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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55 vs r56
......
5353
5454《왜 도덕인가?》(2009.09.30) – 도덕적 판단의 기원과 타자성에 대한 철학적 성찰.
5555{{{#!folding [ 책제목 서문 펼치기 · 접기 ]
56우리는 매일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어떤 날은 자리에 쓰러져 있는 노인을 지나치고, 어떤 날은 그에게 손을 내민다. 어떤 날은 부당한 명령에 복종하고, 어떤 날은 침묵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모든 선택의 끝에서,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착한 사람인가?” 혹은 “이건 옳은 일이었을까?”
57
58그 질문을 우리는 너무도 쉽게 넘긴다. 언젠가부터 ‘옳음’이란 정해진 문장처럼 여겨지게 되었고, ‘선’은 교과서와 교회의 강론과, 부모의 훈계 속에서 주입된 말로만 존재하게 되었다. 도덕은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단어지만, 어쩌면 그만큼 가장 의심하지 않는 단어이기도 하다.
59
60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내가 그 의심을 처음 마주했던 어느 오후의 질문 때문이었다.
61“나는 정말로, 도덕적인 인간인가?”
62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믿는 도덕은 정말 도덕적인가?”였다.
63
64도덕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자연스러운 본능인가, 아니면 사회가 우리에게 심어준 규칙인가. 그리고 그 규칙은 언제, 누구에 의해, 어떤 권력의 의도 속에서 만들어졌는가.
65
66히틀러는 유대인을 학살하며 ‘정화를 위한 불가피한 희생’이라 주장했다. 아이히만은 자신을 “법과 질서에 충실한 시민”이라 여겼고, 재판에서 그는 “양심의 가책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그에게는 자신이 ‘악’이라는 자각조차 없었다. 그는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성실한 사무관이었으며, 시계를 차고 퇴근길에 장을 보던 평범한 시민이었다.
67
68이처럼 ‘도덕’은 그것을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얼굴을 바꾼다. 선한 마음으로 폭력을 휘두를 수 있고, 순수한 신념으로 학살을 저지를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선량한 사람들’ 속에도 광기의 가능성은 잔잔한 호수처럼 잠들어 있다. 도덕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과 구조의 문제이기도 하다.
69
70그리고 내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바로 그 지점이다.
71‘왜 도덕인가?’라는 질문은 단지 철학 개념의 탐색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삶의 거의 모든 판단과 행동을 관통하는 기준이 어디서 왔는지를 묻는 일이다. 그리고 그 기준은 흔히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조용히 억압한다.
72
73“그 비도덕적야.
74“그건 예의가 없어.”
75렇게 사람들이 뭐라 그래?”
76
77 말들 속 숨겨진 수많은 억압조. 지키고자 하는 세계는 누구의 세계인가. 내가 순응하있는 도덕은 정말로 ‘인간적’인, 아니 나를 하고 규율하기 위한구인가.
78
79나는 이 책에서,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의 허구성, 그리고 도덕이라는 이름 아래 발생 폭력과 침묵을 이기하려 한다. 그것이 단지 나쁜 사람들의 문제 아니라, 평범한 ‘우리들’의 문제임을 하고 다. 우리는 도덕을 너무 쉽게 믿는다. 우리는 옳다고 믿는 것이 진짜 옳은지 묻지 않는다.
80
81나는 도덕이라는 말을 신중하게 다뤄야 고 믿는다. 우리가 도덕을 말하는 순간, 누군가는 기준에 벗어난 존재로 낙인찍히며 소외되고, 침묵하고, 사라진다. 특히 집단 도덕 시작하면, 도덕은 점점 더 누군가를 향한 폭력이 되 다.
82
83도덕은 폭력결탁할 있다. 수많은 전쟁은정의의 전쟁’이라 불렸고, 수많은 처형은 ‘질서와 덕의 회복’이라 불렸다. 정의’라는 름이 붙은 폭력은 더욱 강력하다. 사람들은 상대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도덕은 칼이 되고, 신념은 방패가 다.
84
85어쩌면 전쟁사에서 창과 칼, 화약, 핵무기, 극초음속 미사일보다도 더 강력한 무기는 ‘악이라는 개념’일지도 모른다.
86왜냐하면, ‘저들악이야’라인식 자리 순간, 우리는 죄책감 없이, 정교하 효율적으로 폭력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자기 위안의 최후 문장을 읊조린다.
87“나는 옳은 일을 했을 뿐이다.”
88
89나는 독자 여러분이 이 책을 읽으며, 적어도 한 번쯤은 그 익숙한 문장에 균열을 내보았으면 한다. “왜 나는 이것이 옳다고 믿는가?”라는 질문을 품어보았으면 한다. 그것은 어쩌면 불편한 질문일 수 있다.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고, 오래된 신념의 지반을 흔들 수 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을 견디는 것이야말로, 내가 말하는 ‘도덕’의 시작이다.
