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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 19 | == 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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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 20 | 루이나의 11대 대통령이자, 첫 여성 대통령이자, 최연소 대통령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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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 21 | == 생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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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 | 1992년 루이나 롱비치 시에서 출생해 시립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롱비치 시에서 거주하다, 루이나 수도 벨포르 시티로 집을 옮겼고, 그곳에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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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 | 루스탈지아 그래이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주변과 확연히 구별되는 분위기를 지닌 학생이었다. 그녀의 외모는 당시에도 또래 사이에서 흔치 않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은은하게 빛나는 은빛 머리카락은 빗질이 덜 된 듯 흐트러져 있었지만, 그 자체로 자연스러운 곡선을 이루었고, 옅은 보라색 눈동자는 무언가를 오래도록 생각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깊이를 지니고 있었다. 피부는 유난히 창백한 편이었으나, 긴장하거나 부끄러울 때마다 올라오는 미세한 홍조가 오히려 따뜻한 인상을 주었고, 이목구비는 전체적으로 부드럽지만 중심이 단단한 인상을 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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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 | 이렇듯 단번에 눈에 띄는 외모와는 달리, 그녀의 성격과 학창 시절 생활은 훨씬 더 복잡하고 모순적인 층위를 이루고 있었다. 루스탈지아는 공부를 매우 잘하는 학생이었지만, 성실한 학생은 아니었다. 교과서는 사물함에러 썩어간지 오래였고, 개념을 한 번 듣고 곧바로 응용하는 능력이 탁월했으나, 수업 시간에 자주 졸거나, 과제를 마감일에 임박해서 제출하는 일이 잦았다. 반 친구들이 “어떻게 저런 상태로 매번 전교권이냐”며 반쯤 감탄, 반쯤 질투를 섞어 말하던 모습은 루이나 교단기록자료에도 여럿 남아 있다[* 나보레 고등학교 졸업생 회고록, 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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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 | 특히 인상 깊은 점은, 그녀가 시험 전날 단 한 장의 요약 노트를 만들고, 그것을 머릿속에 사진처럼 새겨두었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천재’라고 불렀고, 누군가는 ‘게으른 자의 영리한 방식’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루스탈지아는 그런 평가들에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그저,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만 몰입했고, 나머지에는 거의 무관심했다. 심지어 과학 시간에 발표를 맡아야 했을 때, 실험은 건너뛰고 이론의 오류를 지적하는 방식으로 과제를 대신한 적도 있었는데[* 나보레 고등학교 2학년 과학교사 증언, 벨포르 지역 교육청 보고서], 이 일로 담당 교사에게 혼이 났지만, 교장실에서는 ‘참신한 문제의식’이라며 칭찬받았다는 일화가 남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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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 33 | 친구 관계는 좁고 조용한 편이었다. 그녀는 여러 무리 속을 넘나들며 활발하게 어울리는 타입이 아니었고, 점심시간이 되면 혼자 도서관 구석에 앉아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펴고 글을 쓰곤 했다. 친구들 중 몇 명은 “루스탈지아는 사람이 싫은 게 아니라, 군중의 리듬에 맞추는 걸 싫어하는 것 같다”고 회고했다[* 동급생 인터뷰, 『벨포르 청춘잡지』 2023년 9월호]. 반면 그녀와 가까웠던 소수의 친구들은 “정말 신뢰하는 사람에게는 말이 많고, 농담도 잘하는 아이였다”며, 대중의 이미지와 실제의 괴리를 지적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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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 35 | 동아리 활동이나 자율 봉사 같은 학교 생활 참여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학생회는 물론, 체육대회에도 최소한의 참가만 했으며, 학교 행사 사진첩에도 그녀는 자주 빠져 있었다. 그에 대해 한 교사는 “자신의 에너지를 어설픈 사회화에 소모하고 싶지 않아하는 아이였다. 그 대신 확실히, 자기 안의 질서와 논리에 충실했다”고 평가했다[* 2025년 루이나 교육사연구회 구술기록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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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 37 | 루스탈지아는 훗날 대통령이 된 이후, 당시의 학창 시절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학교는 늘 정답을 요구했고, 나는 늘 다음 질문이 궁금했다. 그러니까 나는 학교가 아니라, 세상을 더 배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루이나 중앙방송 인터뷰, 2023년 10월 23일]. 이 말은 한동안 루이나 청소년들 사이에서 회자되며, 학생 포스터나 명언 카드에 실리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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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 39 | 재임 중 그녀가 SNS에 공개한 고등학교 시절 사진 한 장은 특히나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구겨진 교복 상의, 세일러 리본이 흐트러진 채 매어져 있고, 발에는 신발도 신지 않은 모습. 사진 속 그녀는 피곤한 눈으로 카메라를 바라보며, 마치 “이제 그만 찍어도 돼?”