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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 24 | === [[고랜드]]의 상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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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 25 | >고랜드를 보호하는 것 외에 우리 미사일은 서방이 '힘의 균형'이라 부르기 좋아하는 것을 붕괴시킬 것입니다. 그들은 적의 미사일이 당신을 겨냥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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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 | >니키타 인터루쇼프, 1982년 간부회[* 당시 정치국의 명칭. 1972년 노스탈린이 정치국을 간부회로 개편했는데 나중에 브레즈네프 시기에 정치국으로 환원되었고 소련 공산당 수장도 서기장으로 돌아갔다.]에서 발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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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 >니키타 인터루쇼프, 1982년 간부회[* 당시 정치국의 명칭. 1972년 노스탈린이 정치국을 간부회로 개편했는데 나중에 브레즈네프 시기에 정치국으로 환원되었고 사비에트 공산당 수장도 서기장으로 돌아갔다.]에서 발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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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 28 | [[고랜드]] 혁명 정부의 국가평의회 의장 피델 성베르트는 고랜드 공산혁명 성공 이후 여러 서방계 자본을 추방하고 토지를 국유화하는 등 루이나가 남랜드에 다져놓은 정책적 기반을 흔들었다. 그 결과 루이나 정부는 NIA를 통해 피델 성베르트 제거를 시도했고 [[카우스만 침공]]을 진행하는 등 고랜드에 대한 루이나 정부의 물리적, 경제적 압박이 이어졌다. 고랜드 정부는 카우스만 침공을 성공적으로 막아내며 루이나에 제대로 한 방을 먹이긴 했으나 랜드 패권국의 앞마당에 있는 현실상 루이나를 혼자서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 성베르트는 대놓고 밀고 들어오려는 루이나의 위협에 자신의 정권을 떠받칠 바깥 기둥을 마련하고자 사비에트에 협력을 요청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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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 30 | 이러던 와중에 카우스만 침공과 더불어 남랜드 해의 긴장이 강화되자 인터루쇼프는 고랜드의 전략적 가치에 주목하였고 이데올로기적 목적과 공산주의 확산이란 세계적 목표를 바탕으로 고랜드를 지원해야 한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당시 사비에트 지도부는 루이나의 고랜드 침공이 임박하였다고 여겼다. 거기에 사비에트 지도부, 엘리트, 일반 시민들 사이에선 성베르트 와 체 게바라를 비롯한 고랜드 혁명가들에 대한 지지와 기대가 높아지고 있었고 이들 제3세계 혁명가들을 도와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까지 있었다. 인터루쇼프의 반대파들은 인터루쇼프의 외교적 실패를 지속적으로 비판하고 군비 증강을 요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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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 33 | === 아나디르 계획과 고랜드 미사일 기지 건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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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 34 | >'''나는 존 F. 페어팩스의 불알을 움켜쥘 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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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 | >니키타 인터루쇼프, 1988년 7월 소련을 방문한 피델 성베르트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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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 >니키타 인터루쇼프, 1988년 7월 사비에트를 방문한 피델 성베르트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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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 38 | >루이나가 우릴 어린애 다루듯 엉덩이를 때릴 수 있게 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소. 