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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9 vs r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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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274웨스타시아 측은 즉각적인 확인을 피하며 “해당 해역에서의 통신 장애가 일시적으로 발생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이후 유고랜드 상공을 통과하던 통신위성 링크의 분석에서 구조 요청 신호 및 자동 SOS 신호 발신 후 연락 두절된 사실이 드러나며 루이나 측 주장이 사실로 굳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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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276이 사건은 그레이라인 작전 개시 이후 루이나 해군이 수면 아래에서도 제해권을 실질적으로 장악했음을 의미하는 첫 분수령이 되었으며, 웨스타시아 해군의 심리적 충격은 물론 핵수송 전략에도 큰 혼란을 초래했다. 특히 수중 보호망 상실로 인해 웨스타시아는 이후 공중 수송 가능성까지 검토하게 되었고, 유고랜드-마베라 방면의 수송 경로는 사실상 봉쇄된 것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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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8=== 5월 16일 ===
2791983년 5월 16일, 루이나 해군의 해상봉쇄 작전인 ‘그레이라인’이 본격화되면서 웨스타시아의 전략 핵무기 수송 계획은 심각한 차질을 빚기 시작했다. 유고랜드 항에서 핵탄두 적재가 완료된 이후, 예정된 수송선단은 루이나 해군의 촘촘한 해상 감시망에 의해 일주일 가까이 발이 묶여 있었고, 반복된 정찰, 검문, 대잠작전으로 인해 수송 일정은 이미 2차례 이상 연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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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웨스타시아 대통령 알빈 카펜트리 요크(Alvin Carpentry York)는 비상 국가안보회의(NSC)를 소집하여 “로벤자운 작전의 지연은 곧 전략적 패배”라는 판단을 내린다. 이 회의에서 국방장관과 합참의장, 해군참모총장 등은 루이나의 정찰망이 강화되고 있는 점을 우려하며 은밀 침투의 시도보다, 호위함을 동반한 강행 돌파가 오히려 실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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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결국 1983년 5월 16일 오전 1시경, 요크 대통령은 로벤자운 작전의 작전단장에게 수송선단의 점진적 출항과, 최소 4척의 잠수함 및 호위함을 동반한 분산 돌파 계획을 최종 지시한다. 이는 루이나 해군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일부 수송선이 차단되더라도 최소 하나 이상의 핵탄두를 목표 해역까지 침투시키겠다는 계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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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5이 결정은 로벤자운 작전의 본격적인 실행 단계 진입을 의미하는 전환점이 되었으며, 웨스타시아군 내부에서는 “이제 돌이킬 수 없다”는 각오가 팽배해졌다. 이 같은 판단은 후일 작전의 실패와 직결된 오판으로 평가받기도 하지만, 당시 웨스타시아 수뇌부로서는 전쟁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최후의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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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루이나 정보당국은 당시 이러한 결정이 내려진 사실을 정확히 알지 못했으나, 곧이어 포착되는 해상 이상 징후와 선박의 불규칙 항적, 잠수함 탐지 등 일련의 정황을 통해 작전 개시가 임박했음을 직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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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91983년 5월 16일 오전 10시경, 루이나 해군 제7기동전단 소속 패러것급 구축함 RNS 아도니 벨몽(RNS Adonnie Belmont)은 랜드해협 중남부 항로를 따라 북상 중이던 유고랜드 선적의 화물선 MV 샤크에비던트(Shark Evidente)를 포착하였다. 이 선박은 해군 측이 이전부터 감시 중이던 고위험 선박 중 하나로, 위성 사진 분석 결과 선체 중심부의 이중 차폐 구조, 냉각 장치로 보이는 설비, 불규칙한 항적 등 다수의 수상한 정황이 이미 파악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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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현장 지휘를 맡고 있던 RNS 아도니 벨몽의 함장 조너선 브릭(Jonathan Brick) 대령은 함선의 속도와 항로가 로벤자운 작전의 예상 수송 루트와 유사함을 확인한 후, 선박 정지 명령 및 정밀 검문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정오 무렵, 작전 해역 주변에서 정체불명의 음파가 반복적으로 탐지되었고, 해상초계기와 통신감청자산의 분석 결과 잠수함 위협의 가능성이 배제되지 않음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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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이에 따라 브릭 함장은 단일 구축함만으로 검문을 실시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위험하며, 잠수함이 상선을 호위 중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는 즉시 루이나 해군 중앙지휘부에 보고하고, "정밀 추적은 계속하되 단독 검문은 실시하지 않는다"는 명령을 하달했다. 샤크에비던트는 이후 속도를 약간 줄인 채 항해를 지속했고, 루이나 해군은 일정 거리 이상의 간격을 유지하며 선박을 계속 감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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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이날의 결정은 루이나 군 내부에서도 신중하면서도 전략적으로 옳은 판단으로 평가받았다. 