라고 묻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팬들은 이 사진을 두고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대통령의 기원”이라는 밈을 만들었고, 많은 일러스트와 2차 창작물이 이 한 장면을 토대로 탄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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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 41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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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 | 42 | ||<-2><bgcolor=#808080><tablebordercolor=#000000><tablealign=center><tablewidth=600> 11대 루이나 대통령 [[루스탈지아|루스탈지아 그래이]]의 학창시절 사진[* 트위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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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 43 | ||<-2> [[파일:루스탈지아학생카외이.png|width=1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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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 45 | 하지만 정작 본인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 시절 사진은 그냥 한 시기의 나일 뿐이다. 다만, 그때도 지금처럼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교복을 입은 몸에 너무 많은 질문이 있었던 것 같다”[* 루스탈지아 X(구 트위터) 게시물, 2023년 3월 12일]. 이후, 루이나 국립대학교 에 조기진학하고 법과대학을 수석 졸업,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바로 군대에 입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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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 | 47 | 육군 제39보병사단 신병훈련소에서 신병 교육을 받은 뒤 특전병으로 차출되어 특전사 제1공수특전여단 제3특전대대 대대본부 작전과 교육병으로 복무했다. 항간에서는 루스탈지아가 대대본부 작전과에서 행정병으로 복무한 거니까 꿀을 빤 거 아니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육군특수전사령부에선 장교, 부사관뿐만 아니라 특전병들 중 특전대대에 배치된 일부 인원은 여러 훈련들을 모두 똑같이 받았고, 특히 특전여단들을 계속 새로 창설하면서 전체 특전사 인원의 대폭 증가가 이루어졌던 2000년대 중반경부터는 특전병이 전투 인원으로 편제되던 시절도 있었다. 루스탈지아도 팀 소속은 아니었지만, 대대 본부에 근무하며 기본적인 훈련을 받았다. 특전사에서 주특기가 폭파였고, 심지어 수중 침투 훈련인 스쿠버 훈련까지 자원해서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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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 | 49 | 제101공수특전여단에서 고급 인명 구조 교육 수료, 대대 스쿠버 교육 이수, 자대 작전과 행정병 근무 시 68회의 강하 훈련 등의 훈련 경력을 가지고 있다. 함께 복무한 후임의 이야기에 따르면 강하 훈련을 배정하는 업무를 수행하면서 '먼저 뛰고 넣어야' 불만을 적게 들어서 강하 횟수가 많을 수밖에 없었으며, 강하를 즐겼던 루스탈지아는 동료 행정병들 대신 뛰어주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 횟수는 월계 공수휘장에 해당할 정도인데, 이는 복무 기간이 짧은 현재의 특전병들 사이에서는 매우 드문 기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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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 | 51 | 루이나 대통령중 현역 군인으로 군사작전에 참여한 몇 안되는 대통령중 한명이다. 그녀의 첫 실전은, 2014년 소말리아 내전 개입 당시의 루이나 특수작전이었다. 당시 루이나는 해상 치안 회복과 인도주의 통로 확보를 명분으로 다국적 연합작전에 참가했으나, 실제 목적은 북부 바리 지역에 은닉된 비정부 무장조직의 전략시설 제거에 있었다[* 루이나 국방부 대외비 작전보고서 14-SSOM-BR-12호 현재 공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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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 53 | 루스탈지아는 이 작전 중 ‘블랙스완 3차 파생안’이라 명명된 극비 후방 침투 팀에 배속되었고, 이등병 신분으로 전방 감시 및 폭파 보조 임무를 수행했다. 작전은 새벽 3시경, 해상에서 투입된 공수부대가 해안선 인근으로 침투해, 세인트가브리엘 통신소 및 C형 연료저장기지를 기습 폭파하는 임무였다. 루스탈지아는 현지 지형도도 제대로 없는 상황에서 무전수의 명령 없이 지휘계통에 혼선이 생긴 상황 속에서, 기폭장치 케이블을 손으로 연결하고 기지 내로 잠입해 폭파 절차를 수동으로 완료했다는 보고가 남아 있다[* 작전 종료 후 작성된 작전조서 중 개인행동 보고서, 국방기록원 제C-1447/5 현재 공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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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 | 55 | 이 작전은 정식 훈장을 수여받을 수 있는 규모의 임무였지만, 루스탈지아는 당시 이등병으로서 표창 대상이 아니었고, 정식 언론 발표 없이 비공식 내부 감사장만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군정보국 감사 통보문서, 2014년 9월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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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 | 57 | 후일 그녀는 이 경험을 두고, 한 차례만 짧게 언급한 적이 있다. “내가 세상에 대해 갖고 있던 정의감은 그날 깨졌다. 전선에 정의는 없고, 책임만 있었다. 내가 그걸 알게 된 건, 그날 밤이었다”[* 루이나 대통령실 구술채록, 제34회 안보교육 세미나 연설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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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 | 59 | 당시 루스탈지아와 같은 부대에서 교육장교로 있었던 예비역 대령의 회고에 따르면, 루스탈지아가 이등병이었던 시절 폭파 과정 훈련에서 최우수자로 선정됐는데, 특전사는 장교, 부사관 등 직업 군인 위주로 돌아가기 때문에 당연히 이들이 성적 우수자로 선발되는 게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일반 사병이, 그것도 가장 낮은 계급의 이등병이 성적 최우수자로 상을 받는 일은 전례가 없었던 일이라고 한다. 