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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6 | 96 | == 전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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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 | 97 | === 개전: 북해 돌파전 (1940년 4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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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8 | 1940년 4월 9일 새벽, 독일군은 덴마크와 노르웨이에 대한 동시 침공을 개시했다. 작전의 성패는 전적으로 해군에 달려 있었다. 상륙 부대를 태운 함정들이 연합군 초계망이 깔린 북해를 종단해 나르비크까지, 6개 항구에 동시 상륙해야 했기 때문이다. [[에리히 레더]]는 이 작전을 "해전사의 모든 법칙에 반하는 도박"이라 부르면서도 함대의 사실상 전부를 밀어 넣었다. 도박의 판돈은 명확했다. 성공하면 독일 해군은 대서양으로 나가는 뒷문과 루이나의 생명선을 겨눌 전진 기지를 동시에 얻는 것이었고, 실패하면 수상함대의 소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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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 | 연합군은 기습을 당했다. 공교롭게도 침공 전날 연합군 역시 노르웨이 영해에 기뢰를 부설하는 작전을 진행 중이어서 상당수 함정이 해역에 나와 있었으나, 첩보의 단편들은 "독일 함대의 대서양 돌파 시도"로 오판되었고, 함대는 상륙 선단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통상파괴함을 쫓아 엉뚱한 해역으로 북상했다. 루이나 해군의 대응은 더 굼떴다. 함대결전 교리에 따라 남부 주 정박지에 집결해 있던 주력 함대는 출항 준비에만 이틀을 소모했고, 그 사이 노르웨이의 주요 항구들은 차례로 독일군의 손에 떨어지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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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2 | 그렇다고 독일 측이 무상으로 노르웨이를 얻은 것은 아니었다. 침공 당일 오슬로 피오르에서는 노르웨이 연안 요새의 구식 포와 어뢰가 독일 최신예 중순양함 1척을 격침시키는 파란이 벌어졌고, 침공 함대를 호위하던 순양전함 전대는 노르웨이 근해에서 연합군 순양전함 1척과 조우해 악천후 속의 포격전 끝에 손상을 입고 이탈했다. 초계 중이던 연합군 구축함 1척은 독일 중순양함과 단독으로 조우하자 연막을 치고 돌진, 격침당하기 직전 적함의 현측을 들이받아 대파시키고 침몰했다. 함장에게는 사후 최고 무공훈장이 추서되었는데, 훗날 이 서훈의 추천서를 쓴 것이 다름 아닌 적함의 함장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개전 초기의 일화로 회자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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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4 | 전투의 초점은 곧 최북단의 나르비크로 옮겨갔다. [[4월 10일]]과 [[13일]] 두 차례에 걸쳐 연합군 구축함대와 전함이 좁은 피오르 안에 갇힌 독일 구축함대를 습격했고, 그 결과 독일 해군은 보유 구축함의 절반에 해당하는 10척을 한꺼번에 상실했다. 피오르 양안의 산자락 사이에서 벌어진 이 근접 난전은 전술적으로는 연합군의 완승이었으나, 정작 상륙한 독일 산악 부대를 몰아내지는 못했다. 바다에서 이기고 육지에서 지는 이 기묘한 구도는 노르웨이 전역 전체의 축소판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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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6 | 6월 초 연합군이 노르웨이에서 최종 철수하면서 전역은 독일의 전략적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양측의 손익 계산서는 간단치 않았다. 독일 해군은 노르웨이의 피오르라는 이상적인 출격 기지를 얻었지만, 그 대가로 중순양함 1척과 경순양함 2척, 구축함 10척을 잃고 순양전함 2척과 장갑함 1척이 장기 수리에 들어가, 한때 가동 가능한 대형함이 사실상 전무한 상태까지 몰렸다. 특히 구축함대의 궤멸은 두고두고 발목을 잡았다. 이후 독일의 대형함들은 충분한 호위 없이 단독 혹은 2척 단위로 출격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대서양-랜드해 전투 전 기간에 걸쳐 독일 수상함대의 구조적 약점으로 작용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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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8 | 루이나 해군이 치른 수업료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함정 손실 자체는 크지 않았으나, 개전 벽두의 대응 실패는 함대결전 교리의 파산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결전을 위해 아껴 둔 주력 함대는 정작 결전이 벌어질 때 이틀 늦게 도착했고, 그 사이 전략 지도는 돌이킬 수 없이 바뀌어 있었다. 노르웨이 상실로 북방 초계망의 전제가 무너지면서, 이제 독일 함대는 피오르에서 출격해 하루이틀 항해로 루이나의 경동맥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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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8 | 109 | === 위장순양함과 첫 습격 (1940년 5월~8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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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 | 110 | === 장갑함 출격과 선단 학살 (1940년 9월~11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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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 | 111 | === 란츠 개혁: 호송선단 체계의 확립 (1940년 12월~1941년 1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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