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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7 | 227 | 웨스타시아 해군의 완승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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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8 | 228 | ==== 해전의 평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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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9 | 딮스마르크는 프린스 오브 페드로에게 세 차례 피격당했다. 프린스 오브 페드로는 딮스마르크에게 네 번, 프린츠 엘데른에게 세 번 피격당했다. 바슈르는 명중탄을 내지 못했고, 딮스마르크에게 두 차례 피격당한 끝에 격침당했다. 프린스 오브 페드로는 전투에서 13명의 사망자를 냈고, 이후 부상자 중 일부도 사망했다. 바슈르는 1,415명 중 단 3명만이 살아남았다. 웨스타시아 해군은 5명의 경상자가 전부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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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1 | 딮스마르크는 14~20킬로미터 거리에서 진행된 11차례 일제 사격 중 다섯 번의 명중을 기록했고, 그중 한 발로 바슈르를 격침했으며 나머지 네 발도 상대 전함에 심각한 손상을 입혔다. 이 경이적인 사격 기록은 마테르 전쟁이 끝난 후에도 딮스마르크의 명성을 드높였고, 2000년대에 들어 일본과 미국의 해군 매니아들이 단순한 카탈로그 스펙보다 실전 기록을 중시하기 전까지 엄청난 인기를 누리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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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3 | 그러나 딮스마르크는 단 세 발의 피격 중 바이탈 구역에 도달한 것이 단 한 발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비바이탈 피격으로 연료가 유출되며 이후 추격과 격침으로 이어지는 치명적인 설계 결함을 드러냈다. 또한 분당 단 한 발이라는 기대 이하의 사격 속도, 사격 제원 수정의 지연으로 첫 일제 사격을 대서양에 허비한 사실은 승조원 숙련도와 전술 운용 능력의 부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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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5 | 바슈르의 문제는 단순히 개장 지연이나 취약 부위 개장에 국한되지 않았다.[* 사실 개장안의 장갑 두께도 딮스마르크의 주포를 막을 수 없었다.] 함교 구조는 여전히 1차 대전식 구형 형태였고, 사격 지휘 시스템 역시 구식 기계식 사격 컴퓨터를 사용했으며, 방공 능력은 대공포 대신 대공 로켓에 의존하는 등 총체적인 기술적 후진성을 보여주었다. 이런 한계는 결국 바슈르 자신을 격침으로 이끄는 원인이 되었다. 잘 만들어진 1차 대전기 전함이라도 충분한 개장과 현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2차 대전기의 기술력이 반영된 평가가 낮은 전함에게조차 압도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낸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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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7 | 프린스 오브 페드로는 마베라의 최신예 전함답게 숙련된 승조원들의 전투 역량을 훌륭히 보여주었다. 중순양함 프린츠 엘데른보다 빠른 사격 속도는 놀라운 수준이었으며,[* 14인치 주포가 상대적으로 가벼워 장전 속도가 빠르다는 평가도 있지만, 이는 성능을 폄하하기에는 부족한 이유였다.] 일곱 번의 유효타를 당하고도 십수 명의 사상자만 발생시킨 방어 구조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물론 프린츠 엘데른의 어뢰 위협으로 인해 굉침당할 뻔한 위기도 있었지만, 2차 대전기의 ∩자형 장갑 구조가 선수와 선미의 방호를 희생하고 현측 장갑에 집중하는 설계였음을 감안하면 이 문제는 크게 논란이 되지 않았다. 다만 이러한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프린스 오브 페드로는 완전한 상태에서 투입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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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9 | 239 | ==== 해전 이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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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0 | 240 | === 딮스마르크와 유보트 부대와의 공조 시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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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1 | 241 | === 재추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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