이렇게 군 생활을 모범적으로 잘했기 때문에, 전역할 때 간부들이 "군대에 말뚝을 박으라"면서 강하게 권유했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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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 | 61 | 이러한 특전사 복무 경력과 일부 정치인들의 병역 비리 의혹이 대비되면서, 군 복무가 아킬레스건이 아니라 되려 메리트로 작용하는 몇 안 되는 정치인이 되었다. 특히 2023년 10월 일부 보수 세력들은 루스탈지아 대통령을 향해 색깔론 공세를 펼쳤는데, 루스탈지아는 이를 두고 "군대도 안 갔다 온 사람들이 걸핏하면 공산주의자 타령이냐?"라면서 국가 안보를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보수 진영에서는 정작 군 복무를 면제받은 사람들이 제법 많다는 사실을 꼬집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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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 === 유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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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 루스탈지아 그래이는 1992년 10월 23일, 루이나 남부 해안에 자리한 항만 도시 롱비치 시에서 태어났다. 항구 특유의 조용한 바닷바람과, 오래된 석조 건물들이 즐비한 도시 한가운데 자리한 롱비치 시립병원에서 태어난 그녀는, 비교적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둘째 딸로 성장했다. 아버지는 롱비치 도심 개발공사의 토목 기술자였고, 어머니는 지역 보건소의 행정직 공무원으로 일했다. 두 사람 모두 정치나 이념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지만, 가정 안에서는 늘 시사 문제에 대한 토론과 책 읽기가 장려되는 분위기였다[* 2023년 루스탈지아 어머니의 회고 인터뷰, 『벨포르 인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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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 어릴 적 루스탈지아는 조용하면서도 관찰력이 매우 뛰어난 아이였다. 또래 아이들이 뛰어노는 놀이터에서도 그녀는 혼자 모래를 만지며 가상의 국가를 구상하거나, 벤치에 앉아 그림책을 끝까지 읽고 앉아 있는 일이 많았다. 다섯 살 때는 가족과 함께 방문한 해양 박물관에서 돌아오는 길에 “고래는 왜 포유류인데 바다에 사는 거야?”라는 질문을 던졌고, 그 말을 들은 부모는 그녀에게 처음으로 백과사전을 사주었다고 한다. 이후로도 루스탈지아는 한 번 관심을 가지면 끝까지 파고드는 성향을 보였으며, 그 과정에서 도서관 사서와 친해져 도서관에 출입증도 없이 자유롭게 드나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롱비치 시립 제1도서관 사서 인터뷰, 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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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 롱비치 시립초등학교 시절, 루스탈지아는 또래보다 두세 배 빠른 속도로 읽고 쓰는 능력을 익혔다. 2학년 때 이미 6학년 수준의 독해력을 갖췄고, 교과서를 넘어 고전문학과 역사책에 흥미를 보였다. 수학이나 과학처럼 정해진 답을 요구하는 과목에는 흥미를 보이지 않았지만, 논술과 토론, 작문 시간에는 누구보다 강하게 자신의 의견을 펼쳤다. 하지만 성격 자체는 조용한 편이었기 때문에, 외향적인 아이들 틈에 섞이는 일은 드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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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 초등학교 4학년 무렵, 반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 있던 만화영화 이야기에 끼지 못해 조용히 뒷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그녀는, 담임교사에게 “친구들이랑 어울리는 건 좋아하지 않니?”라는 질문을 받았고, 이에 루스탈지아는 “그 아이들이 하는 얘기보다 이 책이 더 흥미롭다”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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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 그녀는 또한 초등학교 시절 학생자치회 회장을 맡기도 했으나, 그것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선출된 것이 아니라, 친구들이 “루스탈지아가 가장 똑똑하니까 그냥 해보라”고 몰아준 결과였다. 루스탈지아는 내심 불편해했지만, 맡은 일은 성실히 해냈고, 그 경험은 훗날 정치인이 된 후 “가장 처음 경험한 대표성의 무게”로 종종 언급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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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 63 | 친구 관계는 좁고 조용한 편이었다. 그녀는 여러 무리 속을 넘나들며 활발하게 어울리는 타입이 아니었고, 점심시간이 되면 혼자 도서관 구석에 앉아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펴고 글을 쓰곤 했다. 친구들 중 몇 명은 “루스탈지아는 사람이 싫은 게 아니라, 군중의 리듬에 맞추는 걸 싫어하는 것 같다”고 회고했다[* 동급생 인터뷰, 『벨포르 청춘잡지』 2023년 9월호]. 반면 그녀와 가까웠던 소수의 친구들은 “정말 신뢰하는 사람에게는 말이 많고, 농담도 잘하는 아이였다”며, 대중의 이미지와 실제의 괴리를 지적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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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 | 72 | ||<-2><bgcolor=#808080><tablebordercolor=#000000><tablealign=center><tablewidth=600> 11대 루이나 대통령 [[루스탈지아|루스탈지아 그래이]]의 학창시절 사진[* 트위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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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 | 하지만 정작 본인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 시절 사진은 그냥 한 시기의 나일 뿐이다. 다만, 그때도 지금처럼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교복을 입은 몸에 너무 많은 질문이 있었던 것 같다”[* 루스탈지아 X(구 트위터) 게시물, 2023년 3월 12일]. 