90
91이 책은 정답을 말하지 않는다. 나는 교사가 아니고, 설교자도 아니다. 나는 독자들과 함께, 우리가 오래 믿어왔던 ‘도덕’이라는 개념을 낯설게 들여다보는 공동의 탐구자일 뿐이다. 이 책이 어떤 철학적 진리를 선언하기보다, 하나의 질문으로 남기를 바란다.
92
93그리고, 당신이 질문 앞에서 망설이고, 고민하고, 고개를 들고 세상을 다 보기를 바란다.
94
95이 원고는 이제 나의 손을 떠났다. 그리고 이 책은 독자 여러분의 것이다.
96여기 적혀 있는 몇 줄의 짧은 서문에 구애받 마시길.
97여러분 스스로 온전히 읽고, 질문고, 배우고, 나아가독서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56>우리는 매일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어떤 날은 자리에 쓰러져 있는 노인을 지나치고, 어떤 날은 그에게 손을 내민다. 어떤 날은 부당한 명령에 복종하고, 어떤 날은 침묵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모든 선택의 끝에서,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착한 사람인가?” 혹은 “이건 옳은 일이었을까?”
57>
58>그 질문을 우리는 너무도 쉽게 넘긴다. 언젠가부터 ‘옳음’이란 정해진 문장처럼 여겨지게 되었고, ‘선’은 교과서와 교회의 강론과, 부모의 훈계 속에서 주입된 말로만 존재하게 되었다. 도덕은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단어지만, 어쩌면 그만큼 가장 의심하지 않는 단어이기도 하다.
59>
60>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내가 그 의심을 처음 마주했던 어느 오후의 질문 때문이었다.
61>“나는 정말로, 도덕적인 인간인가?”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믿는 도덕은 정말 도덕적인가?”였다.
62>
63>도덕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자연스러운 본능인가, 아니면 사회가 우리에게 심어준 규칙인가. 그리고 그 규칙은 언제, 누구에 의해, 어떤 권력의 의도 속에서 만들어졌는가.
64>
65>히틀러는 유대인을 학살하며 ‘정화를 위한 불가피한 희생’이라 주장했다. 아이히만은 자신을 “법과 질서에 충실한 시민”이라 여겼고, 재판에서 그는 “양심의 가책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그에게는 자신이 ‘악’이라는 자각조차 없었다. 그는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성실한 사무관이었으며, 시계를 차고 퇴근길에 장을 보던 평범한 시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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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이처럼 ‘도덕’은 그것을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얼굴을 바꾼다. 선한 마음으로 폭력을 휘두를 수 있고, 순수한 신념으로 학살을 저지를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선량한 사람들’ 속에도 광기의 가능성은 잔잔한 호수처럼 잠들어 있다. 도덕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과 구조의 문제이기도 하다.
68>
69>그리고 내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바로 그 지점이다. ‘왜 도덕인가?’라는 질문은 단지 철학적 개념의 탐색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삶의 거의 모든 판단과 행동을 관통하는 기준이 어디서 왔는지를 묻는 일이다. 그리고 그 기준은 흔히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조용히 억압한다.
70>
71>“그건 도덕.
72>“그건 예의가 없어.”
73>“그렇게 하면 사람들 뭐라 그래?
74>
75>이런 말들 속에 숨겨진 수많은 억압의 구조. 말이 지키고자 는 세계는 누구의 세계인가. 내가 순응하고 있는 도덕은 정말로 ‘인간적’인가, 아니나를 관리하고 규율하기 위한 도구인가.
76>
77>나는 서,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성,리고 도덕라는 이름 아래 발생하는 폭력과 침묵을 이야기하려 한다. 그리그것이 단지 나쁜 사람들의 문제 아니라, 평범한 ‘우들’의 문제임을 말하고 싶다. 우리는덕을 너무 쉽게 믿는다. 우리는 옳다고 믿는 것이 진짜 옳은지 묻지 않는다.
78>
79>나는 도덕이라는 말을 신중 다뤄 한다고 믿는다. 도덕을 말하는 순간, 누군 기준에서 벗어난 존재로 낙인찍히며 소외되고, 침묵하고, 사라진다. 특히 집단이 도덕을 말하기 시작하면, 도덕은 점점 누군가를 향한 폭력이 되기 다.
80>
81>도덕 폭력과 결탁할 . 역사 수많은 전쟁은 ‘정의의 전쟁’이라 불렸고, 수많은 처형은 ‘질 도덕의 회복’이라 불렸다. ‘정의’라는 이름이 붙은 폭력은 더욱 강력하다. 사람들은 규정된 상대에게 폭력 것을 꺼리지 않는다. 도덕은 이 되고, 신념은 방패가 된다.
