는 부담이 작았고, 사건 직후부터 시위가 지속적으로 조직될 수 있었다.
5353
5454=== 지위협정 제22조 ===
55551985년 체결된 주둔군지위협정 제22조는 공무집행 중이 아닌 범죄에 대해 유고랜드에 1차 재판권을 부여하되, 루이나의 요청이 있으면 유고랜드가 재판권 포기를 '호의적으로 고려'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또한 제22조 제5항은 피의자의 신병을 재판 확정 시까지 루이나 측이 구금하도록 했다.
......
5959== 사건 ==
60601987년 5월 30일 토요일, 모르방 기지 소속 올리비에 T. 뒤메닐 상병, 드니 M. 파주 상병, 파스칼 J. 르그랑 일병이 외출해 기지 앞 업소에서 술을 마셨다. 세 사람은 이날 기지 앞 대여점에서 승용차 1대를 빌린 상태였다.
6161
6223시경 세 사람은 하다드지구 외곽 지방도에서 귀가하던 여성을 차량에 강제로 태워 인근 관개수로변으로 이동한 뒤 성폭행했다. 피해자는 당시 24세였고, 하다드지구의 직물 가공공장에 근무하고 있었다. 세 사람은 23시 40분경 현장을 떠났으며, 피해자는 인근 민가까지 이동해 도움을 요청했다.
6223시경 세 사람은 존 하다드 외곽 지방도에서 귀가하던 여성을 차량에 강제로 태워 인근 관개수로변으로 이동한 뒤 성폭행했다. 피해자는 당시 24세였고, 존 하다드의 직물 가공공장에 근무하고 있었다. 세 사람은 23시 40분경 현장을 떠났으며, 피해자는 인근 민가까지 이동해 도움을 요청했다.
6363
6464피해자는 5월 31일 새벽 나크시에 로스탐부 의료원에 이송되어 입원 치료를 받았다. 전치 6주의 상해 진단이 내려졌다.
6565
66피해자의 신원은 공개되지 않았다. 유고랜드 언론은 이후 보도에서 가명 '라일라 H.'를 사용했고, 이 표기가 현재까지 관례로 남아 있다.
66피해자의 신원은 공개되지 않았다. 유고랜드 언론은 이후 보도에서 가명 '라흐라'를 사용했고, 이 표기가 현재까지 관례로 남아 있다.
6767
6868== 수사 ==
6969신고를 접수한 나크시에 로스탐부 경찰청은 피해자 진술에서 차량 번호 일부와 군복 표식에 관한 내용을 확보했다. 6월 3일 기지 앞 차량 대여점의 계약서 대조를 통해 세 사람이 특정되었다.
......
9999=== 유고랜드 ===
100100사건은 6월 초 지역 신문 보도로 알려졌다. 6월 18일 재판권 포기가 발표되면서 항의가 전국으로 번졌다.
101101
1027월 11일 하다드지구 중앙로에서 1만 2,000여 명이 참가한 집회가 열렸다. 사전 허가를 받지 않은 집회였고, 경찰은 최루탄을 사용해 해산했다. 이날 연행자는 240여 명이었다. 7월과 8월 사이 나크시에 로스탐부와 시디벨아베스에서 열린 관련 집회는 60여 건, 누적 참가 인원은 7만여 명으로 집계되었다.
1027월 11일 존 하다드 알샤비로에서 1만 2,000여 명이 참가한 집회가 열렸다. 사전 허가를 받지 않은 집회였고, 경찰은 최루탄을 사용해 해산했다. 이날 연행자는 240여 명이었다. 7월과 8월 사이 나크시에 로스탐과 시디벨, 반다르아베스에서 열린 관련 집회는 60여 건, 누적 참가 인원은 17만여 명으로 집계되었다.
103103
104104정부의 대응은 일관되게 통제였다. 7월 15일 내무부가 관련 집회의 사전 허가를 일괄 불허했고, 8월에는 사건을 1면에 실은 지역 신문 2종이 등록 취소 처분을 받았다.