이후, 루이나 국립대학교 에 조기진학하고 법과대학을 수석 졸업,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바로 군대에 입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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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 | | 육군 제39보병사단 신병훈련소에서 신병 교육을 받은 뒤 특전병으로 차출되어 특전사 제1공수특전여단 제3특전대대 대대본부 작전과 교육병으로 복무했다. 항간에서는 루스탈지아가 대대본부 작전과에서 행정병으로 복무한 거니까 꿀을 빤 거 아니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육군특수전사령부에선 장교, 부사관뿐만 아니라 특전병들 중 특전대대에 배치된 일부 인원은 여러 훈련들을 모두 똑같이 받았고, 특히 특전여단들을 계속 새로 창설하면서 전체 특전사 인원의 대폭 증가가 이루어졌던 2000년대 중반경부터는 특전병이 전투 인원으로 편제되던 시절도 있었다. 루스탈지아도 팀 소속은 아니었지만, 대대 본부에 근무하며 기본적인 훈련을 받았다. 특전사에서 주특기가 폭파였고, 심지어 수중 침투 훈련인 스쿠버 훈련까지 자원해서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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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 | 93 | 2014년 4월 웨스트로 경기장 폭발 사고가 발생하고 이틀 후 경기장을 찾았으며, 7월부터는 광장에서 단식투쟁을 하고 있던 유가족을 응원하기 위해 함께 단식투쟁을 벌인다. 이 시기 잠을 자지 못해 다크서클이 짙어진 채로 천막에 앉아 있는 루스탈지아의 모습은 지금도 회자된다. 이에 대해 비난하는 영상들이 여러개 올라왔으나, 나중에 밝혀지기로는, 이때 콜턴정부는 언론을 장악하고 조종하여 그의 단식에 대해 '국민적 비난'이 가도록 지시, 비난 보도와 곡필을 강요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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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 | 95 | 2021년 5월 9일 치러진 제11대 대통령 선거에서 71.1%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2위인 민주공화당 후보를 역대 최다 표차로 여유롭게 따돌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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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 | 96 | == 루스탈지아 정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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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 | 97 | [[루스탈지아 행정부|자세한 내용은 루스탈지아 행정부 문서를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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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 | 98 | == 평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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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6 | 99 | [[루스탈지아 평가|자세한 내용은 루스탈지아 평가 문서를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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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 | 100 | == 비판/논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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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 | 101 | [[루스탈지아 비판/논란|자세한 내용은 루스탈지아 비판/논란 문서를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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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 | 102 | == 어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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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 | 103 | >'''사람의 인생이란 한철의 봄과 같은데, 그 한철 가기 전에 져버리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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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 | 10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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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 | 105 | > 11대 대선 당시 루스탈지아와 민주공화당 후보 다니엘 잭슨이 토론하던 중 루이나의 자살율에 대해 얘기하며 나온 루스탈지아의 명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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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 | 10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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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 | 107 | >'''애국이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더 나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실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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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 | 108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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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6 | 109 | > 2023년 자신을 공산주의자라고 한 루이나 애국당 당원들에게 한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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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 | 1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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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8 | 111 | >'''우리는 정의를 외치는 데 익숙하지만, 실천하는데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행동해야할 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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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 | 112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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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 | 113 | > 유고랜드 내전 개입 당시 대국민 담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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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2 | 115 | >'''한 사회의 수준은 가장 취약한 구성원을 어떻게 대하는지로 결정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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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 | 하지만 정작 본인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 시절 사진은 그냥 한 시기의 나일 뿐이다. 다만, 그때도 지금처럼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교복을 입은 몸에 너무 많은 질문이 있었던 것 같다”[* 루스탈지아 X(구 트위터) 게시물, 2023년 3월 1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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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6 | === 청년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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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 | 루스탈지아 그래이는 2010년, 고등학교 4학년 재학 중 조기졸업 시험에 응시해 전체 수석으로 합격하고, 같은 해 가을 루이나 국립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하였다. 입학 당시 그녀는 전국에서 가장 어린 신입생 중 한 명이었지만, 학문적 깊이와 문제의식은 이미 교수진 사이에서도 주목의 대상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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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 | 대학 생활에서 그녀는 특별히 튀거나 사람들과 어울리는 타입은 아니었다. 동아리나 축제, 교류 활동에는 일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강의실과 도서관, 하숙집과 작은 서점들을 오가는 일상을 조용히 반복했다. 그러나 그녀의 존재감은 교내 신문이나 철학 세미나, 법학비평회 같은 비공식 지식 공동체 안에서는 압도적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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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 | 118 | 루이나 대통령중 현역 군인으로 군사작전에 참여한 몇 안되는 대통령중 한명이다. 그녀의 첫 실전은, 2014년 소말리아 내전 개입 당시의 루이나 특수작전이었다. 당시 루이나는 해상 치안 회복과 인도주의 통로 확보를 명분으로 다국적 연합작전에 참가했으나, 실제 목적은 북부 바리 지역에 은닉된 비정부 무장조직의 전략시설 제거에 있었다[* 루이나 국방부 대외비 작전보고서 14-SSOM-BR-12호 현재 공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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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 | 122 | 이 작전은 정식 훈장을 수여받을 수 있는 규모의 임무였지만, 루스탈지아는 당시 이등병으로서 표창 대상이 아니었고, 정식 언론 발표 없이 비공식 내부 감사장만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군정보국 감사 통보문서, 2014년 9월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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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 | 124 | 후일 그녀는 이 경험을 두고, 한 차례만 짧게 언급한 적이 있다. “내가 세상에 대해 갖고 있던 정의감은 그날 깨졌다. 전선에 정의는 없고, 책임만 있었다. 내가 그걸 알게 된 건, 그날 밤이었다”[* 루이나 대통령실 구술채록, 제34회 안보교육 세미나 연설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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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 | | 당시 루스탈지아와 같은 부대에서 교육장교로 있었던 예비역 대령의 회고에 따르면, 루스탈지아가 이등병이었던 시절 폭파 과정 훈련에서 최우수자로 선정됐는데, 특전사는 장교, 부사관 등 직업 군인 위주로 돌아가기 때문에 당연히 이들이 성적 우수자로 선발되는 게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일반 사병이, 그것도 가장 낮은 계급의 이등병이 성적 최우수자로 상을 받는 일은 전례가 없었던 일이라고 한다. 이렇게 군 생활을 모범적으로 잘했기 때문에, 전역할 때 간부들이 "군대에 말뚝을 박으라"면서 강하게 권유했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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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 | | 이러한 특전사 복무 경력과 일부 정치인들의 병역 비리 의혹이 대비되면서, 군 복무가 아킬레스건이 아니라 되려 메리트로 작용하는 몇 안 되는 정치인이 되었다. 특히 2023년 10월 일부 보수 세력들은 루스탈지아 대통령을 향해 색깔론 공세를 펼쳤는데, 루스탈지아는 이를 두고 "군대도 안 갔다 온 사람들이 걸핏하면 공산주의자 타령이냐?"라면서 국가 안보를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보수 진영에서는 정작 군 복무를 면제받은 사람들이 제법 많다는 사실을 꼬집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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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 | | 2014년 4월 웨스트로 경기장 폭발 사고가 발생하고 이틀 후 경기장을 찾았으며, 7월부터는 광장에서 단식투쟁을 하고 있던 유가족을 응원하기 위해 함께 단식투쟁을 벌인다. 이 시기 잠을 자지 못해 다크서클이 짙어진 채로 천막에 앉아 있는 루스탈지아의 모습은 지금도 회자된다. 