82>
83>어쩌면 전쟁사에서 창칼, 화약, 핵무기, 극초음속 미일보다도 강력한 무기는이라 개념’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저들은 악이야’라는 인식 자리 잡는 순간, 우리는 죄책감 , 교하고 효율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자기 위안의 최후 문장을 읊조린다.
84>“나는 옳은 일을 했을 뿐이다.”
85>
86>나는 독자 여러분이 이 책을 읽으며, 적어도 한 번쯤그 익숙한 문장에 균열을 내보았으면 한다. “왜 나것이 옳다고 믿가?”라는 질문을 품어보았으면 한다. 그것은 어쩌면 불편한 질문일 수 있다.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 오래된 신념의 지반흔들 수 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을 견디것이야말로, 내가 말하는 ‘도덕’의 시작이다.
87>
88>이 책은 정답을 말하지 않는다. 나는 교사가 아니고, 설교자도 아니다. 나는 독자들과 함께, 우리가 오래 믿어왔던 ‘도덕’이라는 개념을 낯설게 들여다보는 공동의 탐구자일 뿐이다. 이 책이 어떤 철학적 진리를 선언하기보다, 하나의 질문으로 남기를 바란다.
89>
90>그리고, 당신이 그 질문 앞에서 망설이고, 고민하고, 고개를 들고 세상을 다시 보기를 바란다.
91>
92>이 원고는 이제 나의 손을 떠났다. 그리고 이 책은 독자 여러분의 것이다.
93>여기 적혀 있는 줄의 짧은 서문에 구애받지 .
94>여러분 스스로 온전히 읽고, 질문하고, 배우고, 나아가는 독서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95>----
96>루스탈 그래이
97>2009년 , 사랑족이 있는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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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99《공정하다는 착각》(2010.01.03) – ‘공정’이라는 단어가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수사로 기능한다는 비판.
100100{{{#!folding [ 공정하다는 착각 서문 펼치기 · 접기 ]
101나는 그날도 또 한 번 시험에서 1등을 했다.
102교실 뒤 게판에 붙은 성적표는 낡은 타카핀에 간신히 매달려 있었고, 아이들 틈을 피해 나가려 했지만 누군가가 소리쳤다.
103“역시 루스탈지아야. 또 1등이네.”
104
105그 순간 나는 얼굴이 붉어지지도 않았고, 기쁘지도 않았다.
106그냥 ‘또 그렇 .
107나는 시험을 못 보면 창피해했고, 잘 보면 당연하게 여겼다.
108그게 오래도록 내 마음을 조용히 병들게 만들었다는 걸, 그땐 아직 몰랐다.
109
110내 친구 마리나는 반에서 중간보다 조금 아래였다.
111111성격이 밝고 말이 많고, 시험 전날에도 나에게 계속 농담을 던지던 아이였다.
112112시험지를 받고 나면 그녀는 나보다 훨씬 긴 시간을 들여 꼼꼼히 문제를 읽었다.
113113채점이 끝난 후, 그녀는 내게 말했다.
114114“나는 진짜 노력했는데도 74점이야. 너는 졸다가도 1등이고.”
115115그러곤 웃었다.
116116그 웃음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117117그건 ‘너 잘났다’는 웃음이 아니라, ‘나는 도대체 왜일까’라는 웃음이었기 때문이다.
118118
119119나는 그 말을 한동안 잊지 못했다.
120120그녀가 노력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게을렀던 것도 아니다.
121121하지만 결과는 늘 나와 달랐다.
122122그건 정말, 단순히 노력의 차이일까?
123123
124124나는 부모님께 잘 자라는 아이였고, 공부에 필요한 것은 항상 갖춰져 있었다.
125125식탁 위에는 조용한 식사 시간이 있었고, 책장은 책으로 가득 차 있었고, 아버지는 늘 정시에 퇴근했다.
126126새벽 3시에 잔다고 해도, 아침이면 상쾌하게 일어날 수 있었다.
127127마리나는 달랐다.
128128혼자 남동생을 돌봐야 했고, 시험 기간에도 밥을 차려야 했다.
129129그녀의 집에는 책상보다 작은 식탁이 먼저 있었고, 시험 전날에도 거실엔 TV가 켜져 있었다.
130130
131131우리는 같은 시험지를 받았고, 같은 시간에 시작했고, 같은 답안지를 냈다.
132132하지만 우리는 같지 않았다.
133133
134134사람들은 말했다.
135135“노력하면 누구든지 할 수 있어.”
136136“할 수 없었다면, 그건 너의 노력 부족일 뿐이야.”