105105
......
110110=== 루이나 ===
111111루이나 국내에서 사건은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사건 발생부터 선고까지 6개월간 전국 일간지의 관련 기사는 모두 11건이었고, 그중 9건이 《라 부아》와 《코망테르》의 것이었다.
112112
113《라 부아》는 1987년 8월 기획 기사에서 유고랜드 주둔 병력의 형사사건 처리 통계를 처음으로 정리해 보도하면서, 협정 발효 이후 2년 동안 루이나가 제기한 재판권 포기 요청이 한 건도 거부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기사는 당시 루이나 국내에서 큰 반향을 얻지 못했으나, 1996년 진양지구 사건 보도에서 반복적으로 인용되었다.
113《라 부아》는 1987년 8월 기획 기사에서 유고랜드 주둔 병력의 형사사건 처리 통계를 처음으로 정리해 보도하면서, 협정 발효 이후 2년 동안 루이나가 제기한 재판권 포기 요청이 한 건도 거부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기사는 당시 루이나 국내에서 큰 반향을 얻지 못했으나, 1996년 진양통 사건 보도에서 반복적으로 인용되었다.
114114
115115당시 여당이던 민주연합은 사건에 대해 공식 논평을 내지 않았다. 국방부는 8월에 '해외 주둔 부대 기강 확립 대책'을 발표했는데, 내용은 외출 시간 단축과 영외 음주 지도에 관한 것이었다.
116116
......
121121파스칼 J. 르그랑은 무죄 판결 뒤 원대 복귀했다가 1988년 만기 전역했다. 유고랜드 측은 1993년과 1997년 두 차례 르그랑에 대한 재수사를 요청했으나 모두 거부되었다.[* 유고랜드 측은 르그랑이 유고랜드 법원에서 재판을 받은 적이 없으므로 일사부재리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으나, 루이나는 지위협정 제22조 제8항의 이중처벌 금지 조항을 들어 거부했다.]
122122
123123=== 피해자 ===
124피해자는 1987년 9월 공장을 퇴직했다. 1988년 하다드지구를 떠났고, 1990년 이후로는 유고랜드에 거주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24피해자는 1987년 9월 공장을 퇴직했다. 1988년 존 하다드를 떠났고, 1990년 이후로는 유고랜드에 거주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25125
126126루이나 측이 지급한 배상금은 없다. 지위협정 제23조는 공무집행 중이 아닌 행위로 인한 손해에 대해 루이나가 위로금을 '지급할 수 있다'고만 규정했고, 이 사건에서 루이나는 지급하지 않았다. 유고랜드 정부가 1988년 국내 예산으로 지급한 지원금은 4,200달러였다.
127127
......
137137=== 유고랜드 측 태도의 변화 ===
138138사건 이후 유고랜드의 실무 관행은 바뀌었다. 1988년부터 1995년까지 유고랜드는 살인 사건 3건과 성폭력 사건 11건에서 재판권 포기 요청을 거부했다. 협정 발효 후 첫 2년간 거부 사례가 한 건도 없었던 것과 대비된다.
139139
1401996년 진양지구 사건에서 유고랜드 법무부가 포기 요청을 거부하며 낸 발표문에는 "1987년의 선례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문장이 들어갔다. 정부 문서가 이 사건을 직접 언급한 첫 사례였다.
1401996년 진양통 사건에서 유고랜드 법무부가 포기 요청을 거부하며 낸 발표문에는 "1987년의 선례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문장이 들어갔다. 정부 문서가 이 사건을 직접 언급한 첫 사례였다.
141141
142142=== 재조명 ===
1431431992년 민의원 선거에서 야당이 의석을 크게 늘리면서 사건이 다시 다루어지기 시작했다. 1993년 10월 19일 민의원 주둔군범죄특별조사위원회가 1차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는 재판권 포기 결정 과정의 문서가 남아 있지 않다는 점, 증거물 처리 경위를 확인할 수 없다는 점, 판결문 전문을 입수하지 못했다는 점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