이에 대해 비난하는 영상들이 여러개 올라왔으나, 나중에 밝혀지기로는, 이때 콜턴정부는 언론을 장악하고 조종하여 그의 단식에 대해 '국민적 비난'이 가도록 지시, 비난 보도와 곡필을 강요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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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 | | 2021년 5월 9일 치러진 제11대 대통령 선거에서 71.1%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2위인 민주공화당 후보를 역대 최다 표차로 여유롭게 따돌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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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 | 135 | == 루스탈지아 정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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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 | 136 | [[루스탈지아 행정부|자세한 내용은 루스탈지아 행정부 문서를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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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 | 137 | == 평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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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6 | 138 | [[루스탈지아 평가|자세한 내용은 루스탈지아 평가 문서를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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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 | 139 | == 비판/논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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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 | 140 | [[루스탈지아 비판/논란|자세한 내용은 루스탈지아 비판/논란 문서를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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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5 | === 정치 입문, 현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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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6 | 루스탈지아 그래이가 처음으로 대중의 시선 한복판에 등장한 것은 군 복무 직후였다. 2015년 4월 14일 발생한 [[웨스트로 경기장 폭발 사고]]는 그녀를 세상 밖으로 끌어올린 계기가 되었다. 사고 발생 이틀 후, 루스탈지아는 광장을 찾아 유가족들과 함께 천막에 앉았고, 이내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그녀는 당시 현장에서 명확한 발언을 하지 않았지만, 무대 뒤에서 조용히 물을 건네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모습은 곧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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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8 | 콜턴 정부는 곧바로 언론을 동원해 그녀를 '선동가'로 몰아세웠지만, 이후 비난 여론이 대통령 지침에 따른 왜곡 보도였음이 드러나며 여론은 정반대로 움직였다. 이 사건은 루스탈지아의 정치 진입을 가속화시켰고, 그녀는 그해 말 사회민주당의 외부 정책 자문역으로 정식 등록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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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0 | 그리고 2016년, 그녀는 고향 롱비치로 돌아가 시장 선거에 출마한다. 당시는 민주공화당 소속 보수 성향 시장이 8년째 연임 중이었고, 지역 사회는 구조적 정체와 부패, 청년 실업률 상승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루스탈지아는 무소속으로 출마해 “시민 중심 행정”과 “정치 없는 행정”을 기치로 내걸었고, 단일토론회에서 현직 시장의 부동산 비리 의혹을 폭로하며 일약 전국적인 화제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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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2 | 그녀는 최종적으로 60.2%의 득표율로 당선, 루이나 역사상 최연소 광역단체장이자 첫 여성 롱비치 시장이 되었다. 재임 중 '청년 정착 예산제', '공공수도 기본료 무료화 시범사업', '투명시정 시민회의' 등 다수의 제도를 도입했고, 특히 고등학교 무상급식 정책은 벨포르 수도권에서도 벤치마킹할 만큼 성공적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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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4 | 시장 재임기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4년간 지속되었으며, '말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움직이는 시장'이라는 평을 들었다. 대외노출은 줄이고, 정책 설계와 집행에 집중한 그녀는 결국 2019년 말, 사회민주당 중앙당의 요청을 받고 차기 대통령 선거를 위한 예비 캠프에 합류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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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 | 141 | == 루스탈지아 정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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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 | 142 | [[루스탈지아 행정부|자세한 내용은 루스탈지아 행정부 문서를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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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 | 143 | == 평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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