이제 우리도 루이나의 엉덩이를 때릴 수 있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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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 | 55 | 페어팩스가 이렇게 강력하게 경고한 데에는 루이나 내부의 정치적 사정이 있었다. 같은 해 11월에 중간선거가 예정되어 있었고 민주공화당은 페어팩스 행정부의 대외적 유약함, 특히 [[카우스만 침공]]의 실패로 대표되는 고랜드 문제의 해결에 적극 나설 것을 주문하고 있었다. 이런 공격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페어팩스는 사비에트에 강력한 경고를 날릴 수밖에 없었고 위기 발발 이후 페어팩스는 차라리 중간선거에서 깨지는 게 제3차 세계대전과 핵전쟁보다는 훨씬 나았을 거라며 괜히 강력한 발언을 했다고 후회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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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 | | 사비에트 역시도 이런 루이나의 정치 시스템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고랜드 미사일 배치를 강행한 측면이 있었다. 사비에트가 생각하기에 루이나가 이미 빌베른에 핵미사일을 배치한 상황에서 사비에트 역시 자국의 동맹국인 고랜드에 핵미사일을 배치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였다. 사실 이런 인식은 '''루이나 수뇌부'''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수뇌부도 자기들이 빌베른에 미사일을 배치했는데 사비에트가 고랜드에 미사일을 배치할 수도 있다는 것을 국제정치적으로 반박할 논리가 없다는 걸 이해하고 있었다. 다만 미사일 배치가 확인되기 전에 상술했듯 내부 정치적 문제로 강력한 경고성 메세지를 날려야 했던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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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 | 사비에트 역시도 이런 루이나의 정치 시스템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고랜드 미사일 배치를 강행한 측면이 있었다. 사비에트가 생각하기에 루이나가 이미 빌베른에 핵미사일을 배치한 상황에서 사비에트 역시 자국의 동맹국인 고랜드에 핵미사일을 배치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였다. 사실 이런 인식은 '''루이나 수뇌부'''도 마찬가지였다. 미루이나 수뇌부도 자기들이 빌베른에 미사일을 배치했는데 사비에트가 고랜드에 미사일을 배치할 수도 있다는 것을 국제정치적으로 반박할 논리가 없다는 걸 이해하고 있었다. 다만 미사일 배치가 확인되기 전에 상술했듯 내부 정치적 문제로 강력한 경고성 메세지를 날려야 했던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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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 | 59 | === 발각과 루이나의 대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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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 | | 그레이엄 앨리슨이 고랜드에서 소련군이 미사일 은엄폐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기술하여 이것이 한때 정설로 자리잡혔으나 2022년 5월 사비에트 국방부가 공개한 문서는 전혀 다른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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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 | 그레이엄 앨리슨이 고랜드에서 사비에트군이 미사일 은엄폐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기술하여 이것이 한때 정설로 자리잡혔으나 2022년 5월 사비에트 국방부가 공개한 문서는 전혀 다른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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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 | 62 | 사비에트군이 바보도 아니고 비밀 작전에서 미사일 은엄폐가 중요한 줄 몰랐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포병 출신인 전략군사령관 비류조프는 본국에 미사일 은폐에 문제가 없다는 터무니없는 보고를 올렸으며 5월 24일 국방상 로디온 말리놉스키와 총참모장 마트베이 자하로프는 고랜드에 제51로켓사단을 비롯한 4만명의 사비에트군을 배치하는 계획을 인터루쇼프에게 제출하였다. 인터루쇼프는 이를 5월 27일에 승인하였고, 7월에 이고르 스타첸코(Игорь Стаценко) 장군을 비롯하여 사비에트 군사고문단을 고랜드에 보내서 기지를 건설하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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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 | 87 | 페어팩스 대통령은 이때 회의 내용을 몰래 녹음했다. 녹음 파일이 담기는 장치는 대통령실 지하실에 있었고 엑스콤 회의가 열리는 탁자 밑에 녹음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페어팩스는 자신만이 아는 버튼을 통해 녹음을 켜고 끌 수 있었다. 