이후 루이나 해군은 대잠초계기와 추가 구축함 2척을 추가 투입하며, 샤크에비던트를 포함한 고위험 수송선단에 대한 다층 추적망을 형성하게 된다. 정보국(NIA)은 후일 보고서에서 “5월 16일의 보류 결정이 향후 실제 핵무기 적재 여부를 판별하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으며, 성급한 충돌 대신 전략적 봉쇄망을 유지한 것은 작전 지속에 있어 긍정적 영향이었다”고 평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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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71983년 5월 16일 오후, 루이나 해군은 유고랜드 선적 상선 샤크 에비던트(Shark Evident) 가 전략핵을 은닉 수송 중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 기존 추적 임무를 확대하여 직접 검문 작전을 개시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루이나 해군은 패러것급 구축함 3척을 해당 해역에 증원 배치하였고, 샤크 에비던트를 포위해 검문에 착수할 준비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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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9오후 2시 53분경, 편대 중 선두를 항해하던 RNS 스태그혼(Staghorn) 의 좌현 수중 소나에서 정체불명의 고속 열원 3개가 6km 거리에서 접근 중임을 탐지했다. 루이나 해군은 즉시 어뢰 공격 가능성을 상정하고 회피기동 및 대응폭뢰 준비 절차에 돌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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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그러나 회피기동 도중 후방에 위치한 RNS 체리글레이드(Cherryglade) 가 어뢰 1발에 측면 피격당해 대파되었으며, 기관부 침수 및 선체 일부 파괴가 발생했다. 해당 구축함은 즉시 비전투 배치로 전환되었고, 인명 피해는 7명 부상, 2명 실종으로 보고되었다. 나머지 어뢰 2발은 자동 폭발 혹은 유도 실패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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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사건 직후 루이나 해군은 에비던트호 검문 작전을 전면 중단하고, 상선의 추적은 유지하되 잠수함 위협을 최우선 고려한 후속작전으로 전환하였다. 또한, 샤크 에비던트 주변 해역을 ‘충돌 고위험 지역(High Conflict Risk Zone)’으로 공식 지정하고, 대잠 헬기와 초계기, 폭뢰장비를 갖춘 추가 전력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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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루이나 국방부는 당일 저녁 발표에서 “이 작전은 단순한 검문 활동이 아닌, 실질적 전투에 준하는 위험을 안고 있다”며 웨스타시아의 비대칭 해군전 전개를 사실상 인정하였다. 동시에 루이나 정보당국은 이번 피격 사건이 로벤자운 작전을 은닉·호위하기 위한 웨스타시아의 전술적 조치로 판단하고, 핵수송 저지를 위한 그레이라인 작전의 범위 확대를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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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75월 16일 오후, 루이나 해군의 구축함 RNS 체리글레이드가 정체불명의 어뢰에 피격되어 대파되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 루이나 정부는 이를 명백한 군사적 도발이자 핵 수송 시도에 대한 증거로 간주하고, 웨스타시아 측에 강력한 항의 외교문서를 송달하였다. 루이나 외무부 대변인은 “우리 함선이 검문 임무 도중 공격받은 것은 국제법 위반이며, 이 지역에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웨스타시아의 무책임한 행동이 근본 원인”이라며 유고랜드 선적 상선에 대한 즉각적 정밀 조사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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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그러나 웨스타시아 정부는 루이나 측의 주장에 일절 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통령 알빈 카펜트리 요크는 공개 국가안보회의를 통해 “루이나의 일방적 검문과 봉쇄는 주권국가의 통상권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민간 선박의 안전 보장’을 명분으로 해군 호위함을 문제 해역에 추가로 전개할 것을 지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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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이에 따라 5월 16일 밤, 웨스타시아 해군 소속 호위함 3척이 샤크 에비던트를 포함한 상선단의 우현과 후방 해역에 배치되었으며, 명목상으로는 ‘정찰 및 경계 임무’였으나 실질적으로는 루이나 해군의 검문 작전 저지를 위한 방어선 구축임이 명확했다. 동시에 웨스타시아는 루이나 측의 무력행사를 “과잉 대응이며, 공격적이고 모욕적인 행동”이라 규정하며 국제사회에 ‘중립 해상 항로의 안전 보장’을 위한 국제적 감시단 파견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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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루이나 국방부는 이에 대해 “핵무기를 숨긴 선박을 보호하려는 전형적인 방해 시도”라고 비난하며, “그레이라인 작전은 철수하지 않으며, 불법 무기 수송에 가담하는 호위함은 적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강경 입장을 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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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이로써 마테르 전쟁의 일환으로 벌어진 해상 봉쇄 작전이 본격적인 무력 충돌과 대리 해상전의 국면으로 진입하게 되었으며, 양국 모두 외교적 해결보다 군사적 주도권 확보에 집중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