137137
138138하지만 정말 그럴까?
139139우리가 ‘노력’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그 안에는 너무 많은 걸 감추고 있는 건 아닐까?
140140나는 노력이라는 단어가 공정의 척도로 쓰이는 현실이 두려워졌다.
141141그 말은, 실패한 사람의 존재를 지우기 위한 도구가 되곤 했다.
142142
143143우리는 성적표만으로, 결과만으로, 이 아이는 성실하고 저 아이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144144하지만 누구도 그 결과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
145145그 과정 속에는 잠들기 어려운 밤, 집중할 수 없는 낮, 이해받지 못한 눈빛, 배고픔, 불안, 소음, 외로움, 혹은 아무 이유도 없는 슬픔이 있었다.
146146
147147나는 항상 전교 1등이었다.
148148하지만 그 1등이라는 숫자가 정말 나를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인지,
149149누군가의 꼴찌라는 숫자가 그 사람의 전부인지,
150150그 모든 판단이 과연 ‘공정한가’라고 질문할 용기를 내보려 한다.
151151
152152우리는 모두 각자의 배경, 언어, 경험, 두려움, 기대와 함께 살아간다.
153153그것이 다르다는 사실을 외면한 채, 결과만을 들이밀며 “공정하다”고 말하는 것은,
154154사실은 아주 불공정한 일일지도 모른다.
155155
156156이 책은 내가 마리나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건네는 사적인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157157“왜 우린 다른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을까?”
158158“그게 정말 네 탓이야?”
159159“정말, 그게 공정한 거야?”
160160
161161어쩌면 나는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도 던져야 했는지 모른다.
162162왜 나는 스스로를 그렇게 쉽게 받아들였을까?
163163왜 나는 누군가의 낙오를, 아무렇지 않게 지나쳐왔을까?
164164
165165나는 지금, 늦게나마 그 물음 앞에 서 있다.
166166
167167이 원고는 이제 나의 손을 떠났다.
168168이제는 당신의 것이다.
169169여기에 적힌 몇 줄의 서문에 구애받지 마시길.
170170당신만의 질문으로, 당신만의 속도로 이 책을 읽어주시길.
171171읽고, 흔들리고, 생각하고, 때로는 반박해주시길.
172172그것이 나의 글이 진심으로 살아 있는 방식이라 믿는다.
173173----
174174루스탈지아 그래이
1751752009년 겨울, 벨포르 시립제3고등학교 도서관 구석 자리에서
101>나는 그날도 또 한 번 시험에서 1등을 했다. 교실 뒤 게시판에 붙은 성적표는 낡은 타카핀에 간신히 매달려 있었고, 아이들 틈을 피해 지나가려 했지만 누군가가 소리쳤다.
102>“역 루스탈아야. 1등이네.”
103>
104>그 순간 나는 얼굴이 붉어지지도 않았고, 기쁘지도 않았다. 그냥 ‘또 그렇구나’ 하고 지나갔다. 나는 시험을 못 보면 창피해했고, 잘 보면 당연하게 여겼다. 그게 오래도록 내 마음을 조용히 병들게 만들었다는 걸, 그땐 아직 몰랐다.
105>
106>내 마리 반에서 중간보다 조금 아래였다. 성격이 밝말이 많고, 시험 전날에도 나에게 계속 농담을 던던 아이였다. 시험지를 받고 면 그녀는 나보 훨씬 긴 시간을 들여 꼼꼼히 문제를 읽었다. 채점이 끝난 후, 그녀는 내게 말했다. “나는 진짜 노력했는데도 74점이야. 너는 졸다가도 1등이고.” 그러곤 웃었다. 그 웃음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그건 ‘너 잘났다’는 웃음이 아니라, ‘나는 도대체 왜일까’라는 웃음이었기 때문이다.
107>
108>나는 그 말을 한동안 잊지 못했다. 그녀가 노력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게을렀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결과는 늘 나와 달랐다. 그건 정말, 단순히 노력의 차이일까?
109>
110>나는 부모님께 잘 자라는 아이였고, 공부에 필요한 것은 항상 갖춰져 있었다. 식탁 위에는 조용한 식사 시간이 있었고, 책장은 책으로 가득 차 있었고, 아버지는 늘 정시에 퇴근했다. 새벽 3시에 잔다고 해도, 아침이면 상쾌하게 일어날 수 있었다. 마리나는 달랐다. 혼자 남동생을 돌봐야 했고, 시험 기간에도 밥을 차려야 했다. 그녀의 집에는 책상보다 작은 식탁이 먼저 있었고, 시험 전날에도 거실엔 TV가 켜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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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136《어떻게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2011.06.15) – 엘리트주의 비판과 대의제 구조의 권력 집중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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