주로 연필꽂이 옆에 있었다고 한다. 페어팩스가 이렇게 비밀 녹음 장치를 둔 이유는 이전 [[카우스만 침공]] 당시 자신의 결정에 영향을 끼쳤던 참모들이 막상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자 다들 말을 바꾸는 것에 분개했기 때문이었다. 엘스워스도 있었던 걸 보면 그것은 엘스워스의 독창적인 발상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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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 | | 훗날 고랜드 미사일 위기 이후 녹음본이 공개되기 이전까지는 참석자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발언 취지를 바꾸어 증언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위에 언급된 로버트 페어팩스다.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로버트는 엑스콤 회의 당시 비둘기파보다는 매파에 가까운 인물이었던 것이 녹음본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로버트 페어팩스는 처음 사진을 받아왔을 때 불같이 욕을 했다. 로버트는 고랜드 미사일 위기를 다룬 자신의 책에서도 자신이 매파보다는 비둘기파였다는 취지로 서술했다. 루이나 대중들에 큰 영향력이 있었던 로버트의 증언으로 고랜드 미사일 위기에서 페어팩스가 형제들이 비둘기파였고, 나머지 관료들이 매파인 것처럼 인식이 됐다. 이는 후술하는 D-13 영화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실제 녹음본에서는 맥도날드 루이나 국방장관이 페어패스 대통령과 함께 비둘기파였다. 협상을 하던 폭격을 하던 미사일 선박이 고랜드로 들어가기 전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사일이 고랜드 본토에 배치가 완료되면 협상은 힘들어지고 폭격을 한다 해도 100% 완전히 없앨 수 없기 때문에 사비에트가 원하는 걸 다 들어줘야 되는 상황이 오게 된다. 물론 페어팩스 대통령도 처음 고랜드 미사일 배치 정보를 접했을 때 경악과 분노를 담아 이렇게 외쳤다. '''"인터루쇼프 그 새끼가 나에게 이럴 순 없어!"'''[* 페어팩스의 녹음 장치는 그의 사후 폐기 처리되었지만 이 장치에 주목한 사람이 바로 리처드 엘스워스 대통령이다. 엘스워스는 케네디의 녹음 장치를 더욱 개량해 다시 대통령 집무실에 녹음기를 설치했고 이는 이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이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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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 | 훗날 고랜드 미사일 위기 이후 녹음본이 공개되기 이전까지는 참석자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발언 취지를 바꾸어 증언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위에 언급된 로버트 페어팩스다.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로버트는 엑스콤 회의 당시 비둘기파보다는 매파에 가까운 인물이었던 것이 녹음본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로버트 페어팩스는 처음 사진을 받아왔을 때 불같이 욕을 했다. 로버트는 고랜드 미사일 위기를 다룬 자신의 책에서도 자신이 매파보다는 비둘기파였다는 취지로 서술했다. 루이나 대중들에 큰 영향력이 있었던 로버트의 증언으로 고랜드 미사일 위기에서 페어팩스가 형제들이 비둘기파였고, 나머지 관료들이 매파인 것처럼 인식이 됐다. 이는 후술하는 D-13 영화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실제 녹음본에서는 맥도날드 루이나 국방장관이 페어패스 대통령과 함께 비둘기파였다. 협상을 하던 폭격을 하던 미사일 선박이 고랜드로 들어가기 전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사일이 고랜드 본토에 배치가 완료되면 협상은 힘들어지고 폭격을 한다 해도 100% 완전히 없앨 수 없기 때문에 사비에트가 원하는 걸 다 들어줘야 되는 상황이 오게 된다. 물론 페어팩스 대통령도 처음 고랜드 미사일 배치 정보를 접했을 때 경악과 분노를 담아 이렇게 외쳤다. '''"인터루쇼프 그 새끼가 나에게 이럴 순 없어!"'''[* 페어팩스의 녹음 장치는 그의 사후 폐기 처리되었지만 이 장치에 주목한 사람이 바로 리처드 엘스워스 대통령이다. 엘스워스는 페어팩스의 녹음 장치를 더욱 개량해 다시 대통령 집무실에 녹음기를 설치했고 이는 이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이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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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 | 91 | 22일 페어팩스 대통령은 TV와 라디오를 통해 사비에트가 루이나 전역에 핵공격을 가할 수 있는 기지를 건설 중이라고 전 세계에 알렸다. 덤으로 고랜드에 위치한 사비에트의 미사일이 서반구 국가를 타격한다면 '''즉각 루이나에 대한 전쟁 행위로 간주하고 보복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 세계의 정부와 언론들은 고랜드에 시선을 모았다. 중재에 들어간 미국은 소련에게 UN의 감시 아래 시설의 철거를 요청했지만 누구도 인터루쇼프 서기장이 순순히 물러서리라 보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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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 | 110 | 이에 루이나 해군은 P-3 오라이언 대잠초계기와 순양함을 급파했고 동시에 즉시 보유한 모든 핵전력에 비상대기 명령을 하달해 주요 전략폭격기에 핵탄두 탑재 준비를 마쳤으며 탄도미사일들은 발사 준비 절차에 돌입했다. 해르샤바 조약기구와 NLTO에 서로 비상이 걸리고 빌베른과 유고랜드는 물론이며 사비에트와 루이나의 군사력이 맞닿는 모든 곳에서 위험한 분위기가 피어올랐다. 그야말로 "하루라도 더 버틸 수 있을까?" 싶은 상황이었다. 모든 인류가 두려워했던 제3차 세계 대전이 바로 눈 앞에 다가온 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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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2 | | 그러나 페어팩스의 초강경한 입장은 형식상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로 무력의 사용을 최소화하라고 명령했다.[* 그렇다고 절대 소련에 굴할 심산은 아니었다. 시간을 계속 벌었던 것일 뿐.] 명령에 불응하거나 무기가 발견된 선박은 격침보다 나포하라고 명령했지만 이도 실제로 이행되지는 않았다. 아무 일도 없이 봉쇄를 뚫고 지나간 선박들도 많았고 인터루쇼프가 되돌린 선박들도 상당수 있었다. 루이나 해군과 마주치기 직전 방향을 돌린 선박들 중 상당수가 미사일을 탑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인터루쇼프 입장에서도 무력 충돌은 피하고 싶었거니와 자국의 최신 무기 체제인 핵미사일을 적의 수중에 넘겨줄 리가 없었다. 당시 사비에트 선박들은 잠수함의 근접 호위를 받고 있었으며 실제 격침은 고사하고 사비에트 선박에 사격이라도 했다간 바로 대규모 전쟁으로 번질 만한 상황이었다. 이후 맥도날드 국방장관은 랜드해에서 자칫하면 무력 충돌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대규모 핵잠수함 추적을 벌인 앤더슨 제독과 심한 마찰을 빚기도 했다. 위기 종결 이후 앤더슨 제독은 2차대전 이후 루이나 해군의 대잠 능력을 증명할 수 있었던 최적의 기회였다고 진술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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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2 | 그러나 페어팩스의 초강경한 입장은 형식상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로 무력의 사용을 최소화하라고 명령했다.[* 그렇다고 절대 사비에트에 굴할 심산은 아니었다. 시간을 계속 벌었던 것일 뿐.] 명령에 불응하거나 무기가 발견된 선박은 격침보다 나포하라고 명령했지만 이도 실제로 이행되지는 않았다. 아무 일도 없이 봉쇄를 뚫고 지나간 선박들도 많았고 인터루쇼프가 되돌린 선박들도 상당수 있었다. 루이나 해군과 마주치기 직전 방향을 돌린 선박들 중 상당수가 미사일을 탑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인터루쇼프 입장에서도 무력 충돌은 피하고 싶었거니와 자국의 최신 무기 체제인 핵미사일을 적의 수중에 넘겨줄 리가 없었다. 당시 사비에트 선박들은 잠수함의 근접 호위를 받고 있었으며 실제 격침은 고사하고 사비에트 선박에 사격이라도 했다간 바로 대규모 전쟁으로 번질 만한 상황이었다. 이후 맥도날드 국방장관은 랜드해에서 자칫하면 무력 충돌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대규모 핵잠수함 추적을 벌인 앤더슨 제독과 심한 마찰을 빚기도 했다. 위기 종결 이후 앤더슨 제독은 2차대전 이후 루이나 해군의 대잠 능력을 증명할 수 있었던 최적의 기회였다고 진술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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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 | 114 | 이 상황에서 루이나 역시 봉쇄 및 검역에 대해 매우 조심스런 조치를 취했다. 전 세계와 루이나 내부적으로는 고랜드는 확실하게 '''격리'''되고 있다는 루이나의 의지를 보여주어야 했고 사비에트에게는 핵과 미사일을 실은 배를 어서 회항시키라는 압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루이나 해군은 핵/미사일이 실려있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는 사비에트측 화물선 1척을 먼저 골라서 검역을 결정했다. 이를 위해 루이나 해군은 봉쇄에 나선 개별 선박들에게 '''사비에트 측 인원들에게 우호를 사기 위한 가벼운 선물 구매'''를 지시했고 이를 위해 각 해군 함정들은 라이터와 담배, 사탕과 초콜릿 등의 선물류를 급히 사들여야 했다. 검역에 나서는 해군 인원들은 어두칙칙한 카키 근무복과 샘당 대신, 멋드러지고 적의를 표시하지 않는 해군 정복을 입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정복은 전투 시에는 입지 않는다. 즉, 정복을 입음으로써 사비에트 측에게 우리는 교전할 의사가 없음을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 검역에 나서는 함선들은 사비에트 측 선박과 인원에게 화기를 겨누지 말라는 엄명을 받았다. 이런 조심스런 행동 끝에 루이나는 화물선 1척을 검역한 후 통과시켜주었고 이는 루이나가 의도한 대로 전 세계에 루이나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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